閑雲野鶴 90

냇내

냄새는 그리움이다. 문득 아니면 울컥, 그때 그 어느 날의 흔적과 시간을 찾아 영혼의 빗장을 푸는 알레고리이다. 갓 볶아낸 커피 향기, 담장너머 청국장 냄새, 새로 갈아입은 옷에서 나는 새물내, 그 목도리에서 그 사람의 언어와 체온과 숨결이 느껴지는 체취, 꽃그늘을 지나다 흠칫 돌아보는 향수 내음. 가슴이 먹먹한 날, 무심코 잊고 살아왔던 먼 기억들이 일상을 툭 치고 갑자기 밀려오는 그리운 냄새들이 있다. 최명희 소설 ‘혼불’에서도 여주인공 강실이가 익모초를 보고 어머니가 생각나 울음을 삼키는 장면이 있다. "단오날 정오에 캔 약쑥 익모초가 제일 좋지. 약효가 그만이라.” 하며 들에 나가 어울려 캐 온 약쑥과 익모초를 헛간 옆구리 그늘에다 널어 말리던 어머니. (중략) 그래서 여름날의 무명옷 올 사이로는..

閑雲野鶴 2022.08.24

민주주의는 무엇인가?

인생은 축제다 즐겁게 살지 않는 것은 죄다 너를 괴롭히는 사람들에 대한 최대의 복수는 그들보다 행복해지는 것이다 그들의 귀에 나의 행복한 웃음소리를 들려 주는 것이다 - 무라카미 류의 '69(Sixty Nine)' 중 - 저 점이 여기다 저 점이 우리의 고향이다 저 점이 우리다 당신이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 당신이 아는 모든 사람들, 당신이 한번이라도 들어봤던 모든 사람들, 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인류가 저 점 위에서 살았다 .... 인간 역사속의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여기 태양 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이다 -칼 세이건 창백한 푸른점 中 정치에 무관심한 것보다는 차라리 과몰입이 낫고, 아무도 지지하지 않는 것보다는 누군가를 열렬히 지지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단지 기억해야 할 ..

閑雲野鶴 2022.03.05

반계수록(磻溪隨錄)

반계 유형원이 31세에 저술을 시작하여 49세에 완성한 ‘반계수록’은 한국 학술사에서의 의미로 보아 정말로 획기적인 책이다. 만권이 넘는 장서를 갖추고 불철주야 저술 작업을 계속했던 전라도 부안군의 우반동 ‘반계서당’은 그 책의 산실이었기에 참으로 뜻이 깊은 역사의 땅이고 사상의 고향이다. ‘반계수록’은? 조선 실학의 1조(祖)는 반계 유형원이며 2조는 성호 이익이며 3조는 다산 정약용이다. 반계의 ‘반계수록’으로부터 조선의 실학사상은 본모습을 보였고, 그 이후의 실학자들은 대부분 반계의 경륜과 경세론(經世論) 및 경국제민(經國濟民)의 경제사상에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반계수록’의 서문을 짓고, ‘반계유선생전’이라는 전기를 지은 성호 이익이 가장 존숭하고 사숙했던 학자가 반계였음은 말할 필요도..

閑雲野鶴 2022.02.24

백호(白湖) 윤휴(尹鑴)

백호(白湖) 윤휴 윤휴가 충북 보은(報恩) 삼산의 외가댁에 머문 때는 나이 11∼12세, 15세, 20세 때였다. 송시열이 윤휴의 명성을 듣고 찾아가 담화를 나눈 후 높은 학문에 탄복했다고 한 것으로 볼 때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시기는 윤휴의 나이 20세 때인 1636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윤휴를 만나고 돌아온 송시열은 동문(同門)의 대학자인 송준길에게 편지를 보내 “내가 삼산에 가서 윤휴를 만나 그와 더불어 3일 동안 학문을 논하였다. 그런데 우리들이 30년 독서한 것이 진실로 가소로웠다”고 하며 크게 탄식했다고 한다. 윤휴와 송시열의 관계는 윤휴가 포의(布衣)의 신분이었을 때에도 학문적으로는 물론 정치적으로도 숙명의 라이벌이었다. 특히 윤휴가 『대학(大學)』과 『중용(中庸)』 등에 주자의 해석과..

閑雲野鶴 2022.02.23

한옥 마루

정의 널빤지를 깔아 만든 바닥 또는 널빤지로 바닥을 이룬 공간. 개관 지면으로부터 일정한 높이로 들어 올린 마루는 습기나 지열 혹은 해충이나 짐승을 피해 거주 공간을 구성하기에 유리하다. 마루는 바닥을 지면에서 높이 들어 올려 설치한 선사시대의 고상식高床式 건축에서부터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 고분벽화나 고대 가야의 토기에서 이와 같은 고상식 건물을 볼 수 있다. 전통한옥의 대청이나 툇마루, 다락과 바닥을 들어 올려서 멀리 조망하기 위한 원두막이나 정자 건축 등에 마루가 사용되었다. 본래 독립된 건물을 이루던 마루를 온돌과 함께 하나의 건물 안에 구성하는 방식은 한국건축의 독특한 특성으로, 대략 고려 말경에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마루를 깐 공간은 대청과 같이 제사를 위한 의례 공간이나 생활공간으..

閑雲野鶴 2022.02.22

추사 김정희

“나는 천성이 노는 것을 즐거워하여 좋은 놀이를 만나거나 좋은 반려를 만나면 낮 놀이가 부족하여 밤까지 계속했으며 근심과 걱정을 하도 많이 겪어서 삶과 죽음까지 깨우쳐 통했으니 처자나 집안일 따위는 마음에 걸릴 것도 없이 오직 대나무 한 포기, 돌 한 덩이,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라도 진실로 마음 붙일 만한 곳이 있다면 거기에서 세상을 마칠 생각을 가졌지요.”

閑雲野鶴 2022.02.01

증문(憎蚊) - 다산 정약용

맹호가 울밑에서 으르렁대도 / 猛虎咆籬根(맹호포리근) 나는 코골며 잠잘 수 있고 / 我能齁齁眠(아능후후면) 긴 뱀이 처마 끝에 걸려있어도 / 脩蛇掛屋角(수사괘옥각) 누워서 꿈틀대는 꼴 볼 수 있지만 / 且臥看蜿蜒(차와간완연) 모기 한 마리 왱하고 귓가에 들려오면 / 一蚊譻然聲到耳(일문앵연성도이) 기가 질려 속이 타고 간담이 서늘하구나 / 氣怯膽落腸內煎(기겁담락장내전) 부리 박아 피를 빨면 그것으로 족해야지 / 揷觜吮血斯足矣(삽취연혈사족의) 어이하여 뼈에까지 독기를 불어넣느냐 / 吹毒次骨又胡然(취독차골우호연) 삼베 이불 덮어쓰고 이마만 내놓으면 / 布衾密包但露頂(포금밀포단로정) 어느새 울퉁불퉁 혹이 돋아 부처 머리처럼 돼버리네 / 須臾瘣癗萬顆如佛巓(수유외뢰만과여불전) 제 뺨을 제가 쳐도 헛치기 일쑤이며 /..

閑雲野鶴 2021.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