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詩한 970

보고 싶은 사람 - 문 정희

보고 싶은 사람 - 문 정희 아흔 셋, 하얀 노모가 자리에 누운 지 사흘째 되던 날 멀고 가까운 친족들이 서둘러 모여들었다 어머니! 이제 마지막으로요… 이 말은 물론 입 밖에 내지 않고 그냥 좀 울먹이는 소리로 어머니! 지금 누가 젤 보고 싶으세요? 저희가 데려올게요 그때 노모의 입술이 잠시 잠에서 깬 누에처럼 꿈틀하더니 “엄마…!”라고 했다 아흔 셋 어린 소녀가 어디로 간지 모르는 엄마를 해지는 골목에서 애타게 찾고 있었다 Mamm - Giovanni Marradi

詩--詩한 2022.05.12

보고 싶은 사람 - 문 정희

보고 싶은 사람 - 문 정희 아흔 셋, 하얀 노모가 자리에 누운 지 사흘째 되던 날 멀고 가까운 친족들이 서둘러 모여들었다 어머니! 이제 마지막으로요… 이 말은 물론 입 밖에 내지 않고 그냥 좀 울먹이는 소리로 어머니! 지금 누가 젤 보고 싶으세요? 저희가 데려올게요 그때 노모의 입술이 잠시 잠에서 깬 누에처럼 꿈틀하더니 “엄마…!”라고 했다 아흔 셋 어린 소녀가 어디로 간지 모르는 엄마를 해지는 골목에서 애타게 찾고 있었다 Mamm - Giovanni Marradi

詩--詩한 2021.08.30

8월의 기도 - 임영준

8월의 기도 - 임영준 ​ 이글거리는 태양이 꼭 필요한 곳에만 닿게 하소서 가끔씩 소나기로 찾아와 목마른 이들에게 감로수가 되게 하소서 옹골차게 여물어 온 세상을 풍요롭게 하소서 보다 더 후끈하고 푸르러 추위와 어둠을 조금이라도 덜게 하소서 갈등과 영욕에 일그러진 초상들을 싱그러운 산과 바다로 다잡아 다시 시작하게 하소서 Any Dream Will Do - Phil Coulter

詩--詩한 2021.08.04

빈집의 약속 / 문태준

빈집의 약속 / 문태준 마음은 빈집 같아서 어떤 때는 독사가 살고 어떤 때는 청보리밭 너른 들이 살았다 별이 보고 싶은 날에는 개심사 심검당 볕 내리는 고운 마루가 들어와 살기도 하였다 어느 날에는 늦 눈보라가 몰아쳐 마음이 서럽기도 하였다 겨울방이 방 한켠에 묵은 메주를 매달아 두듯 마음에 봄 가을 없이 풍경들이 들어와 살았다 그러나 하릴없이 전나무 숲이 들어와 머무르는 때가 나에게는 행복하였다 수십 년 혹은 백 년 전부터 살아온 나무들, 천둥처럼 하늘로 솟아오른 나무들 몽긋이 앉은 그 나무들의 울울창창한 고요를 나는 미륵들의 미소라 불렀다 한 걸음의 말도 내놓지 않고 오롯하게 큰 침묵인 그 미륵들 이 잔혹한 말들의 세월을 견디게 하였다 그러나 전나무 숲이 들어앉았다 나가면 그뿐, 마음은 늘 빈집이어서..

詩--詩한 2021.06.22

낮은 곳으로 - 이정하

낮은 곳으로 - 이정하 낮은 곳에 있고 싶었다. 낮은 곳이라면 지상의 그 어디라도 좋다. 찰랑찰랑 고여들 네 사랑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한 방울도 헛되이 새어 나가지 않게 할 수 있다면. ​ 그래, 내가 낮은 곳에 있겠다는 건 너를 위해 나를 온전히 비우겠다는 뜻이다. 나의 존재마저 너에게 흠뻑 주고 싶다는 뜻이다.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Will You Still Love Me Tomorrow - Roberta Flack

詩--詩한 2021.05.17

5월 - 오세영

5월 - 오세영 ​​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부신 초록으로 두 눈 머는데 진한 향기로 숨 막히는데 ​ 마약처럼 황홀하게 타오르는 육신을 붙들고 나는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 아아, 살아있는 것도 죄스러운 푸르디 푸른 이 봄날 그리움에 지친 장미는 끝내 가시를 품었습니다 ​ 먼 하늘 가에 서서 당신은 자꾸만 손짓을 하고…· Autumn rose / Ernesto Cortazar

詩--詩한 2021.05.09

오월편지 / 도종환

오월편지 / 도종환 붓꽃이 핀 교정에서 편지를 씁니다 당신이 떠나고 없는 하루 이틀은 한 달 두 달처럼 긴데 당신으로 인해 비어 있는 자리마다 깊디깊은 침묵이 앉습니다 낮에도 뻐꾸기 울고 찔레가 피는 오월입니다 당신 있는 그곳에도 봄이 오면 꽃이 핍니까 꽃이 지고 필 때마다 당신을 생각합니다 어둠 속에서 하얗게 반짝이며 찔레가 피는 철이면 더욱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은 다 그러하겠지만 오월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가 많은 이 땅에선 찔레 하나가 피는 일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 세상 많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을 사랑하여 오래도록 서로 깊이 사랑하는 일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 생각을 하며 하늘을 보면 꼭 가슴이 메입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서로 영원히 사랑하지 못하고 너무도 아프..

詩--詩한 2021.05.07

목련이 진들 - 박용주

목련이 진들 - 박용주 목련이 지는 것을 슬퍼하지 말자 피었다 지는 것이 목련뿐이랴 기쁨으로 피어나 눈물로 지는 것이 어디 목련뿐이랴 우리네 오월에는 목련보다 더 희고 정갈한 순백의 영혼들이 꽃잎처럼 떨어졌던 것을 해마다 오월은 다시 오고 겨우내 얼어붙었던 이 땅에 봄이 오면 소리없이 스러졌던 영혼들이 흰 빛 꽃잎이 되어 우리네 가슴속에 또 하나의 목련을 피우는 것을 그것은 기쁨처럼 환한 아침을 열던 설레임의 꽃이 아니요 오월의 슬픈 함성으로 한 잎 한 잎 떨어져 우리들의 가슴에 아픔으로 피어나는 순결한 꽃인 것을 눈부신 흰 빛으로 다시 피어 살아있는 사람을 부끄럽게 하고 마냥 푸른 하늘도 눈물짓는 우리들 오월의 꽃이 아직도 애처러운 눈빛을 하는데 한낱 목련이 진들 무에 그리 슬프랴 Vykhozhu Od..

詩--詩한 2021.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