閑雲野鶴

반계수록(磻溪隨錄)

푸른하늘sky 2022. 2. 24. 11:25

 

 

반계 유형원이 31세에 저술을 시작하여 49세에 완성한 ‘반계수록’은 한국 학술사에서의 의미로 보아 

정말로 획기적인 책이다. 만권이 넘는 장서를 갖추고 불철주야 저술 작업을 계속했던 

전라도 부안군의 우반동 ‘반계서당’은 그 책의 산실이었기에 참으로 뜻이 깊은 역사의 땅이고 사상의 고향이다.

 

‘반계수록’은?

 

조선 실학의 1조(祖)는 반계 유형원이며 2조는 성호 이익이며 3조는 다산 정약용이다. 반계의 ‘반계수록’으로부터 조선의 실학사상은 본모습을 보였고, 그 이후의 실학자들은 대부분 반계의 경륜과 경세론(經世論) 및 경국제민(經國濟民)의 경제사상에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반계수록’의 서문을 짓고, ‘반계유선생전’이라는 전기를 지은 성호 이익이 가장 존숭하고 사숙했던 학자가 반계였음은 말할 필요도 없으며, “지칠 줄 모르며 세상을 경륜하려던 뜻은 유독 반계옹에게서 볼 수 있네…”라는 시를 지어 반계의 학문을 찬양한 다산 정약용도 반계처럼 존숭한 선학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더구나 학파가 다르던 연암 박지원도 ‘허생전’에서 세상을 건질 대표적 인물로 반계를 거론했던 점으로 보면 그간의 사정을 알 만하다.

반계와 동시대의 인물로 ‘반계수록’을 읽고 감탄해마지 않았던 학자로는 소론계의 대학자 명재(明齋) 윤증(尹拯:1629~1714)과 그의 뛰어난 제자 덕촌(德村) 양득중(梁得中:1665~1742)이었다. 재야 학자로서 학덕으로 추앙받아 정승의 지위에까지 오른 분이 윤증이고, 학문적 역량으로 천거받아 은일 승지에까지 오른 분이 양득중이다. 이들 스승과 제자가 최초로 ‘반계수록’의 진가를 알아주어 끝내는 세상에 공간(公刊)되는 기회를 맞게 되었다. 윤증은 반계보다 7세 연하로, 83세이던 1711년에 ‘반계수록’을 읽고 크게 감동받고 책의 발문을 썼으니 반계가 타계한 38년 뒤의 일이었다.

“‘수록’이라는 책은 고 처사(處士) 유형원군이 지은 책이다. 그 글을 읽어보면 그 규모의 큼과 재식(才識)의 높음을 상상할 수 있다.… 세상을 경륜할 업무에 뜻이 있는 사람이 채택하여 실행할 수만 있다면 그대가 저술했던 공로는 그때에야 제대로 나타날 것이다. 그것이 어떻게 사라져버릴 이치가 있겠는가”라고 하여 불멸의 저서가 될 것을 이미 윤증은 예언하고 있었다. 활용할 임자만 만나면 그 책은 천하국가를 다스릴 훌륭한 저서라고 평가를 내린 것이다.

윤증에게서 책을 빌려 읽어본 제자 양득중은 더 감탄한 나머지 임금에게 상소하여 책의 간행을 권하였다. 1741년 영조17년의 일인데, “근세의 선비 유형원이 법제를 강구하여 찬연스럽게 갖추어놓았습니다. 전제(田制)로부터 시작하여 교육문제, 관리등용문제, 관직·봉급·군사제도에 이르기까지의 세세한 것을 모두 거론하여 털끝 하나인들 빠뜨리지 않았습니다”라고 책의 가치를 나열하여 나라를 건질 계책으로 활용하기를 주장하였다. 이래서 반계가 타계한 97년 뒤인 1770년에 책은 간행될 수 있었다.

양득중의 상소가 있기 4년 전에 약산 오광운(吳光運)은 반계수록의 서문을 지은 바 있고 그의 일대기인 행장을 짓기도 하였다. 1746년에는 홍계희(洪啓禧)가 반계선생전을 지어 그 공덕을 상세히 나열하기도 하였다. 오광운은 “우리나라 같은 조그마한 나라를 위해서 설계했지만 그 범위가 넓고 커서 실제로 천하 만세에 유용한 책이다”라고 찬양하였다. 홍계희는 경세학이야 말할 것 없지만 반계는 성리학에도 밝아 경세학에 근본이 있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하였다.

반계학문의 충실한 후계자는 누가 뭐라 해도 성호 이익이다. 성호는 나라를 다스리면서 당대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가장 잘 알았던 사람으로 역사 이래 두 사람을 꼽는다면 율곡 이이와 반계 유형원이라고 확언을 했다. 세상을 경륜할 능력의 소유자도 율곡과 반계를 꼽은 성호의 주장은 옳았다. 그래서 성호는 “조선을 세운 이래로 세상을 경륜할 인재로 말하면 모두가 반계를 첫머리로 꼽는다”라는 높은 평가를 내렸다.

조선 말기의 해사(海史) 홍한주(洪翰周)라는 선비는 그의 저서 ‘지수염필(智水拈筆)’에서 조선 500년 동안 가치 높은 책으로 율곡 이이의 ‘성학집요’와 허준의 ‘동의보감’, 반계의 ‘반계수록’ 및 이만운의 ‘문헌비고’ 등 네 종류를 지목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를 경륜할 책으로 그 역량과 경륜은 비록 천백년 뒤라도 종당에는 실행할 날이 있을 것이다”라는 의미 있는 말을 남겼다. 현실적 타당성을 지녔고, 실제 일에서 반드시 실천할 논리를 지닌 경세서라고 평했다.

 

반계의 사상과 정책

근래에 발견된 반계의 논문으로 ‘정교(政敎)’라는 짤막한 글이 있다.

“천하를 다스리려면 공전(公田)제도와 공거(公擧)제도를 실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정치를 잘 해도 헛된 일이 되고 만다”라고 하여 통치원리로 토지의 공유와 인재발탁의 방법으로 공변된 천거제도 활용을 강조하였다. 요즘으로 말하면 토지 공개념과 선거제도를 통한 인재의 등용이니 얼마나 탁견의 예언인가. 대단한 발상이었다.

“토지 공개념이 제대로 실행되면 모든 제도가 바르게 된다. 빈부가 저절로 균등해지고 분배가 저절로 확정되고 호구도 저절로 밝혀지고 군대도 저절로 정돈되어지니 이렇게 한 뒤라야만 백성을 교화하는 정책이 정해질 수 있다”라고 하여 통치 원리가 어디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 추천제도가 없이 글짓기나 경전 암송하는 과거를 통해서 인재를 뽑는 일 때문에 중세의 긴 밤이 계속된다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수록’ 이외에도 반계는 한우충동의 많은 저서를 남겼다. ‘이기총론’, ‘논학물리’, ‘동사강목조례’, ‘군현제’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지금은 전하는 것이 많지 않다. 다행히 근래에 여기저기서 새로운 저서들이 나타나고 있어 다행스럽다. 특히 ‘병서’, ‘음양율려’, ‘성문(星文)’, ‘지리’ 등의 저서가 아직 전해지지 못함은 마음 아픈 일이다.

 

반계 유형원, 그가 누구인가. 공리공론의 관념론에 사로잡혀 공언(空言)만 판치던 세상, 문약(文弱)하기 이를 데 없어 끝내 삼전도에서 인조대왕이 무릎을 꿇고 항복했던 치욕의 나라, 그런 나라를 그냥 두고 볼 수 없다고 분연히 일어나 나라를 새롭게 개혁하고 변혁시키려던 꿈을 품었다.

 

위대한 계승자 성호는 반계를 평했다. “반계선생은 호걸의 선비였다. 학문은 천인(天人)을 꿰뚫고 도(道)는 온 인류를 포용하고 있다.… 정치의 실무를 알게 해주는 요결(要訣)이며… 그 강령(綱領)의 웅장함과 절목(節目)의 치밀함은 읽는 이들이 절로 알리라”는 대찬을 바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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