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 곽재구 처음 / 곽재구 두 마리 반딧불이 나란이 날아간다 둘의 사이가 좁혀지지도 않고 말소리가 들리지도 않고 궁둥이에 붙은 초록색과 잇꽃색의 불만 계속 깜박인다 꽃 핀 떨기나무 숲을 지나 호숫가 마을에 이른 뒤에야 알았다 아, 처음 만났구나 詩--詩한 2015.08.19
아름답게 나이 들게 하소서/ 칼 윌슨 베이커 아름답게 나이 들게 하소서/ 칼 윌슨 베이커(1878~1960)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게 하소서 해야 할 좋은 일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레이스와 상아와 황금, 그리고 비단도 꼭 새것만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오래된 나무에 치유력이 있고 오래된 거리에 영화가 깃들듯이 이들처럼 저도 나이 들어.. 詩--詩한 2015.08.14
각별한 사람 / 김명인 각별한 사람 / 김명인 그가 묻는다, “저를 기억하시겠어요?” 언제쯤 박음질된 안면일까, 희미하던 눈코입이 실밥처럼 매만져진다 무심코 넘겨 버린 무수한 현재들, 그 갈피에 그가 접혀 있다 해도 생생한 건 엎질러 놓은 숙맥(菽麥)이다 중심에서 기슭으로 번져가는 어느 주름에 저 사.. 詩--詩한 2015.08.10
틈, 사이 - 복효근 틈, 사이 / 복효근 잘 빚어진 찻잔을 들여다본다 수없이 실금이 가 있다 마르면서 굳어지면서 스스로 제 살을 조금씩 벌려 그 사이에 뜨거운 불김을 불어넣었으리라 얽히고설킨 그 틈 사이에 바람이 드나들고 비로소 찻잔은 그 숨결로 살아있어 그 틈, 사이들이 실뿌리처럼 찻잔의 형상을.. 詩--詩한 2015.08.02
방을 얻다 - 나희덕 방을 얻다 / 나희덕 담양이나 창평 어디쯤 방을 얻어 다람쥐처럼 드나들고 싶어서 고즈넉한 마을만 보면 들어가 기웃거렸다. 지실마을 어느 집을 지나다 오래된 한옥 한 채와 새로 지은 별채 사이로 수더분한 꽃들이 피어 있는 마당을 보았다. 나도 모르게 열린 대문 안으로 들어섰는데 .. 詩--詩한 2015.08.02
감지(柑紙)의 사랑 - 정일근 감지(柑紙)의 사랑 / 정일근 비단 오백 년 종이 천 년을 증명하듯 우리 한지에 쪽물을 들인 감지(柑紙)는 천 년을 견딘다는데 그 종이 위에 금니은니로 우리 사랑의 시(詩)를 남긴다면 눈 맑은 사람아 그대 천 년 뒤에도 이 사랑 기억할 것인가 감지에 남긴 내 마음이 열어주는 길을 따라 경.. 詩--詩한 2015.08.02
내가 졌다 - 윤효 내가 졌다 / 윤효 주룩주룩 비 내리는 아침이었다 우산 둘이 비켜갈 수 없는 좁다란 길 저만치 네가 오고 있었다 한 손엔 보조가방을 들고 있었다 우산 접고 비켜줘야지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비 맞으며 네가 먼저 비켜섰다 어린 것이 어른을 이기다니 버릇도 없이 Chopin - Preludes Op.28 'Raindr.. 詩--詩한 2015.08.02
기다림 - 이생진 Nicoletta Tomas 기다림 - 이생진 너만 기다리게 했다고 날 욕하지 말라 나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너만큼 기다렸다 이상하게도 같은 세월에 엇갈린 입장을 물에 오른 섬처럼 두고두고 마주 보았다. Aranjuez Mon Amour - Gheorghe Zamfir Panflute 詩--詩한 2015.08.02
저녁 연기 같은 것 - 오탁번 저녁 연기 같은 것 - 오탁번 시는 저녁연기 같은 것이다 가난하지만 평화로운 마을, 초가집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저녁연기가 바로 시다. 해가 지는 것도 모른채 들에서 뛰어 놀다가, 터무니 없이 기다랗게 쓰러져있는 내 그림자에 놀라 고개를 들면 보이던 어머니의 손짓같은 연기, 하늘.. 詩--詩한 2015.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