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詩한 970

상한 영혼을 위하여 /고정희

상한 영혼을 위하여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With You - Giovanni Marradi

詩--詩한 2021.01.08

송년 기도 / 이해인

송년 기도 / 이해인 올 한해도 친구가 제 곁에 있어 행복했습니다 잘 있지? 별일 없지? 평범하지만 진심 어린 안부를 물어오는 오래된 친구 그의 웃음과 눈물 속에 늘 함께 있음을 고마워합니다 사랑한다 말하지 않아도 사랑보다 깊은 신뢰로 침묵 속에 잘 익어 감칠맛 나는 향기 그의 우정은 기도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음악입니다 친구의 건강을 지켜 주십시오 친구의 가족들을 축복해 주십시오

詩--詩한 2020.12.31

송년/김남조

송년/김남조 사방 꾸짖는 소리만 발 구르며 통분하는 사람만 이에 한 대답 있어 내 잘못이라 모두 내 잘못이라며 빌고 빌어 손바닥 닳고... 퍼렇게 언 살 터지느니 이렇듯 내 속죄 값으로 너희는 편안하여라 삼동의 아린 눈물 더하여 땅에 바라는 온갖 꾸지람을 피에 보태고 살에도 보태어 질기고 풋풋한 것들 다시 솟아내리니 모쪼록 너희는 소망하여라 나직이 말씀하는 해 저문 강산 Auld Lang Syne - Kenny G

詩--詩한 2020.12.30

운주사 와불 한 쌍 / 장근배

운주사 와불 한 쌍 / 장근배 가을 꼬리 넘어 나뭇가지는 깨벗어 미륵불 옆에 누워 몸이나 덥히려고 영구산(靈龜山) 운주사(雲住寺) 갔더니 거대한 방주(方舟) 한 척 높이 올라있고 갑판에 미륵불 두 분 다정히 누워계시는데 반개(半開)한 눈이 솔찬히 섹시하더라 하룻밤에 천 불 천 탑 세우려던 불사는 첫닭 울었다는 누군가의 거짓말에 석공들 도망가 일어나지 못했다는데 미륵불도 중생들이나 한 가지여서 남녀 한 쌍으로 꽉 붙어계시더라 예쁘장한 각시불은 젊은 여성이라서 돌마다 도는 피가 얼마나 더운 지 눈(雪) 내리는 족족 사르르 녹는다더라 별똥별 한 곳으로 내려 박히는 곳이 운주사(雲住寺) 각시불의 자궁이라서 무수한 자식 낳아 하늘에 키운다는데 씨 없는 서방불은 그래도 좋아서 각시불 옆에 누워 봉긋한 배 부둥켜안고..

詩--詩한 2020.11.26

11월에 - 정 채봉

11월에 - 정 채봉 만추면서 겨울로 들어서는 길목 화장 지우는 여인처럼 이파리를 떨구어 버리는 나무들 사이로 차가운 안개가 흐르고 텅 비어버린 들녘의 외딴 섬 같은 푸른 채전에 하얀 서리가 덮이면 전선줄을 울리는 바람 소리 또한 영명하게 들려오는 것이어서 정말이지 나는 이 11월을 좋아하였다 삶에 회의가 일어 고개를 숙이고 걷다가도 찬바람이 겨드랑이께를 파고들면 '그래 살아보자'하고 입술을 베어 물게 하는 달도 이달이고 가스 불꽃이 바람 부는대로 일렁이는 포장마차에 앉아서 소주의 싸아한 진맛을 알게 하는 달도 이달이며 어쩌다 철 이른 첫눈이라도 오게 되면 축복처럼 느껴져서 얼마나 감사해한 달인가 Autumn Leaves - Giovanni Marradi

詩--詩한 2020.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