戒急用忍

아름다운 동행

푸른하늘sky 2008. 5. 22. 09:30
 
 
 
"승화, 아름다운 형벌"
 
"재호형의 전화를 받았다.
형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삶에 대한 희망이나 연민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형은 20년 전에 형수를 떠나보냈다. 유방암이었다.
딸아이가 갓 두 살이 되던 해였다.
형은 제대로 걷지도 못하던 아이를 지금까지 훌륭히 키워냈다.
아이는 지금 대학생이다. 엄마를 몹쓸병 때문에 잃은 탓인지 의대로 진학했다.
형은 유일한 혈육이자 일생의 동지였던 딸아이를 멀리 서울에 보내놓고
혼자서 버섯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그에게 딸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
 
 
지난겨울이었다.
방학을 이용해 고향에 온 아이가 우리 병원에 들렀다.
전날 아빠 농장에서 일을 돕다가 다리를 조금 다쳤다는 것이다.
특별한 외상의 흔적은 없었지만 아랫다리가 많이 부어 있었다.
다행히 엑스선 사진에서 아무런 문제가 보이지 않았다.
아이에게 물리치료를 처방하고 약간의 소염제를 처방해 주었다.
그런데 아이의 부은 다리가 일주일이 지나도 호전되지 않았다.
이상하게 여겨 다시 자세히 문진을 해보았더니 다리가 이렇게 부은 것은
몇 달 된 일이라고 했다.
다만 타박상을 입은 뒤에 조금 더 심해진 것 같다고 했다.
혹시나 신장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을 생각해서 소변검사를 해보았더니
엉뚱하게 소변 빌리루빈 수치가 너무 높았다.
간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었다.
이상한 느낌으로 아이를 초음파 검사실로 데리고 갔다.
그러면서도 간에 특별한 이상이 있을 나이가 아니어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이의 상복부를 초음파로 보는 순간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그림이 나타났다.
아이의 간에 무려 20㎝는 될 만한 커다란 덩어리가 보이는 것이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입에 침이 마르는 것이 느껴졌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간종양이었다.
초음파를 내려놓고 배를 만져보았더니,
우측 갈비뼈 밑으로 딱딱한 덩어리가 만져졌다.
이제는 양성이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 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하고 다시 초음파를 대보았지만
그럴수록 양성이기를 바라는 내 희망이 점점 약해지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아이를 집에 보내고 재호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병원에 도착한 형에게 종합병원에서 시티 촬영을 하도록 소견서를 쥐여주었다.
형의 표정은 마치 유령처럼 온기가 사라져 있었다.
다음날 형이 가져온 결과지에는 아이의 그것이 악성임을 가리키는
‘헤파토마’(Hepatoma)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형의 얼굴을 차마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형은 비장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저 아이 내가 살릴 거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릴 거야.
우리나라에서 안 되면 미국 가서라도 살릴 거야 ….”
그렇게 다짐하는 그의 눈에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길로 형은 아이를 데리고 서울로 올라갔고, 3주 뒤에 형이 다시 나를 찾아왔다.
이미 결과를 알고 있었지만 그냥 형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는 수술을 받지 못하고,
방사성동위원소를 암 덩어리에 주입하는 치료만 받은 뒤 다시 집으로 내려왔다.
수술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어 버린 것이다.
그로부터 석 달이 지난 뒤 아이가 형의 곁을 떠났고,
그 뒤로 형은 말을 잃어버렸다.
이 모든 것이 불과 몇 달 동안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런 형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아이가 다니던 학교에 장학금을 보내고 싶은데
학교에 대신 좀 전해 달라는 것이었다.
형은 차마 아이가 다니던 교정을 다시 볼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는 그렇게 딸을 보냈지만 대신 그 아이의 친구들에게
남은 사랑을 나눠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흔히 ‘승화’라고 이르는 그 아름다운 단어의 참뜻일 것이다."
 
 
--박경철/안동신세계연합병원장
 
 
**
 
 
일주일 전인가 보다
눈을 뜨니 5시40분!
 
차 한잔 하려고 물을 끓이며
한겨레신문을 펼치니
한 편의 칼럼이 눈에...
박경철이라는 필명이 반가워 읽은 글이다
 
 
 
박경철!
그 시골의사를 떠올리며
연전에 읽은 책 "아름다운 동행"을
꺼내 다시 읽었다.
3시간 동안....
 
 
개그맨 서 경석은
이 책에 대해
"울다가 웃다가, 웃다가 울다가....
마지막엔, 오늘 하루를 숨 쉬며
살아가는 데 감사하게 만드는 책"이라고 했더군!
 
 
이웃과 나눔
아름다운 동행
 
"오늘 하루도 감사함으로"
내게 주어진 당위라고 생각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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