戒急用忍

산행-모악산 종주

푸른하늘sky 2008. 5. 18. 01:08

지난 일요일

아침에 밖으로 나가 신선한 공기를 좀 마시며 햇볕을 쏘이고 들어와 책을 읽고 있었다. 

정호승의 “연인” 인데 얼마전 읽다가 덮어두고 있었더니

“푸른툭눈(?)”이가 늦게 읽는다고 성화를 대고 있는 중이었다.

오늘은 집어들은 김에 끝을 볼 요량이었다.

1시간여 읽으니 마지막 부분이다.

운주사 와불이 푸른툭눈이한테 무엇이 중요하냐고 묻자

사랑이라고 답하고 검은툭눈이에게 다시 돌아와 그 품에 안기는 것으로 끝이났다.

"사랑이란 오래 갈수록 처음처럼
그렇게 짜릿한게 아니야.

그냥 무덤덤해지면서 그윽해지는 거야.
아무리 좋은 향기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면 그건 지독한 냄새야.

사랑도 그와 같은 거야.
사랑도 오래되면 평생을 같이하는 친구처럼
어떤 우정 같은게 생기는 거야."
                                "정호승 연인中에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안방에 있던 휴대전화를 보니 대여섯통의 부재중통화가 찍혀 있었다.

1시간여 전부터 전화를 걸어 나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진동으로 해놓고 있었으니 모를 수 밖에..

더군다나 집중해서 책을 읽고 있었으니 까마득하게 몰랐던 것이다.

전화를 걸어 보니 친구 둘이서 등산가자고 나오란다.

우리집 앞에 와있으니 당장 나오라는 것이다.

이게 무슨 황당무계한 스토리인가?

아무 사전 통보도 없이 등산하자니..

그것도 아무 준비없는 나를 당장 나오라니...

약간은 기막힌(?) 처사지만

먹을 것,마실 것등등 다 준비했으니 몸만 나오면된다는 다그침에,

그래도 나를 불러주는 친구들의 성의를 무시할 수 없어 부랴부랴 준비를 하고 따라 나섰다.

어디로 가냐고 물었더니 모악산 종주를 한단다.

정상이 개방되었으니 가봐야될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사실 모악산 정상은 KBS시설등으로 오랫동안 차단돼 있었고,

등산객들은 정상주변만 어슬렁거리다 내려오는 아쉬움이 있었다.

정상을 간다는 이야기에 나도 약간은 구미가 당기기도 했지만,

종주라니..대여섯시간은 족히 걸릴 산행이 마음에 걸리는 것은 사실이다.

최근 여러 가지 상황으로 머리가 복잡한 나에게는 조금은 무리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산코스도 정하지 않아 어디로 내려올지 모르니 버스를 타고 가자고 하는 것이,

잘못하다가는 온 산을 헤집고 다니겠구나 하는 우려가 스쳐갔다.

하지만 이렇게 불려 나왔으니 어쩔 수 없이 하자는 데로 할 수 밖에...

연휴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산행에 나서고 있었다.

주차장도 가득차 군데군데 공터에 차를 세워야 할 정도로 붐볏으나

등산객들의 표정은 5월의 신록마냥 푸르고 밝았다.

또한 아카시꽃 향기는 온 하늘에 날려 싱그러움을 더하며

나를 몸살나게 할 정도로 강렬하게 다가와 지난 기억을 떠올리게 하였다.

그때도 5월이었다. 모 대학 교정으로 드라이브를 갔었지..

대학도서관 발코니에서 바라보는 밤하늘은 청회색의 바다로 펼쳐저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서로 바라보는 시선은 그윽하기만..

그때 스치고 지나가는 진한 아카시꽃 향기는 에로틱한 마술의 향기가 틀림없었던 것이다. 

그 아카시꽃 향에 취해 있던 나를 정신차리게 한 것은 수국이었다.

담장너머 피어 있는 하얀 수국은 탐스럽기 이를 데가 없고,

헛게꽃의 의미를 생각하는 사이 산밑 동네어귀에 다다랐다.

등산로 초입에는 오동꽃이 만개하였으나 철지난 철쭉,진달래는

그 생기를 잃어 주인없이 버려진 고무신 처럼 길가에 머물러 있었다.

우리가 택한 길은 한적하였다.

평소 주중에는 사람이 없어 약간 무서운 기분도 든다는 친구의 말에 수긍이 갔다.

조금 올라가자 찔레꽃이 하얗게 피었고,

지각한 제비꽃도 몇송이 보였다.

학교에서 지각한 녀석들이 선생님앞에 서있듯

몸을 베베꼬고 부끄러워하고 있는 제비꽃이라니...


한 참 올라가는중에 “저거 무슨 꽃이냐?” 묻는 친구에게

“모르겠는데” 건성으로 대답하고는 좀 더 올라가다 보니 생각이 났다.

그게 싸리나무였다.

“야!그거 싸리꽃이네”

그 후 우리는 군대에서 싸리나무로 빗자루 만들던 이야기를 시작으로
습관적으로 군대이야기를 한참동안 씨불이고(?) 갔다.

하여간 남자들이란....


“야!이제부터 능선을 따라 계속가는 거야” 친구의 말에 우리가 많이 올라온 것을 느꼈다.

조금 더 가서 벤치가 있는 곳에서 쉬자는 말로 행군은 계속되고..
 

모악산은 기가 내리는 산이라고 한다.

많은 사찰과 암자가 있고,김일성주석의 선대묘소도 있는 산이다.

모악산은 4월이 되면 산 전체에 벚꽃이 만발하고 신록이 우거져

예로부터 모악춘경(母岳春景)이라 불리는데,

변산하경(邊山夏景)·내장추경(內藏秋景)·백양설경(白陽雪景)과 함께 호남사경으로 꼽힌다.


현재 도립공원인데 이곳을 생명과 평화를 테마로 하여 개발해 나간다는 계획이 있다고 한다.

어머니의 산. 모악은 모든이가 생명의 근원을 배우는 자연이며,

그 자연의 품에 안겨 휴식과 충전을 얻는 쉼터인 것이다.

벤치가 나타났다.

걷기 시작한 뒤로 1시간 반정도 온 것같다.

김밥과 함께 막걸리 두병을 친구가 꺼내 놓자 와! 우리는 탄성을 질렀다

어떻게 막걸리를 가져올 생각을 했냐는거다.어제 저녁에 사다가 냉동실에 얼렸다가

오늘 가지고 왔다고 한다. 잘 숙성된 막걸리는 맛이 일품이었다.

게다가 김밥은 왜 이다지도 맛이 있는거야? 먹을 것,마실 것 다 준비한 흔적이 보였다.

나는 아침을 거른 상황이라 기막힌 그것들을 그냥 놔두지 않았다.

또 다른 친구가 배낭을 뒤적이더니 백설기와 사과를 내놓는다.

아니 커피까지!!! 딸내미가 아빠가 등산한다고 담아줬다고 은근히 자랑이다.

아들만 둘인 친구가 그 딸내미를 무척 좋아한다.

며느리 삼고 싶은 마음이 굴뚝인 것 같다.

친구간에 사돈되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잘 되도록 옆에서 부채질은 하지만 어찌될런지...

그러니 그 커피가 얼마나 맛이 있겠는가?

야튼 산중에서 그럴듯한 디저트까지 즐기게 되었으니

이런 호화로운 오찬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게 점심을 먹고 한 참을 쉬다가 다시 걷기 시작한다.

상당히 가파른 경사지가 눈 앞에 나타났다.

조금오르니 숨이 턱턱 막혔다

식사 후라 그러러니 했다.그런데 갈수록 속도가 늦어져 뒤쳐지는 것이다.

체력이 많이 떨어졌나? 아니지 체력 하나는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고 살아온 세월이었는데..

계속 가슴은 답답하게 느껴지고 얼굴엔 진땀이 났다.

내리막 길로 접어드니 조금 나았다. 그래도 가슴은 답답하기만 하고..

그렇게 한 참을 가다가 쉬기로 했다.

바위에 기대앉아 저 멀리 먼 산을 보니 갑자기 눈 앞이 뿌연해지는 것이다.

어?왜 이러지 눈에 땀이 들어갔나? 수건으로 눈을 닦어도 그대로이다.

심호흡을 하고 다시 보아도 뿌연하기만 하다.

순간 요즈음 스트레스가 심해 몸에 이상이 생기는 건가?하는 불길한 생각이 스쳐갔다.

이것저것 아무리 시도를 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머리까지 어질어질해지고 있었다.

아!이러다 쓰러지고 의식을 잃고 호흡이 멈추면 죽는 것이구나.

죽음이 눈 앞에 있는 것 같았다. 친구에게“나 좀 이상하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흔히 듣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중에

‘어!몸이 이상하다‘고 말하더니 쓰러졌다는 것과 똑 같은 이야기를 내가 하고 있었다.

친구는 장난인 줄로 알고 대수롭지않게 반응했다.

그러나 내가 “진짜야! 눈 앞이 뿌연해”라고 했더니 그때서야 표정이 변했다.

친구가 물을 한 모금 마시라고 전해줬다.물을 마시는 순간 체했나?하는 생각이 스쳤다.

벨트를 풀고 바지단추를 풀었다.순간 트림이 나오고,

아! 체했구나. 벨트를 아예 몽땅 풀어내고 지퍼까지 내렸다.

엄지와 검지 사이를 꾹누르고 있었다.

속이 쑥 내려가는 느낌이 왔다.

살았다! 이제는 살았구나 싶었다.친구들도 이젠 화색이 돈다고 했다.

눈 앞이 다시 맑아 졌다.죽음의 문턱까지 갔다온 느낌이었다.

막걸리에 체하다니..막걸리에 취한 적은 많아도 체한 것은 처음이었다.

참으로 별일이다 싶은 생각을 하는 데

앗!저쪽에서 여성등산객이 다가오는 것이다.

서둘러 지퍼를 올리고...

 

다시 정상을 향해 출발

한 친구는 나 때문에 119 부르고 난리 나는줄 알았다나..

그래도 다시 정상을 가게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하며

나를 걱정해 주는 것이 영락없는 친구인 것이 확실하다.

이 또한 고맙지 아니한가?

정상에서 바라보는 대지는 아름다웠다.

하늘을 훨훨 날아가는 대자유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이 또한 자연이 주는 기쁨이리니...

전주시가를 내려다보고 있노라니 옆에 서있던 등산객이

“저~ 쪽 넓은 평야이름이 무엇인가요?”

전주에서 김제로 이르는 벌판을 가르키고 있었다.

“아마 원평들이  맞을 겁니다”

그 분은 처가가 전주라서 가끔 주변의 산을 등산한다고 한다.

원평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고부에서부터 달려온 녹두장군의 거친 숨소리와

동학군들의 발자국소리가 들리는 듯하기도 했다.

“여기 언제부터 개방했나요?”그 등산객의 질문은 계속되고

옆에 있던 친구가

“한 달 체 않되었지요.이게 다 시민단체가 노력해서 얻어 낸 결과입니다”

그 등산객에게 전주가 처가이면 장가는 잘 들은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 주고 우리는 하산하기로 했다.


하산로는 금곡사쪽으로 잡았다.

 

중인리에 도착해서 보니 꼭 5시간 걸렸다.

모악산 정상을 향한 종주가 막을 내리고 있었다.

시민들의 노력으로 잃었던 우리의 권리를 찾아 그 덕분에 정상에 오르고

사람을 만나고 이런저런 이야기로 소통하며 사람냄새를 주고 받고

자연을 만끽하는 즐거움이라니...

시민단체 만세!!

시민의식이 가져다 준 행복한 산행이었다.

  

나는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온 산행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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