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조선은 역사가 아닌 허구적 신화에 불과하고, 고조선은 원시적인 부락이었다가 서기전 2세기 무렵 중국에서 온 위만에 의해 겨우 국가로 성장할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곧 망해서 중국 한나라가 한반도 북부에 설치한 한사구을 식민 통치하면서 한국사는 본격적인 발전을 이룩하게 되었다."
이것이 일제 식만사학자들이 정교하게 이론화한 한국사의 출발점이다.
이주한은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비틀어진 우리 역사의 출발점을 큰 문제로 지적하면서, 일제와 해방 이후 식민사관에 인해 왜곡된 우리 고대사를 바로잡는 대장정에 뛰어들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마치 문헌 고찰은 이래야 한다는 식의 모범을 보는 것 같았다. 단군조선, 삼국과 가야 등 우리 고대사에 대해 올바른 인식의 재정립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저자의 노력은 참으로 감동적이다.
그는 현재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의 연구위원으로 일하면서 비틀어진 한국사의 원형을 복원하기 위해 치열하게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최근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킨 바 있는 그의〈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후속작이다.
인간은 이야기로 사는 존재다. 이야기는 기억이며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을 담고 있다. 이야기 없는 인간은 없으며 거기에 자신과 조상, 민족과 공동체가 있어 삶의 원동력이 된다. 그런데 한국사에는 이야기가 없고 죽은 단어들이 박제되어 있다. 단편적인 사실이 앞뒤 연결 없이 조각조각 나열되어 있다. 이렇게 한국사는 죽어 있다.
이주한은 이 지점에 일제 식민사관이라는 큰 독사가 똬리를 틀고 앉아 있어 우리 역사는 원형을 잃고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고 지적한다. 박제된 우리 역사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우선 왜곡된 고대사를 바로잡는 작업이 선결 요건일 것이다. 그는 이를 위해 일제 조선사편수회에서부터 해방 이후 주류 사학계의 계보 및 그들이 보인 행적 등을 그들이 했던 말과 글들 통해 낱낱이 훑고 있다.
저자는 "우리 사회의 많은 분야 중에서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할 것이 역사관"이라고 꼬집는다. 그는 "역사관은 한 사람의 종합적인 인식체계이자 한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보고 있다. 맞는 말이다!
무릇 한 역사를 해석하고 이론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발굴을 통한 물증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이론과 물증은 상호 의존적인 두 바퀴와 같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를 모두 일제에게서 배워야 했다. 그러다보니 사학계는 일제 황국사관과 식민사관에 의해 큰 영향을 받아 우리 역사를 바로 보지 못하는 눈뜬 장님 꼴이 되고 말았다.
이병도와 김원룡 그리고 그 후학들(이기백, 이기동, 김정배, 서영수, 노태돈, 서영대, 송호정 등)은 황국사관에 물든 일본 스승의 논리만 앵무새처럼 따라 했을 뿐 그 어떤 논리적 근거도 물증도 예로 들지 못했다. 이 부분은 이주한이 매섭게 지적하는 부분이다.
현재 우리 사학계는 이병도의〈국사대관〉과 이시백의〈한국사 신론〉에 의해 기술된 식민사관의 관점이 정설로 자리잡고 있다. 가령 이병도는 단군 조선이 신화에 불과하기에 그 독자성을 부인하고, 고대 왕국은 한사군에 의해 중국 식민지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발전했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기백은 우리 고대사를 '원시공동체'와 '성읍국가' 등으로 단정짓고 격하시키고 있다. 일찍이 일제가 한일합방의 타당성을 사적으로 증명하기 위해〈삼국사기〉초기 기술을 부정함으로써 우리 고유의 고대사 발전을 말살하려 했듯이 말이다.
이병도, 이기백 등이 단재 신채호를 극렬 비판한 것은 쓰다 소키치 등으로 대표되는 일제에 의해 왜곡된 황국사관을 반성없이 전수받은 그들의 식민사관 본질이 드러날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단재는 역사의 실증에 철저했던 반면, 그들은 그 어떤 실증적 자료로 제시할 수 없었다. "쓰다 소키치가 가라사대, 우리가 이르노니", 뭐 이런 식이 아닐까.
이주한은 이렇듯 주류 사학계의 자기 비하적 인식과 시대 구분에 대해 그 어떤 문헌적, 고고학적 근거 없이 횡행하는 현실에 개탄하고 있다.
"이제 우리가 나서서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이병도와 김원룡, 그리고 그 후학들에 의해 왜곡된 우리 고대사를 철저히 해부한다. 논리적 차원의 반격이 아니라 다양한 문헌 고찰과 사건을 통해서 말이다.
저자는 식민주의 역사관을 극복하고 새로운 한국사관을 세우는 일은 가치관을 설정하는 작업이라고 본다. 일본이나 중국의 관점이 아니라 한국의 주체적 관점에 서면 새로운 사실이 보이고, 전혀 다른 의미와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식민사관의 가장 큰 폐해는 주체성을 상실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지배자가 주입한 가치에 따라 차별과 억압을 감내하고 체념하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일제가 황국사관, 식민사관을 통해 노렸던 것이리라.
문제는 이런 폐혜가 바로잡히지 못하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것이다.
작년 9월 18일 중앙일보는 온라인 기사에서 "경기도교육청(교육감 김상곤)이 검증되지 않은 주장이나 사실과 다른 내용을 담은 중·고교용 교재를 발간했다가 동북아역사재단의 수정 권고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지적한 오류는 아래 표와 같다.
* 관련 기사 : '발해 건국' 대조영이 고구려왕? 역사책 황당
문제의 발단은 이러했다. 경기도교육청이 중·고생용으로 작년 6월에 간행한 교육 자료집인 ‘동북아 평화를 꿈꾸다’에 무리한 주장과 오류를 발견하고 최근 교과부에 시정 권고를 요청했다. 이에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학계에서 논쟁이 있는 사항을 역사교육 자료로 사용할 경우 관련국의 역공을 받을 우려가 있으므로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중국의 동북공정뿐 아니라 일본의 식민사관과도 맞서 싸우라는 뜻에서 고구려역사재단을 확대˙개편한 조직이다. 이주한에 의하면 이를 한국 주류 식민사학계가 장악했다. 식민사관의 맹주인 김정배가 고구려연구재단 초대 이사장이었고, 그의 스승 신석호는 이병도와 함께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활동한 인물이다.
이주한은 이처럼 뒤틀린 역사를 바로잡기 위하여 그간 노력해 온 신채호에서부터 김용섭, 이덕일, 이종원 그리고 윤내현 등 여러 학자들의 성과와 식민사관에 대한 반박을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가령 윤내현에 의하면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을 통해 고조선 지역의 청동기문화는 서기전 2500년경인 것으로 이미 오래 전에 밝혀졌다고 한다.
하지만 단군 조선의 실체를 실증하고자 한 그의 노력은 치열했고 지금까지 일부 후학들에 의해 전승되고 있다.
이주한은 결코 쉽지 않은 내용을 끈질긴 인내심으로 마지막까지 읽어낸 독자들에게 "머리 숙여 경의와 감사를 전"하며 끝을 맺는다.
마침내 난 이 책을 다 읽고 내려놓는다. 가슴 뭉클하다!
그래, 우리가 만주벌판과 요동을 무대로 기세를 당당히 떨치던 큰 민족이었구나.
이제 또다른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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