習靜偸閑

2005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푸른하늘sky 2018. 1. 2. 22:26


 
나는 내가 누구의 자식인지 끝내 어머니에게 묻지 못했다. 묻지 않았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자식이었던 것이다.
분홍 진달래가 산야를 뒤덮던 봄에 어머니는 상여에 실려 아버지 곁으로 갔다. 앙장의 네 귀퉁이를 장식한 흰 지화가 바람에 흔들렸다. 평생, 자기를 증오하듯 어둠과 습기를 기꺼이 안아들여 자식을 사랑으로 지켜온 어머니의 시신이 간수를 빼낸 새하얀 소금처럼 정화되어 꽃상여 안에 누워 있었다. 무명 상복을 입은 서른 명의 자식과 손주들이 숨두부처럼 몽글몽글 상여 뒤를 따랐다. 그 무성하고 엄숙하게 연속되는 생명들을 바라보며 나는 마침내 혼자 울며 중얼거렸다. 당신의 생은 위대했습니다.
그때 쏟았던 많은 눈물은 간수처럼 짜고 썼으나, 또한 어머니의 두부처럼 달고 고소했다. 그리고  두 책의 밑줄 친 부분을 대조하고 있는 지금,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제대로 이해도 못하면서 내가 밑줄을 그을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손길이 작용하고 있었던 때문이라고.
 
- 구효서 '소금가마니'(<20085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해토)) 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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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효서 - 1957년 경기도 강화에서 태어났다.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마디」가 당선되어 작품활동 시작, 1994년 한국일보 문학상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 작품집 「노을은 다시 뜨는가」「확성기가 있었고 저격병이 있었다」「깡통따개가 없는 마을」과 산문집 「인생은 지나간다」, 장편소설 「늪을 건너는 법」「낯선 여름」「악당 임꺽정」「라디오 라디오」「비밀의 문」「남자의 서쪽」 등이 있다.


 

김경욱 - 1971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1999년 같은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3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중편 「아웃사이더」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04년 단편소설 「장국영이 죽었다고?」로 <한국일보> 문학상을 수상했다. 2005년 현재 울산대학교에서 문예창작론을 강의하고 있다. 장편소설 「아크로폴리스」「모리슨 호텔」「황금사과」「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는가」등이 있다.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했다.


 

박민규 - 1968년 울산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3년 제8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과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 「지구영웅전설」과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있다.


 

이기호 - 1972년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났다.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명지대학교 문예창작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1999년 <현대문학> 6월호에 단편소설 「버니」로 등단했다. 지은 책으로 「푸른 나르시스」「최순덕 성령충만기」 등이 있다.


 

천운영 - 1971년 서울에서 출생하고, 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과와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바늘」이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01년 제9회 대산문화재단 문학인 창작지원금을 받았고 지은 책으로 「바늘」이 있다.


 

하성란 -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92년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풀」로 등단했다. 도시의 일상과 현대인의 고독한 삶을 뛰어나게 그려내면서 새로운 소설 경향을 대표하는 작가로 부상하였다. 소설집 「루빈의 술잔」과 장편 「식사의 즐거움」이 있다.


 

윤대녕 - 1962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났다. 1990년 <문학사상> 신인상에 단편 「어머니의 숲」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은어낚시통신」「남쪽 계단을 보라」「옛날 영화를 보러갔다」「추억의 아주 먼 곳」「많은 별들이 한 곳으로 흘러갔다」 등이 있다. 1994년 제2회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1996년 제20회 이상문학상을 받았다.

 

 

올해로 제6회를 맞는 이효석 문학상 수상작품집. 구효서의 <소금가마니>를 비롯해 김경욱, 박민규, 이기호 등 주목받는 작가들의 작품이 함께 실려 있다. 특히 수상작인 <소금가마니>의 밀도 높고 서정적인 비유는 구효서 문학의 미학적 정점에 서 있다고 평가받았다.

아울러 기억의 서사에 농밀한 서정성과 긴장감을 부여하고 있다. 그밖에 천운영의 <백조의 호수> 박민규의 <코리아 스텐더즈> 등은 모두 독특한 문학세계를 간직하고 뛰어난 미학을 유감없이 자랑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수상작인 『소금가마니』는 어머니를 통해 자기 존재의 근원을 들여다보려는 내밀한 욕망을 밀도 높고 서정적인 비유로 그려냈다. 기억의 서사에 농밀한 서정성과 긴장감을 부여한 이 작품은 구효서 소설이 도달한 미학적 정점에 서 있는 것으로 평가받았다. 그 외에도 추천 우수작에 오른 작품들은 한결같이 작가들의 개성을 잘 드러내면서도 새로움을 듬뿍 그러안고 있다.

 

본문내용
불행한 출생의 내력

딸을 해산한 지 사흘도 안 된 어머니의 허리춤을 끌어다 마당에 내다 꽂으면서, 일손도 부족한데 천하태평으로 구들장이나 지고 있다며 아버지는 욕설을 퍼부었다. 어떻게 생겨난 딸자식이었던가. 찬바람 부는 동짓달 수수밭에서 술 취한 아버지는 어머니의 몸을 타고 앉아 목으로 조르고 있었다. 숨이 막힌 어머니의 낯이 청동빛으로 변해갔다. 바람에 흔들리는 마른 수수대의 붉은 자국들은 어머니의 몸이 뿜어낸 혈흔 같았다. 터질 듯한 분노로 아버지는 어머니를 겁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갓 스무 살 된 내 앞에서 내 두 살 위 누나의 탄생내력을 말하던 큰누님의 표정엔 넋이 없었다. 그 많던 자식들의 탄생이 하나같이 증오와 원망과 분노의 찌꺼기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는 아버지의 얼굴조차 기억 못하는 내가 오히려 다행스러웠다. 느닷없이 엉덩이를 걷어차여 어머니는 두부가 끓고 있던 가마솥으로 여러 차례 곤두박질쳤고, 밤새워 만든 두부모판에 얼굴을 처박히기 일쑤였다.
(p.15)

 
2005 황순원 문학상 수상문학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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