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누구의 자식인지 끝내 어머니에게 묻지 못했다. 묻지 않았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자식이었던 것이다.
분홍 진달래가 산야를 뒤덮던 봄에 어머니는 상여에 실려 아버지 곁으로 갔다. 앙장의 네 귀퉁이를 장식한 흰 지화가 바람에 흔들렸다. 평생, 자기를 증오하듯 어둠과 습기를 기꺼이 안아들여 자식을 사랑으로 지켜온 어머니의 시신이 간수를 빼낸 새하얀 소금처럼 정화되어 꽃상여 안에 누워 있었다. 무명 상복을 입은 서른 명의 자식과 손주들이 숨두부처럼 몽글몽글 상여 뒤를 따랐다. 그 무성하고 엄숙하게 연속되는 생명들을 바라보며 나는 마침내 혼자 울며 중얼거렸다. 당신의 생은 위대했습니다.
그때 쏟았던 많은 눈물은 간수처럼 짜고 썼으나, 또한 어머니의 두부처럼 달고 고소했다. 그리고 두 책의 밑줄 친 부분을 대조하고 있는 지금,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제대로 이해도 못하면서 내가 밑줄을 그을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손길이 작용하고 있었던 때문이라고.
- 구효서 '소금가마니'(<20085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해토)) 32쪽
올해로 제6회를 맞는 이효석 문학상 수상작품집. 구효서의 <소금가마니>를 비롯해 김경욱, 박민규, 이기호 등 주목받는 작가들의 작품이 함께 실려 있다. 특히 수상작인 <소금가마니>의 밀도 높고 서정적인 비유는 구효서 문학의 미학적 정점에 서 있다고 평가받았다.
아울러 기억의 서사에 농밀한 서정성과 긴장감을 부여하고 있다. 그밖에 천운영의 <백조의 호수> 박민규의 <코리아 스텐더즈> 등은 모두 독특한 문학세계를 간직하고 뛰어난 미학을 유감없이 자랑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수상작인 『소금가마니』는 어머니를 통해 자기 존재의 근원을 들여다보려는 내밀한 욕망을 밀도 높고 서정적인 비유로 그려냈다. 기억의 서사에 농밀한 서정성과 긴장감을 부여한 이 작품은 구효서 소설이 도달한 미학적 정점에 서 있는 것으로 평가받았다. 그 외에도 추천 우수작에 오른 작품들은 한결같이 작가들의 개성을 잘 드러내면서도 새로움을 듬뿍 그러안고 있다.
본문내용
불행한 출생의 내력
딸을 해산한 지 사흘도 안 된 어머니의 허리춤을 끌어다 마당에 내다 꽂으면서, 일손도 부족한데 천하태평으로 구들장이나 지고 있다며 아버지는 욕설을 퍼부었다. 어떻게 생겨난 딸자식이었던가. 찬바람 부는 동짓달 수수밭에서 술 취한 아버지는 어머니의 몸을 타고 앉아 목으로 조르고 있었다. 숨이 막힌 어머니의 낯이 청동빛으로 변해갔다. 바람에 흔들리는 마른 수수대의 붉은 자국들은 어머니의 몸이 뿜어낸 혈흔 같았다. 터질 듯한 분노로 아버지는 어머니를 겁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갓 스무 살 된 내 앞에서 내 두 살 위 누나의 탄생내력을 말하던 큰누님의 표정엔 넋이 없었다. 그 많던 자식들의 탄생이 하나같이 증오와 원망과 분노의 찌꺼기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는 아버지의 얼굴조차 기억 못하는 내가 오히려 다행스러웠다. 느닷없이 엉덩이를 걷어차여 어머니는 두부가 끓고 있던 가마솥으로 여러 차례 곤두박질쳤고, 밤새워 만든 두부모판에 얼굴을 처박히기 일쑤였다. (p.15) |
2005 황순원 문학상 수상문학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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