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香萬里

한국의 茶亭

푸른하늘sky 2018. 12. 23. 18:39

한국의 茶亭


다정(茶亭)의 멋으로 한층 끌어올려진 차의 맛

전병선(가천박물관 학예연구사)





다정(茶亭)을 말하기에 앞서 누정(樓亭)의 개념부터 집고 넘어가야할 듯싶다. 누정이란 누각(樓閣)과 정자(亭子)를 함께 일컫는 명칭으로 일반적으로 누(樓), 정(亭), 당(堂), 대(臺), 각(閣), 헌(軒) 등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본래 다정(茶亭)이란 간단한 다방(茶房) 등을 말하는 것이나 전통 가옥 양식인 누정(樓亭) 중에서 차를 마셨거나 마실 만한 자리에 있는 것을 총칭할 때에도 다정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실제로 어떤 누정에서 차를 마셨는지 자체를 밝히기는 매우 어렵다. 누정에 대한 기록 자체가 대단히 부족하기 때문에 유명한 옛 차인들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누정 외에는 추측만 할 뿐 명확한 근거를 댈 수는 없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선생의 다산초당(茶山草堂)이나 초의선사(草衣禪師)의 일지암(一枝庵) 정도가 다정의 명확한 범주에 든다. 일지암이야 다성(茶聖)인 초의선사의 흔적이 묻은 곳이니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정약용의 다산초당은 그 성격이 약간 다르다. 다산초당은 정다산의 유배지인 강진에 있는 작은 초당일 뿐이다. 정약용은 이 다산초당에서 후학을 지도하는 한편, 각종 저술에 힘썼으며, 당대 고승이었던 초의선사와 극적인 조우를 통해 차를 익히고 선가의 오묘한 이치에 한 걸음 다가가게 되었다. 이는 다산의 학문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이후 저술되는 각종 저작에 초의선사의 영향이 깊게 침투해 있다.
다산초당의 구조는 제자를 길렀던 서암(西庵)과 다산의 숙소였던 동암(東庵)으로 크게 나눠볼 수 있다. 정약용과 제자들이 다신계(茶信契)를 맺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다신계를 맺은 제자들은 유배가 끝나고 돌아간 정약용을 그리워하며 해마다 한 번씩 정약용에게 차를 보냈는데 이 차를 합심차(合心茶)라 하였다 한다. 십시일반(十匙一飯)하듯 제자들 자신들이 손수 덖은 차를 조금씩 모아 스승에게 보냈다고 하니 그 정성도, 의미도 깊다 하겠다.
초의선사의 일지암은 차의 중흥조를 말할 때 빠질 수 없는 유명한 곳이다. 하루는 초의선사가 일지암에 들어 전차동자(煎茶童子)에게 차를 내어오게 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전차동자의 실수로 다 달인 차를 약간 엎질렀던 모양이다. 다급해진 전차동자는 끓이지도 않는 물을 약간 섞어 그럴듯하게 보이게 하여 초의선사에게 바쳤는데, 초의선사는 차를 한 모금 입에 머금더니 이내 탄식처럼 “두 가지 물을 섞었는데 그 비율이 삼칠할(三七割)이구나”고 했다 한다.
일지암은 물론이거니와 지금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차시(茶詩) 등을 통해 많은 누정들이 차를 마셨던 장소로 이용되었을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운주루(運籌樓)에서 수사 심공(沈公) 낙신과 함께 두 수를 화운함(運籌樓陪水使沈公樂臣同賦, 二首 )

저물녘 가을 산은 문밖에 푸르렀고 晩山當戶碧
드문드문 뿌리는 비는 하늘을 씻었네 疎雨洗新秋
앉아서 청량한 밤기운을 마시니 坐到淸凉夜
둥근달이 누대를 채운다. 團團月入樓

달 밝은 가을밤에 月朗金風夜
하늘에는 맑은 이슬 어렸는데 天空玉露秋
우연히 그대 만나 술 마시고 시 쓰니 偶成文酒會
좋구나, 물가의 운주루여. 好是水明樓


- 『초의전집(草衣全集)』 중에서

초의선사가 위의 시에서 비록 술을 마셨다 하나 그것은 하나의 문학적 표현이고 짐작컨대 차를 마셨을 것이다. 그렇다면 위에서 말한 운주루(運籌樓)는 말 그대로 다정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듯 다정은 누정에 포함되어 있는 개념이기는 하나 어떤 특정한 건축양식을 지칭하기 보다는 누정을 어떤 용도로 사용했느냐 하는 하위개념이라 하겠다. 더욱이 선비들이 썼던 누정 중에서 전통적인 차의 산지인 영호남지방을 중심으로 한 누정은 다정으로써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으리라 여겨진다. 담양을 중심으로 한 일련의 누정들은 특히 다정으로 쓰였을 것이 분명한데 소쇄원(瀟灑園), 식영정(息影亭), 송강정(松江亭), 면앙정(傘仰亭) 등이 누정의 산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소쇄원은 우리 정원을 대표하는 건축물로써 그 아름다움은 아무리 칭송해도 모자람이 있다. 조선의 명신인 조광조(趙光祖)가 훈구파의 탄핵에 몰리자 그의 제자인 양산보(梁山甫)가 입신양명의 뜻을 버리고 낙향하여 조성한 원림(園林)이다. 수많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점차 그 규모가 줄었지만 아직까지도 깊은 묵향과 차향을 느낄 수 있는 건축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담양이라는 지리적 위치도 한 몫을 하는데, 멀지 않은 곳에 유명한 차밭이 조성되어 있어 상시로 차를 구할 수 있고, 또한 담양 특산인 대밭을 찾을 수 있어 자연을 감상하는 이로 하여금 고즈넉한 풍취를 느끼게 한다. 소쇄원이 앉아 있는 자리는 그리 넓지 않으며 원림에 들어서면 외부와 다소 격리된 느낌을 받게 되는데 이는 원경을 적절히 차단한 공간배치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겠다. 원경을 차단함으로써 좀더 깊은 사색을 요구하는 공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누정, 다정들은 우리나라 특유의 다정다감하면서도 단정한 운치가 있는 자연경관과 어울리게 설계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 안에서 아취 높은 풍류를 즐기기 적당하다. 이는 조선조 선비들의 높은 정신세계의 발현이라 말할 수 있는데 지나친 장식성을 피하고 자연과 인간이 합일되는 지점에 소박한 듯, 자리한 다정은 그 멋으로 차의 맛을 한층 끌어올렸음이 분명하다.

죽림정사에서 여름에 모임(夏日會竹林精舍)

내가 연고 찾아 여기 온 것은 遠客今將退故林
산수가 맑다고 들었기 때문일세 忽聞山水有淸音
문 앞의 벼이삭은 향내 풍기고 익고 門前紅稻香初熟
누대 넘어 푸른 봉우리 산길은 깊구나 樓外靑峰路轉深
아름드리 나무는 우뚝 천세를 누렸는가 老樹重封千歲主
새로 돋은 대나무 그늘이 창가에 비치는데 新篁翠積半窓陰
내가 이 어줍잖은 글을 여기 남기는 것은 强將拙句留鴻爪
떠난 후 그대들 기억에 남고 싶어서라네. 記取人間別後心
- 초의선사

'茶香萬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몸을 보양하는 차   (0) 2019.01.02
月朗金風夜   (0) 2018.12.23
神音品香  (0) 2018.12.23
雨後採新茶  (0) 2018.12.23
月下品茶  (0) 2018.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