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림트의 <키스>와 황금
너무나 다른 모습의 두 연인은 키스를 하는 동안 서로를 꼭 붙들고 있지만, 키스가 끝나면 이들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황금빛 장식의 대조에서 연인의 사랑이 가진 절망과 갈망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찬란한 빛을 내는 황금은 인류에게 가장 아름다운 불변의 가치로 오랫동안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예술에서 황금은 가장 고결하고 가장 화려한 무엇을 표현할 때 자주 등장한다. 왕의 권위를 상징하기도 하고, 부의 정도를 나타내기도 한다. 황금은 지리적으로 단절된 다양한 문화권에 있는 전세계 사람들에게 가장 보편적으로 보물로 여겨지는 물질이다.
황금의 불변성은 물과 공기, 대부분의 화학물질과 거의 반응을 하지 않는 물성에서 비롯된다. 물질의 고유한 특성인 물성은 이렇듯 물질의 가치를 결정하는 근원이다.
금은 화학적 불변성 외에도 물리적으로 독특한 특성이 있다. 특히 예술 분야에서 중요한 물성이 금의 연성과 전성이다. 금은 화합물이나 합금이 아닌 순수한 순금일 때 고체 상태에서 거의 파괴되지 않고, 변형이 쉬우며, 원자 수준까지 얇게 만들 수 있다. 한쪽 방향으로 잡아당겼을 때 잘 늘어나는 특성을 ‘연성’(延性)이라 하며, 두드려 얇게 펼 수 있는 특성을 ‘전성’(展性)이라 한다. 금은 연성과 전성이 가장 뛰어난 물질이다. 금은 두드려 아주 얇은 막으로 만들 수 있다. 실제로 금 1g을 얇게 펴면 1㎡의 금박을 만들 수 있다.
금은 전기와 열이 잘 통하고 부식에 강하며 인체에 해가 없어 현대 과학기술에서도 널리 사용되는 중요한 금속이다. 인류는 불변의 가치를 지닌 금을 화폐나 부의 상징으로 오랫동안 사용해왔다. 중세 시대에는 연금술사들이 가장 만들고 싶어 했던 금속이었다. 최근 국제공동연구팀은 우주 공간에서 두 중성자별이 충돌하는 과정을 관측하여, 인류 문명에 중요한 금, 텅스텐, 우라늄, 납 등의 무거운 원소가 중성자별 충돌 과정에서 생성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금은 이렇듯 머나먼 우주에서 만들어져 우리에게 전해졌다.
110년간 한번도 벨베데레 떠나지 않은 그림
황금빛을 사랑한 화가가 있다. 20세기 초 오스트리아 빈에서 활동한 구스타프 클림트는 금박을 사용하여 화려한 황금빛을 띠는 그림을 그리길 좋아했다. 그의 그림 중 가장 사랑받는 그림이 연인의 입맞춤을 표현한 <키스>(Der Kuss, 1907~1908년)이다. 사랑의 순간을 황금을 이용해 그린 클림트의 그림은 물질과 예술의 연결 관계를 가장 잘 보여 주는 예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이 소장되어 있는 벨베데레 궁전은 오스트리아 빈을 방문하면 반드시 들러야 하는 곳이다. 지난여름 빈을 방문하는 동안 이 그림을 직접 볼 기회가 있었다. 한쪽 벽면에 걸린 가로와 세로 모두 180㎝인 아담한 그림이 넓고 어두운 방 안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연인의 키스 장면을 묘사한 이 그림은 화려한 황금빛으로 장식되어 보는 사람의 감탄을 자아냈다. 그림 앞에 서 있으니 마치 그림 자체에서 빛이 새어 나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1908년 클림트의 이 그림이 처음 공개되자마자 벨베데레 궁전 오스트리아 미술관은 직접 그림을 구입해 지금까지 소장하고 있다. 미술관은 이 그림을 너무나 특별하고 소중하게 여겨 한 번도 외부로 이동시킨 적이 없다. 벨베데레 궁전이 소장한 클림트 컬렉션 중에서도 <키스>는 단연 독보적인 작품이다. 클림트는 19세기 말 모더니즘이 태동하던 오스트리아 빈에서 가장 성공적인 화가였으며, 동시에 여성의 관능미를 거침없이 표현한 에로티시즘 화가로서 논쟁의 중심에 선 인물이었다.
유화와 금박을 함께 사용한 클림트의 화법은 너무나 유명한데, 황금빛을 나타내기 위해 실제로 값비싼 금박을 아낌없이 사용했다. 클림트는 금세공업자였던 아버지에게서 금박을 다루는 기술을 익힌 것으로 보인다. 1903년 이탈리아 라벤나 지역을 여행하면서 우연히 비잔틴 모자이크 작품을 접한 클림트는 깊은 감명을 받는다. 이후 독특한 자신만의 화법을 개척하며 금박 기술을 활용해 여인의 고혹적인 매력과 사랑의 환희를 주제로 화려하고 자극적인 그만의 화법을 완성한다. 황금빛을 그림에 사용한 그의 절정의 시기를 클림트의 ‘황금시대’라 한다. 그림 <키스>는 그의 황금시대에 그린 가장 빛나는 그림이었다.
떠난 연인에게 바친 그림, <키스>
클림트는 비밀스러운 화가였다. 자신의 그림 작업을 대중에게 공개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아무런 설명도 남기지 않았다. 그림 작업은 작가 자신과 모델이 되어준 여인과의 비밀스러운 작업이었으며, 그 과정은 본인들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화가인 자신을 알고 싶으면 자신의 그림을 연구해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어쩌면 작품으로만 소통하고 싶었던 작가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클림트는 그림의 여러 모델과 깊은 관계를 가졌다. 여인의 아름다움을 그림에 담고 싶었던 그는 대상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탐색하고 싶었던 것 같다. 평생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았지만 그가 가장 사랑한 에밀리에 플뢰게라는 여인과 평생 정신적인 사랑을 나눈 것으로 알려진다. 이러한 배경에서 그림 <키스>의 실제 모델이 에밀리에 플뢰게라는 주장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일화에 따르면, 클림트는 플뢰게와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정신적인 사랑만을 나누었다고 한다. 그러다 클림트가 다른 여러 모델과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목격한 플뢰게가 그를 떠난다. 클림트는 크게 후회하면서 플뢰게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깨닫고 그의 사랑을 고백하는 <키스>를 그리며 용서를 구한다. 그 고백에 감동한 플뢰게는 결국 돌아온다. 플뢰게는 클림트가 운명할 때까지 그의 연인 자리를 지켰다고 한다.
클림트는 그가 그린 거의 모든 모델과 잠자리를 했을 정도로 성적 욕망에 집착하면서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여성 편력이 심한 문제적 인물이었다. 윤리적 관점에서 클림트는 심각한 결함이 있었다. 클림트와 플뢰게의 관계는 단순한 정신적인 사랑의 관계를 넘어 오랜 세월 절망과 갈망을 함께 나눈 복잡한 애증 관계가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대중에게 사생활이 노출되길 꺼린 클림트는 그림에 대한 설명이나 자신에 대한 기록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플뢰게도 클림트와 주고받은 편지를 모두 없앴다. 그래서 클림트를 알 수 있는 단서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의 그림에 대한 해석이 제각각인 이유다.
아무런 설명 없이 그림만 보고 작가의 의도를 헤아리기는 쉽지 않다. 클림트는 어떤 단서도 남겨 놓지 않았기에 오직 그림으로만 그의 생각을 읽어야 한다. 그림의 구도, 장식, 컬러 등으로 단서를 찾을 수 있지만, 그중에서 단연 눈에 띄는 특징이 바로 ‘황금빛’이다.
다시 <키스>를 유심히 살펴보자. 황금빛으로 표현된 키스하는 연인의 모습은 사랑의 본질을 잘 표현한다. 사랑의 가치는 고결하고 아름다운 황금과 같고, 사랑의 순간은 키스의 짜릿함처럼 찬란하고 화려하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사랑의 기억은 영원으로 이어진다. 사랑은 두 사람만의 보물이며 가장 화려한 순간이다. 황금빛은 온전한 사랑의 환희를 뜻한다. 동시에 사랑의 위태로움도 담고 있다. 황금빛은 사라질 것에 대한 간절함 또는 절망의 다른 표현이다. 너무나 소중해서 잃고 싶지 않은 사랑의 속성을 뜻한다.
황금빛으로 장식된 무늬도 작가의 상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열정적인 키스를 나누고 있지만 남녀의 사랑은 부자연스럽고 대조적이다. 그림에서 사실적이며 섬세하고 매끈하게 그려진 피부와 평평하고 화려한 옷의 장식이 대조를 이룬다. 남성의 옷에 그려진 흑백의 네모와 여성의 옷에 그려진 색색의 동그란 무늬도 대조적이다. 옷에 새겨진 황금빛 소용돌이 무늬도 남녀가 다르다. 여성의 소용돌이는 중심을 향하지만 남성의 것은 밖으로 향한다. 꽃밭 위에서 열정적으로 온몸을 굽혀 키스하는 남성과 절벽 끝에서 위태롭게 키스를 받는 여성의 자세는 어딘가 불안하다. 너무나 다른 모습의 두 연인은 키스를 하는 동안 서로를 꼭 붙들고 있지만, 키스가 끝나면 이들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황금빛 장식의 대조에서 연인의 사랑이 가진 절망과 갈망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황금빛 금박을 사용해 사랑의 갈망과 절망을 그린 그의 그림에서 “나를 알고 싶으면 그림을 보라”고 했던 클림트의 마음을 읽어보자. 살면서 기적 같은 사랑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키스>에서 특별한 감동을 느낄 것이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키스>의 황금빛은 어떤 사랑을 꿈꾸고 있을까?
원병묵 성균관대 신소재공학부 교수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827423.html#csidxb65878c0ba9462b9a2c631a26e3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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