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學笛

酒幕 / 백석

푸른하늘sky 2018. 1. 4. 00:07
      
시인이 읽어주는 시 4

酒幕 / 백석

호박잎에 싸오는 붕어곰은 언제나 맛있었다

부엌에는 빨갛게 질들은 팔모알상이 그 상 위엔 새파란
싸리를 그린 눈알만한 盞이 뵈였다

아들아이는 범이라고 장고기를 잘 잡는 앞니가 뻐드러진 나와
동갑이었다

울파주 밖에는 장꾼들을 따라와서 엄지의 젖을 빠는 망아지도
있었다 

 

   
                                 
                                  


                                   붕어곰: 붕어를 알맞게 지지거나 구운 것
                                   팔모알상: 테두리가 팔각으로 만들어진 개다리소반
                                   울파주: 대·수수깡 싸리 등을 엮어 놓은 울타리. 울바자
                                   엄지: 짐승의 어미

  
이 시는 백석(1912∼1995?)의 시집 《사슴》에 실린 초기 대표작으로 옛 삶의 모습과 정경을 토속적으로 그린 한 폭의 풍속화다. 한 세대도 더 지난 주막의 풍경에서 왠지 따스하고 뭉클한 무엇이 느껴진다. 

백석의 연인 자야(子夜)는 이 시에 대하여 장황한 설명이 필요없는 시라고 했다  ‘늘 고기를 잘 잡는, 앞니가 뻐드러진 범이라는 주막집 아들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이 시는 나를 사로잡았다’고 했다.

백석의 절제되고 정결한 시어에는 그 시대의 고난스런 현실과 민중들의 냄새가 묻어 있다. 그것은 식민지 시대에 사라져가는 모국어를 살리고자 안간힘으로 씌어진 것이어서 더 아름답고 눈물겹고 감동적이다.

내 어린 시절의 풍경도 그랬다. 여름날이면 붕어며 모래무지 잔고기 등속을 천렵해 온 아버지는 호박과 감자대를 넣고, 붕어지짐을 만들어 온 동네 사람들을 불러 소주판을 벌였다. 어머니는 동네아낙들과 평상에 앉아 수제비를 끓이고 울바자엔 노란 호박꽃이 앞산에 보름달을 불렀다. 가난한지도 모르고 인정이 넘쳐흘렀던 그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이젠 그런 시절은 갔다. 자본과 배금과 물신이 세상을 뒤덮어 수십 만  ‘촛불’의 배후를 캐겠다는 사람들이 권력에 앉아 있다.

▲ 나종영 시인

이 어처구니없는 절망의 시절에 훼절되지 않는 팽팽한 무언가가 그리워 나는 다시 백석의 시편들을 읽는다. 고방, 가즈랑집, 모닥불, 寂境, 여승, 여우난골, 박각시 오는 저녁 등등 불현듯 어둡던 내 마음 한 곁이 칠월 열사흘 달만큼 환해진다. 

나종영 <시인>





[출처:전라도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