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이성표 www.leesungpyo.com |
내 서재 속 고전
1844년은 마르크스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1844년 전후, 구체적으로 1843년 10월부터 1845년 2월까지 마르크스는 약 15개월간 파리에 머물게 된다. 바로 이곳 파리에서 그는 평생의 동지이자 후원자였던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1895)를 만났으며, 1789년에 일어났던 프랑스혁명의 정치적 논리와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영국학자들의 정치경제학적 논리를 치열하게 연구하게 된다. 한 마디로 1844년의 파리는 마르크스를 우리가 알고 있는 마르크스로 결정적으로 성장시켜주었던 일종의 인큐베이터였던 셈이다. 마침내 마르크스는 자신의 치열한 고뇌를 미완성 수고 세 편으로 정리해 남기게 된다. 이 세 편의 수고는 <1844년의 경제학-철학 수고>(<00D6>konomisch-philosophische Manuskripte aus dem Jahre 1844)라는 이름으로 1932년에야 일반인에게 공개된다.
<1844년의 경제학-철학 수고>(<00D6>konomisch-philosophische Manuskripte aus dem Jahre 1844) |
<경철수고>라고 줄여 부르기도 하는 이 세 개의 수고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작은 문건 안에는 마르크스 사유의 거의 모든 맹아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철수고>가 앞으로 전개될 마르크스의 삶과 사유의 길에 뚜렷한 윤곽과 방향을 마련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것이다. 그렇다. 1844년 파리에서 보냈던 나날은 마르크스에게는 자신이 가야 할 길, 혹은 해명해야 할 숙제를 스스로에게 명료화했던 시간, 한마디로 성숙의 시간이었던 셈이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경철수고> 안에는 마르크스의 인문학적 정신이 가장 분명한 형태로 녹아들어 있다는 점 아닐까?
왜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을 위해 평생을 헌신했을까? 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그렇게도 매몰차게 비판했던 것일까? 이 물음에 답하려면, 주변을 돌아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사람이 한두 사람 눈에 들어올 것이다. 그는 얼마나 여유롭고 온화한가. 부모가 가진 돈의 힘으로 그는 전문 분야의 지식인으로 교육받았으며, 많은 문화생활을 누려 여가를 즐길 수도 있다. 그는 호로비츠의 피아노 연주곡을 너무 사랑한다.
반면 이와는 대조적으로 경제적으로 궁핍하게 태어난 사람도 있다. 그는 무엇인가에 쪼들려 매사에 신경질적이다. 애써 고학으로 대학을 간신히 나왔지만, 경제적 이유로 외국 어학연수마저 포기했던 사람이다. 당연히 이 사람에게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들을 기회조차도 없었다.
자! 여러분이라면 누구를 친구로 두겠으며, 누구와 연인이 되겠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힘은 무서운 것이다. 돈은 어떤 사람을 매력적으로 만들기도 하고 동시에 어떤 사람을 초라하게 만들기도 한다. 문제는 어떤 아이가 부를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데 비해, 다른 아이는 가난을 물려받는다는 데 있다. 여기서 자본주의가 과거 계급사회를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직감하게 된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의 존재와 능력은 결코 나의 개성에 의해서 규정되지 않는다”고 통탄했던 것이다. 당연한 일 아닌가? 이제 인간관계는 근본적으로 변질된다. 개성과 개성의 직접적인 만남은 불가능해지고, 경제적 능력을 토대로 사람들은 서로 만날 수 있을 뿐이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를 비판했던 주된 이유를 마침내 우리는 발견하게 된다. 그건 자본주의가 인간의 직접적인 만남을 불가능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이제 <경철수고>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애절한 구절을 읽어볼 준비를 갖춘 것 같다.
사랑을 사랑과만, 신뢰를 신뢰와만
교환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마르크스의 외침은 절절하다.
그가 자본주의를 공격한 이유는
돈이 인간관계를 왜곡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진정한 위대함은
정치와 경제와 철학을 종합적으로
사유할 줄 알았다는 데 있다
이런 능수능란함이 가능했던 것은
인문정신의 힘이었다
“인간을 인간으로서, 세계에 대한 인간의 관계를 인간적 관계라고 전제한다면 그대는 사랑을 사랑과만, 신뢰를 신뢰와만 등으로 교환할 수 있다. 그대가 예술을 향유하고자 한다면 그대는 예술적인 교양을 갖춘 인간이어야만 한다. 그대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한다면, 그대는 현실적으로 고무하고 장려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인간이어야만 한다. 인간에 대한 - 그리고 자연에 대한 - 그대의 모든 관계는 그대의 의지의 대상에 상응하는, 그대의 현실적·개인적 삶의 특정한 표출이어야 한다. 그대가 사랑을 하면서 되돌아오는 사랑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면, 다시 말해서 사랑으로서의 그대의 사랑이 되돌아오는 사랑을 생산하지 못한다면, 그대가 사랑하는 인간으로서의 그대의 생활 표현을 통해서 그대를 사랑받는 인간으로서 만들지 못한다면 그대의 사랑은 무력한 것이요, 하나의 불행이다.”
인간은 “사랑을 사랑과만, 신뢰를 신뢰와만 교환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마르크스의 외침은 절절하기까지 하다. 물론 돈으로 매개되지 않은 직접적인 만남이 가능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인간에게 곧바로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가 사랑을 비유로 말하려고 했던 것도 바로 이것이다. “그대가 사랑하는 인간으로서의 그대의 생활 표현을 통해서 그대를 사랑받는 인간으로서 만들지 못한다면 그대의 사랑은 무력한 것이요, 하나의 불행이다.” 최선을 다해 어떤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람에게서 사랑받으려고 하지만, 불행히도 그 사람은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 왜 그럴까? 나의 사랑도 자유롭지만, 상대방의 마음도 자유롭기 때문이다. 그래서 돈으로 사랑을 사는 것이 더 편할지도 모를 일이다. 상대방은 돈이 없고 나는 돈이 충분히 있다. 그에게 경제적 여유를 제공함으로써 나는 그에게서 사랑을 받을 수 있고 신뢰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이 매개가 되는 인간관계의 경우 우리는 난처한 문제 한 가지에 직면하게 된다. 만약 내게 더 이상 상대방을 도와줄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없을 때, 상대방은 과연 지금처럼 나를 사랑하고 신뢰할 수 있을까?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두 사람 사이에는 일체의 매개가 없어져야만 한다. 오직 그럴 때에만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잊지 말자.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를 공격했던 진정한 이유는 돈이 인간 사이의 직접적인 관계를 왜곡하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인간의 소중한 가치들, 사랑, 우정, 그리고 행복 등은 모두 직접적인 관계에서만 빛을 발하는 것 아닐까? 사랑, 우정, 그리고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최종적으로 우리는 소중한 인간적 가치 대부분을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경제학-철학 수고>는 마르크스의 인문정신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 있는 중요한 책이다. 이 작은 책에서 마르크스의 사유는 더 진화하여 세 개의 주요 저작으로 체계화된다. 첫째는 벨기에 브뤼셀로 이주해서 1845~46년까지 엥겔스와 함께 완성했던 <독일 이데올로기>(Die Deutsche Ideologie)이고, 둘째는 런던에서 1852년 발표한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Der 18te Brumaire des Louis Napoleon)이었으며, 마지막은 런던에서 집필되어 1867년 함부르크에서 출간한 <자본론>(Das Kapital)이었다. 표면적으로 철학책이라고 할 수 있는 <독일 이데올로기>는 직접 읽어보면 우리는 마르크스가 정치학과 경제학의 입장에서 독일철학을 비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정치에 관한 책인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마르크스는 프랑스의 정치를 경제학과 철학의 입장에서 해부하고 있다. 나아가 겉으로는 분명 경제학 책인 <자본론>에서 그는 자본주의 경제학을 철학과 정치학적 시선으로 비판하고 있다.
강신주 철학자 |
결국 마르크스가 남긴 3대 저작의 성격은 ‘프랑스=정치학, 영국=경제학, 독일=철학’이란 공식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독일을 다룰 때 영국과 프랑스의 시선을, 영국을 다룰 때 프랑스와 독일의 시선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프랑스를 다룰 때에는 영국과 독일의 시선을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진정한 위대함은 정치를 사유할 때 경제와 철학의 시선으로, 경제를 사유할 때 정치와 철학의 시선으로, 철학을 사유할 때 정치와 경제의 시선으로 볼 줄 알았다는 데 있다. 독일, 프랑스, 영국에서 무국적자로 머물렀던 마르크스는 차이에 머물 수밖에 없었지만, 그는 이런 차이를 십분 활용했던 사람이다.
한마디로 그는 차이로부터 사유의 샘을 길어 올릴 수 있었던 종합의 대가였던 셈이다. 물론 이런 능수능란함이 가능했던 것은 <경제학-철학 수고>에서 확립했던 인문정신의 힘이었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프랑스든, 영국이든, 아니면 독일이든 그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유일한 것은 바로 ‘인간’이었으니까.
강신주 철학자
'習靜偸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상을 바꾸는 착한 돈’ - 기 소르망 (0) | 2018.01.02 |
---|---|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 / 정민 지음 / 문학동네 (0) | 2018.01.02 |
2005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0) | 2018.01.02 |
[서평] 이주한의 <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0) | 2018.01.02 |
이주한〈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0) | 2018.0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