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서평
남정南汀 김창진金昌珍 교수는 평생 동안 시인으로 행세한 적이 없고 오히려 ‘시인’이라는 호칭에 늘 무안해하곤 한다. 하지만 남정이 타고난 시인임을 확신한다. 일찍이 산문집 『나폴레온 크라식에 빠지다』(밝은세상)에서 드러난 바 있는 그의 비범한 시적 감수성이라든가 두 해 전에 나온 첫 들꽃시집 『오늘은 자주조희풀 네가 날 물들게 한다』에 수록된 시를 접해 본 사람이라면 과장이 아님을 인정할 것이다. 그 시집이 나오자 들꽃 탐사가 공동체인 ‘인디카’의 내로라하는 사진가 몇 분이 새로이 나서서 서로 다투듯 시인에게 꽃 사진을 메기기 시작했고 시인은 거침없이 화답했다. 그렇게 모인 시가 어언 백여 편이나 된다. 그 밖에 남정은 가까운 친구들을 위해서도 시 쓰기를 계속해 왔다. 이래저래 모인 수백 편의 시 중에서 가려 뽑은 것으로 이 두 번째 시집을 엮는다. 여기 수록된 시들의 성격을 이 자리에서 장황하게 논할 생각은 없다. 기왕에 첫 시집의 발문 「사람, 꽃 그리고 시」에서 백초白初 김명렬金明烈 교수는 남정 시의 성격을 깔끔하게 정리해서 거론한 바 있는데, 사실 그 이상 보탤 말이 없다. 다만 한 가지 해가 거듭될수록 들꽃에 대한 남정의 애착이 더욱 깊어지고, 꽃에 대해 반응하는 그의 상상력이 더 자유롭고 발랄해지며, 언제나 즉흥적으로 시를 읊어 내는 그 영감의 샘 또한 마르는 날이 없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여기 수록된 114편의 시들은 꽃의 개화 시기를 기준으로 〈봄〉〈여름〉〈가을〉편으로 3분했고, 백두산 꽃시들은 따로 모아서 몇 편의 풍경시까지 보태어 시집의 마지막 부분에 실었다.
■저자소개 글: 김창진 경남 김해에서 출생(1932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에서 국문학을 공부했다. 가톨릭대학교에서 봉직하다가 정년퇴임했다. 한때는 소극장(까페 巴里의 포켓무대)(1972~4년) 운동에 열중했다. 산문집 ‘나폴레온 크라식에 빠지다’(1996) 들꽃시집 ‘오늘은 자주조희풀 네가 날 물들게 한다’(2013)를 출간한 바 있다.
사진: 김광섭, 김명렬, 백태순, 송민자, 이상옥, 이익섭, 이재능, 이종숙
■책속에서
너도바람꽃
너도바람꽃 눈 속에서 희떠워라 햇빛이 휘저어라 바람 아니고 너도 바람 아니고
동강할미꽃
“동강할미꽃 (…) 제가 제일 좋아하는 모습은 선사시대 벽화 같은 모습으로 바위에 평면적으로 자라는 아이들입니다.” 雲竹 바위 물결에 떠내려 오다가 용하네 용암이 어찌 꽃송이 셋을 피울 수 있지 태양의 그늘 저 치마 무늬 니사금尼斯今뿐이랴 나도 반했다
얼레지
얼레지 엘레지 만장 輓章 만 남았다 저 이파리의 평토장 平土葬 얼레지 엘레지 만장만 남았다
한계령풀
“알프스의 산령에서 외로이 쓰러져 간 라이나·마리아·릴케의 기여” 김춘수 시 「旗」에서 한계령에서 쓰러져 간 꽃이어 너는 누구의 기 旗 인가
■머리말
책머리에 꽃이 무심할 때가 있다. 어찌 탓하랴. 사람도 사람이면서 세상에 무심하지 않는가. 꽃을 노래한다는 것이 꽃에게도 사람에게도 죄스러울 때가 있다. 어쩌자는 건가. 하는 수 없이 꽃으로 돌아온다. 여전히 무심하다. 저만치다. 그래서 반하는 나의 역설이어 하여하여 김 창 진 2015년 2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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