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한시』 이우성 / 아르테(북이십일)
로맨틱한 시? 로맨틱 한시? 띄어쓰기 하나로 의미가 달라지는 듯하지만, 결국 같은 뜻이다.
“어느 날, 사랑에 관한 한시를 읽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알았죠. 나, 바보였구나. 부끄럽고 두려워서 사랑하는 사람이 눈앞에 있는데도 멀뚱히 서 있기만 했구나. 붙잡지도 매달리지도 못했구나. 당신도 그래요? 당신도 사랑이 지나가는 걸 보고만 있었어요? 망설이지 말라고, 포기하지 말라고, 이 글들을 썼습니다. 당신이 잘 해내면 나도 잘 해낼 것 같아서요.” 글쓴이 이우성의 글이다.
사랑이 나를 그대의 세상으로 부르네
“구름 같은 이 내 마음 정숙을 생각해보려 하지만
산골짜기 적막하여 사람 보이지 않네
아름다운 꽃은 피어날 생각을 하는데,
장차 어찌하리, 이 내 청춘은..“
7세기 여승이었던 설요가 지은 것으로 알려진 반속요(返俗謠)라는 시다. 설요는 당나라에 건너가 좌무장군이 되었던 설승충의 딸이다. 그녀의 나이 열다섯에 아버지가 전쟁 중에 죽자 승려가 된다. 6년 동안 수행하던 중 불교 신도인 곽원진이 나타나자, 청춘의 타오르는 정열을 이기지 못하고 한 수의 시를 남겼다. 사람 구경하기도 어려운 적막한 산골에서 아름다운 꽃들이 향기를 발하며 흐드러진 모습과, 그것을 바라보며 설레는 자신의 마음이 잘 그려져 있다.
피어나는 꽃을 억누를 힘이 있을까? 뿜는 향을 막을 길이 있을까? 생명은 움직임에 있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아름다운 꽃은 피어날 생각은 하는데, 비록 속세를 떠난 비구니의 몸이지만, 마음은 여전히 푸릇푸릇하니 어쩌면 좋으리.
그대와 함께 연밥을 따다
가을에 맑은 호수는 푸른 옥처럼 흘러가고
연꽃 수북한 곳에 작은 배 매어두고
사랑하는 그대를 만나 물 건너로 연밥을 던지다
행여나 누가 봤을까 반나절 부끄러웠네.
허난설헌이 남긴 시다. 친접집의 옥사와 불운한 결혼생활 등으로 삶의 의욕을 잃고 책과 시로 슬픔을 달래며 살던 그녀는 1589년 스물일곱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임종 때 자신의 작품을 모두 불태우라는 유언을 남겨 작품이 모두 소각된 것으로 전해진다. 동생 허균이 그녀의 작품 일부를 명나라 시인 주지번에게 주었고, 그녀가 별세한 지 18년 후인 1606년에 중국에서 최초로 『난설헌집』으로 간행되어 격찬을 받았다. 1711년 일본에서도 간행되어 세계적인 여류 시인으로 명성을 떨치게 되면서 조선 후기에 이르러 역수입되었다.
그대 향한 마음 끝없이 흐르네
달빛 아래 오동잎 모두 지고
서리 맞은 들국화는 노랗게 피었네.
누각은 높아 하늘에 닿고
오가는 술잔은 취하여도 끝이 없네.
흐르는 물은 거문고와 같이 차고
매화는 피리에 서려 향기로워라.
내일 아침 그대 보내고 나면
사무치는 정 물결처럼 끝이 없으리.
사족이 필요 없는 황진이가 남긴 시다.
『로맨틱 한시』 그윽한 향의 한시와 그 이력과 그림, 해설이 잘 어우러진 귀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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