習靜偸閑

김병종의 화첩기행 - 예의 길을 가다

푸른하늘sky 2019. 5. 24. 09:34

김병종의 화첩기행 - 예의 길을 가다



이 땅 불행한 예인들의 삶과 행적
문화계에 새 바람을 일으키며 등장한 서울대 김병종 교수가, 애절하게 살다 비문도 없이 스러져간 이 땅 예인들의 삶과 행적을 찾아 기록한 책. 우리의 하늘 바람 물 그리고 역사 속에 죽은 듯 살아있는 예인들의 좌절된 꿈과 창조의 아픔을 생생하게 그려내어, 외롭고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에게는 감동의 비문을,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는 꿈과 용기를 준다. 동양화가인 저자가 글 사이사이에 끼어넣은 깊은 사유로 빚은 자신의 그림들도 눈부신 감성의 글에 잘 녹아들어 읽는 이의 가슴을 울린다.


서울대 미대 교수.
서울대 회화과 졸업. 동 대학원.
프랑스 몽트니 갤러리 초대전 등 수차례의 국내외 개인전. 미술기자상, 선미술상, 한국미술작가상 등 수상.
영국 대영박물관 등 세계 유수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음.
저서『중국 회화의 조형의식 연구』『먹으로 그린 새가 하늘로 가네』등.


이난영의 목포는 울지 않는다 
이난영과 목포 

노래여, 옥주(沃州) 산천 들노래여 
진도소리와 진도 

지리산 첫잠 깨우는 ‘동편제’의 탯자리 
강도근과 남원 

선운사 동백꽃에 미당 시(詩)가 타오르네 
서정주와 고창 

조선 남화의 길 따라 
허소치와 해남·진도 

이화우(梨花雨) 흩날릴 제 ‘매창뜸’에 서서 
이매창과 부안 


수국(水國)에 들려오는 어부의 가을노래 
윤선도와 보길도 

천년의 바람이여 운주의 넋이여 
운주사와 화순 

낡은 소리북 하나로 남은 명창 사십 년 
임방울과 광산 

봉평에는 하마 메밀꽃이 피었을까 
이효석과 봉평 

노루목 누워서도 잠들지 않은 시혼(詩魂) 
김삿갓과 영월 

아우라지 뱃사공아, 내 한(恨)마저 건너주게 
아리랑과 정선 

어둠 속에 치솟은 한국 영화의 혼불 
나운규와 서울·남양주 

도시의 허공에 펄럭이는 찢겨진 시(詩) 
김명순과 서울 

영혼을 사로잡는 마법의 춤 
최승희와 서울·도쿄 

얼룩백이 황소울음…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과 옥천 

못다핀 화혼(畵魂)은 서호(西湖)에 서리고 
나혜석과 수원 

어둠의 역사 밝힌 강도(江都)의 애국시 
이건창과 강화 

저문 화개장터에 ‘역마’는 매어 있고 
김동리와 하동 

유림은 모른다네, 한풀이 탈춤 
안동 하회와 별신굿 탈놀이 

낡은 화폭에 남은 달구벌 풍경 
이인성과 대구 

남강에 번지는 애수의 소야곡 
남인수와 진주 

서라벌 향해 귀거래사 부르는 광대 
박세환과 경주 

언제 다시 한바탕 동래춤을 춰 볼꼬 
문장원과 동래 

대곡천 비경에 펼쳐진 선사(先史) 미술관 
암각화와 언양 

지금도 살아 있는, 바다 위에 그린 그림 
이중섭과 제주 

저 탐라의 하늘에 걸린 세한도 한 폭 
김정희와 제주 

금강, 그 진경산수의 탯자리에 서서 
정선과 금강산 

광기와 파행의 붓 한 자루 인생 
최북과 구룡연 

저 산은 시대의 아픔을 감싸안고 
최익현과 금강산


윤선도와 보길도
나는 지금 옛 시인의 유토피아를 찾아가고 있다.
고산국(孤山國) 보길도. 섬 전체가 시인의 거대한 유물관인 그곳으로.
호공(뱃고동) 소리와 함께 배는 강의 포구처럼 잔잔한 '땅끝' 갈두항을 미끄러진다. 수면은 작은 바위섬이 낱낱이 거꾸로 비칠 만큼 잔잔하다. 이내 눈을 찌르는 물색. 가을물은 천공(天空)에서 쏟아진듯 하늘빛이다. 갑판으로 나가니 "지국총 지국총" 대신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 대학생 몇이 '기특하게도' 통기타로 70년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저 나이쯤의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땅끝'까지 온 적이 있었다. 지금은 다소 과장스럽고 애교스럽기까지 한 그 '끝'의 느낌이 그때는 지도상의 육지부 최남단이라는 의미 이상의 절박함으로 다가왔다. 바람 속에 화원반도를 건너 붉은 황토의 들길을 한도 없이 걸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완도 선착장에서 혼자 보길도로 갔었다. 달은 얇게 사위어 가고 밤바다의 파도만이 적막을 깨뜨렸다. 그 밤 예송리 밤바다의 파도에 취해 그만 방성대곡하고 말았다.
황홀하고 아름다웠다. 아름다움을 앞에 두고 울 수 있느냐고? 있고 말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