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香萬里

차(茶)에 얽힌 이야기|

푸른하늘sky 2018. 4. 16.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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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차

 

여린 녹차잎을 따서 수증기에 쪄서 곱게 가루를 내어 다완에 넣고 솔(차선)으로 거품을 내어 마시는 차

 

다완은 일본에서 널리 유행하였고 임진왜란은 저 다완을 빼앗기 위한 도자기 전쟁이라고도 한다.

 

실제로 우리의 수많은 도공이 일본에 끌려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천민으로 천대받는 직업이 일본에서는 선생으로 대우받으며 부와 명성을 가져다 주었으므로 일본에 정착하여 좋은 도자기를 만든 도공도 꽤 있다.

 

차...

 

한 잔의 차는

 

인류의 역사에 깊이 관여되어 있고 그로 인한 전쟁도  많다.

 

 

영국이 중국과 치른 아편전쟁은 중국의 홍차를 영국과 유럽사람들이 너무 좋아하였고 수요가 폭등하였다. 이로인해 가격은 올랐고 영국 정부의 입장에선 심각한 국가 경제의 손실을 그대로 둘 수 없어 중국에 아편을 팔기 시작한다. 아편에 하나 둘 중독되는 중국인들이 늘어나자 중국정부는 마약을 거부하게 되고 결국 아편전쟁이 일어났다. 전쟁에 패배한 중국은 상하이, 홍콩의 통치권을 내주게 된다.

 

몽골의 패망도 중요한 원인의 하나가 경제피폐인데 몽골사람들이 보이차를 너무 좋아하여 소 한마리하고 전차(벽돌모양의 보이차)를 바꿔 먹게 되면서 생긴 것이라고 한다.

 

티벳도 원래 중국본토와 대등한 군사력, 경제력을 보유한 강대국이었다. 차마고도는 중국과 티벳의 무역로로 중국의 보이차와 티벳의 말이 오고가는 길이었다. 중국이 천하통일을 위해 전쟁이 한창일 때는 많은 양의 보이차와 말 한마리를 바꿨지만 전쟁이 끝나자 말의 필요성은 줄어 들게 된다. 그러나 티벳은 해발4,000~5,000m의 고원지대라 야채, 식물이 거의 자라지 않아 비타민이나 무기질의 성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안 먹으면 안되는 것이 보이차였던 것이다. 중국은 이를 이용하여 보이차값을 올렸고 티벳은 바꿀만 한 것이 줄어들자 경제피폐로 망하고 만다.

 

지금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차는 인류의 삶과 애환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