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적 상상력 | 라이트 밀즈·돌베개 모든 게 팔자소관이라면, 사회과학이란 불필요하다. 하지만 사회과학자가 팔자타령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모든 문제는 사회구조에서 비롯된 것이오!”라고 야박하게 소리지른다면, 팔자타령거리를 산처럼 쌓아놓고 있는 시민들로부터 외면당할 것이다. 그렇다고 시민들로부터의 고립이 무서워 “전 여러분의 편이랍니다”라고 속삭이며 위안만 하면서 불행의 사회적 원인을 가린다면 그 또한 직무유기이다. 사회과학자는 팔자타령을 하는 사람을 야단치는 냉혹한 분석가여서도 안되지만, 위로의 말을 늘어놓는 마취 전문의가 되어서도 안된다.
손대는 일마다 실패하고 열심히 일을 해도 못마땅한 처지에서 벗어날 희망이 없어 보일 때 새삼스레 떠오르는 ‘팔자’란 단어가 있다. 개인의 간절한 소망과 뜻이 팔자라는 장벽에 부딪힐 때, ‘팔자’타령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아무리 팔자타령을 들어주어도, 가련한 팔자는 바뀌지 않는다. 팔자가 바뀌기 위해선 착한 사람이 아니라 현명한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라이트 밀즈는 여느 사회학자와는 달리 세상사람들의 팔자타령에 귀를 기울인다. 밀즈는 ‘팔자’라는 개념의 틀을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도록 조언함으로써 선량한 시민이자 동시에 현명한 학자가 되는 데 성공한다.
밀즈의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분명하다. 팔자타령을 늘어놓을 수밖에 없는 선량한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 고통이 공공문제와 동전의 양면이라는 통찰이 <사회학적 상상력>을 관통하는 핵심적 메시지이다. 밀즈가 볼 때 그게 사회학적 상상력의 뿌리이기도 하다.
개인의 고통을 위로한다는 심리학적 위안서들은 고통을 공공의 문제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처럼 간주하지만, 밀즈는 개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그 고통이 공공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음을 통찰력있게 파헤친다. 밀즈가 사회학적 상상력으로 펼쳐 놓는 팔자타령에 대한 해법은 따뜻하면서도 동시에 현명하다. 알코올 중독자가 술에 취해 늘어놓는 신세타령을 병리학이 아니라 사회학적 상상력으로 읽어내는 밀즈와 같은 사람에겐 알코올 중독의 원인은 중독자의 ‘팔자’가 아니라 ‘술 권하는 사회’이다. 사회학적 상상력이 있으면 팔자 뒤에 숨어있는 사회는 이렇게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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