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詩한

봄동배추를 씹을 때 / 손 진 은

푸른하늘sky 2017. 12. 19. 10:54



봄동배추를 씹을 때 / 손 진 은

봄동배추 씹을 때
바스락거리는 건 어린 추위들의 연두빛 마음
세상 어느 것과 비교도 안 되는 그
단 맛 우물거릴 때 입안에서 파들거리는 건
발전소처럼 윙윙거리는 바람떼거나 한 밤,
가슴에 끌어당겼을 먼 마을 불빛, 잔기침처럼 쏘아올린 별들
그건 또 슬픔과 두려움, 놀람과 상쾌 같은
육체의 서랍 속에 있던 감각들
버려진 밭자락에서 뽑아온
오소소 잎맥에 돋은 소름이 혀끝에 만져지는
파리한 배추 답사 온 일행과 함께 씹을 때
입안에서 잘게 부서지는 그 엽록소 속엔
가르릉대는 어린 추위들과 싸우다
마침내 순해진 고 짐승 어여 와 어여 와! 손주이듯
다독이는 할머니의 다정 같은 게 들어 있다
구체적으로 부서지면서 배추는
그 연두빛 마음을 씹는 이들 내장에
핏줄 속에 심는다, 하여
입술에 묻은 쌈장 쓱 닦으면서 우리는
바스락거리는 생 하날 들고 나오는 것이다
마치 장바구니이기나 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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