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詩한

장마 - 강연호

푸른하늘sky 2017. 12. 17. 14:02


  
장마 - 강연호
 
 
관절을 뚝뚝 꺾으며 비는 내렸어

비디오를 보면서 잡지책을 뒤적이면서
눅눅한 새우깡을 씹으면서 나는 비처럼 뒹굴었어
아무렇게나 산다고 생각하는 삶은
이미 아무렇게나 사는 삶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진짜 아무렇게나 젖어 살자고 다짐했어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는 날들이
고만고만하게 피식피식 꺼져갔어
젖은 머리칼 벌어진 입술 떨리는 속눈썹의
그 여자도 꺼져갔어 어두운 하늘을 움켜쥐고
먹장구름은 자주 몸을 뒤틀었어
그때마다 귓속에서 포도상구균의 곰팡이들이
화들짝 놀라 풀풀 씨앗을 뱉어냈어
서랍 속으로 장농 속으로 빗물은 넘쳐흘렀어
마침내 둥실 집이 떠오르고 세간들
불어터진 아가미로 힘겹게 호흡할 때까지
방송 끝난 TV화면처럼 지직거리며 비는 내렸어
내릴 비 다 내린 뒤
나는 나를 꼬옥 짜서 빨랫줄에 처억처억
거짓말같이 내걸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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