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香萬里

차 마시다 향 사르니 茶半香初

푸른하늘sky 2017. 12. 13. 22:56

차 마시다 향 사르니

靜坐處茶半香初 고요히 앉은 곳, 차 마시다 향 피우고
妙用時水流花開 묘용(妙用)의 때에, 물 흐르고 꽃은 피네.



추사의 글씨로 유명해진 명구다. 혹 송나라 때 황정견(黃庭堅)의 글귀로 인용되기도 하나 마땅한 근거를 찾기 어렵다. 구법이 여느 한시와 달리 3,4로 되어 있어, 한시가 아니라 중국의 어느 다관(茶館)이나 선원(禪院)에 걸려 있던 대련(對聯)이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자하 신위는 『초의시집』의 서문을 서울 북선원(北禪院)의 다반향초실(茶半香初室)에서 쓰고 있다. 서울에도 다반향초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반향초(茶半香初)의 해석을 두고는 말이 참 많다. 흔히 차를 반쯤 마셨는데 향기는 처음 그대로라는 의미로 풀이한다. 그런 것이 아니다. 차를 반쯤 마시고 나서 향을 새로 사른다는 뜻이다. 차는 빛깔을 눈으로 마시고, 향을 코로 마신 뒤에야 입으로 마신다. 차를 반이나 마셔놓고 그때 향을 맡는 법이 없다.
물을 길어 불을 지피고 화후(花候)를 보아 차를 끓인다. 찻잔에 떠오른 다신(茶神)을 가만히 머금어 내린다. 사위(四圍)는 숨죽인 침묵 뿐이다. 주인은 말없이 앉아 차를 마시다가 문득 생각난 듯 향 한 심지를 꺼내 불을 붙인다. 긴 머리 채를 비끄러 맨 듯한 향 연기가 방안 공기를 타고 미끄러져 나간다. 이때 내면 깊숙한 곳에서도 비로소 묘한 작용이 일어난다. 차와 향과 선(禪)이 일체가 되어 만나는 순간이다. 그 느낌을 뭐라고 말할까. 시인은 냇물이 흘러가고 꽃이 피어나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절묘하다.
옛 시에서 ‘분향약명(焚香瀹茗)’, 즉 `향 사르고 차 마신다`거나, ‘작다반구(酌茶半甌) 소향일주(燒香一炷)’ 즉 `차를 반잔 따르고, 향 한 심지 사르네`와 같은 표현들은 용례가 적지 않다. 추사의 제자 이상적(李尙迪)은 「추회잡시(秋懷雜詩)」에서 “차 마시고 향 피우며 싯귀를 찾다가, 꽃 피고 술 익어 손님을 접대하네. 尋詩茶畔香初候, 歀客花開酒熟時”라고 노래했고, 홍현주(洪顯周)의 시에도, “손님 와서 차 마시고 향을 막 피우니, 작은 누각 산과 같고 밤빛은 텅 비었네. 客來茶半與香初, 小閣如山夜色虛”라고 한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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