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作 ‘매화초옥도(梅花草屋圖)’, 29.4×33.3cm, 종이에 채색, 19세기 전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매년 이맘때면 남쪽의 매화와 산수유 등 여러 꽃소식으로 곧 봄이 가까이 왔음을 알리는 뉴스가 한창이었습니다. 특히 우리 사찰 한 켠에 고고히 서있는 매화나무들은 가람의 청정함과 어우러져 그 자태가 더욱 아름답습니다. 선암사의 홍매, 송광사 백매, 화엄사 흑매 등 아름다운 모습이 우리 눈을 즐겁게 해주었고 무사히 겨울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을 들뜨게 하였습니다.
오랜 추위를 견뎌낸 고담스러운 줄기와 수묵화 같은 가지의 휘어짐, 가지에 서로 거리를 두고 옹기종기 앉아있는 희고 붉은 꽃 등을 직접 눈으로 감상하는 것이 가장 좋은 감상법입니다. 그래야 맑은 향기가 널리 퍼진다는 암향(暗香)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 창궐로 매화축제도 축소되거나 아예 취소되어 예년 같은 매화 감상이 쉽지 않게 되었습니다. 매화꽃을 보기 어렵다고 생각하니 왠지 더욱 매화가 그리워지고 친한 벗과 함께 매화나무 아래에서 매화가 그려진 잔으로 매화꽃을 띄운 술을 마시는 매화음(梅花飮)이 간절해집니다.
벗들과 매화주 마시는 상상을 하니 떠오르는 그림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옛 화가나 선비들은 워낙 매화를 좋아하여 매화 그림을 많이 남겨놓았으나 그 중 벗과 함께하는 매화 그림으로는 전기(田琦 1825~1854)의 ‘매화초옥도’가 으뜸입니다.
하늘이 검은 빛이니 어둠이 내리고 있는 저녁이고 산은 하얀 색이니 눈 덮인 모습입니다. 가옥 옆과 아래쪽 언덕들도 하얀 색인데 봉우리들이 뭉툭하여 마치 몽실몽실한 구름 같은 부드러운 느낌입니다. 위쪽 고원은 아래에서 위로 올려보는 시점이고 아래와 중간 언덕들은 수평 시점으로 그려 전형적인 동양화의 공간감을 창출하는 삼원법이 아닌 이원법만 사용했습니다. 이런 시도는 이 그림이 뻔한 산수화가 아닌 참신한 느낌을 주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공간감을 의식했는지 아래에서 위쪽으로 갈수록 언덕과 산의 크기를 점점 커지게 그렸습니다.
왼쪽의 한 인물은 거문고를 매고 앞에 있는 묘옥을 향해 걷고 있습니다. 산속 깊은 곳에 위치한 소박한 묘옥은 창문으로 인물이 앉아 피리를 불며 친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집 주위와 언덕 사이로 빼곡히 나무가 있고 나무에는 마치 눈꽃이 날리듯 백매화가 만발하고 있습니다. 걸어가는 인물은 벗을 만난다는 설레는 마음을 붉은 옷으로 표현했고 기다리는 친구의 집 지붕도 호응하듯 붉은 노을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습니다. 방안에 있는 인물은 녹색 옷을 입었고 산 위 굵은 태점 안에는 초록 빛깔이 숨어 있습니다.
검은 하늘과 흰 산이 대비되는 무채색 공간에서 붉은 색과 초록색이 대비되어 산뜻하고 세련된 느낌을 불어 넣고 있습니다. 아마도 빛깔처럼 자연과 동화된 두 사람은 온 밤이 하얗게 새도록 매화주을 즐기며 악기를 연주하고 우정을 나눌 것입니다. 그런 아름다운 순간을 별처럼 비추듯 백매화가 흐드러지게 쏟아지고 있습니다. 당시 화단을 이끌었던 우봉 조희룡이 이 그림을 그린 36세나 어린 전기를 두고 “전기를 알고부터는 막대 끌고 산 구경 다시 가지 않는다. 전기의 열 손가락 끝에서 산봉우리가 무더기로 나와 구름, 안개를 한없이 피워 주니”라고 이야기한 이유를 알 것도 같은 뛰어난 그림입니다.
이 ‘매화초옥도’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단서는 우측 아래에 적혀 있습니다.
‘역매인형초옥적중(亦梅仁兄草屋笛中)’. 친구 역매(오경석)가 초옥에서 피리를 불고 있구나.
위 글로 보아 초록색 옷을 입고 집에 들어앉아 피리를 불고 있는 인물은 역매(亦梅) 오경석(吳慶錫, 1831∼1879)이고, 붉은 옷을 차려입고 들어가는 이는 바로 전기 자신입니다. 오경석은 역관이자 개화사상가로 독립운동가이자 위대한 서화가인 위창 오세창 선생의 부친이자 ‘삼한금석록(三韓金石錄)’을 펴낸 금석학자입니다. 또한 오경석은 우선(藕船) 이상적(李尙迪, 1804년~1865)의 제자이며 이상적은 바로 추사 김정희의 제자로 ‘세한도(歲寒圖)’의 주인공입니다. ‘매화초옥도’는 전기와 역매가 함께 보낸 어느 매화꽃이 만발한 겨울날의 정취이자 그들의 우정과 낭만을 표현한 그림인 것입니다. 오경석은 호 ‘역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매화 애호가였습니다.
그림을 그린 전기도 추사 김정희가 무척 아꼈던 인물입니다. 당시 서화계는 조희룡, 유재소 등 중인들 중심으로 새로운 감각의 형태를 중시하는 그림들이 주류를 이루던 시기로 이러한 경향에 추사는 ‘문자향(文字香)’과 ‘서권기(書卷氣)’를 강조하며 부적정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전기에게만은 “제법 예찬과 황공망의 필의가 있다”며 그의 천재성을 높게 평가하였습니다. 전기는 당시 서화계 인물들에게 실력과 인성을 둘 다 인정받는 천재로 높게 평가 받았습니다.
생계를 위해 약포를 운영하면서도 서화에 대한 안목이 뛰어나 지금의 표현으로는 평론가 및 아트 딜러의 역할을 많이 하였으며 직접 그린 작품들도 그 품격이 매우 뛰어나 서화계에서 수작으로 평가 받았습니다. 하지만 ‘미인박명’이란 말처럼 그는 유달리 병약하여 29세에 그만 요절하였습니다. 고흐가 37세에 사망하기 전 몇 해 동안 그의 대표작들이 쏟아졌다는 걸 감안하면 전기가 10년만 더 살았으면 훨씬 뛰어난 작품들을 많이 남겼을 것입니다. 그의 죽음에 지인들은 무척 애달파 했습니다. 특히 조희룡은 “흙이 정 없는 물건이라지만 과연 이런 사람의 열 손가락도 썩게 하는가” “일흔살 노인이 서른살 청년의 죽음을 애도하자니 더욱 슬프다”라며 애통해 하였습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학교도 개학이 계속 연기되고 각종 모임이나 친구들간 사적 만남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과 서로 어울리는 일상이 얼마나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벗을 기다린다는 것은 봄을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하루빨리 친한 벗들과 꽃구경을 핑계 삼아 웃고 떠드는 평범한 일상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손태호 동양미술작가, 인더스투어 대표
출처 : 법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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