閑雲野鶴

유명 프로 당구 선수

푸른하늘sky 2019. 9. 2. 11:03

남자의 로망이자, 사나이의 스포츠인 당구.

세상에서 가장 당구장이 많고, 대중적으로 퍼져있는 곳이 대한민국.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당구선수들은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다.

축구나 야구에 이름만 대면 누구나 다 알듯이 유명스타가 있듯이,

당구에도 역시 수많은 당구팬의 우상으로 남아있는 선수들이 있으니

이번기회에 그 선수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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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토브욘 브롬달 (Torbjorn Blomdahl ,1962년생, 스웨덴)

월드챔피언 4회

월드컵챔피언8회

스웨덴챔피언 18회

유럽챔피언8회

이 기록들로도 그를 다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명실상부한 클르망의 뒤를 잇는 당구황제.

당구라는 스포츠가 선수생명이 굉장히 길다는 것을 감안하면

앞으로 그의 우승기록이 얼마나 더 나올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을 것이다.

90년대에는 세계챔피언자리를 거의 독식하다시피했고

2000년대에도 꾸준히 상위랭커로 활약하고 있지만,

2006년에 김경률 선수에게 잡히고, 2007년에는 최성원, 이충복선수에게 잡히는 등

이변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2.세미 세이기너 (Semih Sayginer,1963년생, 터키 )

한국에 가장 잘 알려진 외국인선수.

젊은 시절, 서부영화의 주인공처럼 숱많고 긴 머리를 묶고 나올때부터

지금까지, 국내 방송에 가장 많이 나오고 유명한 사람이 이 선수가 아닐까 싶다.

국민적 영웅으로 대접받고 있는 모국 터키에서도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굉장한 인기를 얻고 있다.

세계 에술구 1인자라는 명성답게, 환상적인 스트록을 갖고 있으며

유머감각이나 쇼맨쉽 또한 뛰어나며

시합에서도 화려하고, 예측을 벗어난 공들을 많이 보여준다.

하지만 감정의 기복이 심한편이라 그런지,

우승 경험은 실력이나 명성에 비해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특히 브롬달에게 유난히 많이 약한 듯... 브롬달에게 이기는 경기를 보기 힘들던데..)

큰 점수차로 지고있거나, 기분이 안좋을땐,

자기 상대방선수의 경기를 외면하고, 다른테이블을 보는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3.프레드릭 코드롱 (Frederic Coudron,1968년생, 벨기에)

브롬달과 1,2위를 엎치락 뒤치락하는 선수.

마치 감정이 없는 사이보그나 터미네이터를 연상시키는 당구를 친다.

인터벌(공을 치기까지 생각하는 시간)이 굉장히 짧다.

왠만한 난구가 아니면, 쉽게 바로바로 쳐대는데도 불구하고 

신기할정도로 절묘하고 정확한 공을 구사한다.

상대방은 1점만 남겨둔 상태인데도, 10점 이상의 차이를 뒤집으며

역전승을 일구어내는 모습도 자주 보여준다.

실제로 이 선수 지는 경기를 보기가 매우 힘들다.

2006상리 인터내셔널 오픈을 전승으로 우승했으며

2007년도 상리대회  역시 전승으로 우승했다.

(물론 다니엘 산체스에게 마지막게임을 지긴 했지만, 이미 우승은 확정된 후)

96년 TBC당구대회에서 [에버리지 5점]이라는 대기록으로

국내 동호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던 선수다.

 

 

 

4.다니엘 산체스 (Daniel Sanchez, 1974년생, 스페인)

10대의 나이에, 스페인의 최강자가 된 산체스.

헤어스타일때문에 그렇게 안보일지라도, 상당히 젊은 선수이다.

가장 모범적인 자세를 갖고 있으며,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샷으로 정평이 나 있다.

성격도 명랑해서, 게임도중에도 수줍은 듯한 미소를 잃지 않으며

선수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아주 좋다고 한다. 

 

 

 

 

 

5.딕 야스퍼스 (Dick Jaspers, 1965년생, 네덜란드)

96년 TBC월드그랑프리에서 코드롱의 에버리지 5점이 나오고,

이 어마어마한 대기록은 한동안 깨지지 않을 것이란 평가가 지배적이었는데,

불과 다음해에, 딕 야스퍼스가 역시 10이닝에 50점을 쳐버리며 타이기록을 세운다.

거의 대부분의 선수가 그렇듯, 8살의 어린 나이에 당구를 시작했으며

90년도에 BWA에 등록하며 선수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1997년 BWA월드컵에서 두번째 우승했을 당시가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다고 한다.


 

 

 

 

6.레이몽 클르망 (Raymond Ceulemans,1937년생,벨기에)

살아있는 당구의 황제.

1963년 니스에서 개최된 세계당구선수권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세계적인 규모의 대회를 약 70여차례 우승을 했으며

1963년부터 1980년까지 17년간을 혼자 독주하다시피했던

말 그대로 살아있는 당구의 전설이다. (1974년에 일본의 고바야시에게 한번 챔피언자리를 내 줌.)

지금에야 랭킹이 많이 밀려났지만, 60이 넘은 나이까지도 세계 상위권랭킹에 머물렀던
말 그대로 당구를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지금이야 선수들에게 필수로 통하는 여러가지 계산 시스템도
클르망에 의해서 창안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선수가 당구경기장에 입장만 하면 관중들은 기립박수를 치고,
게임하던 선수들도 게임을 멈추고 예의를 표한다고 한다.
이 선수가 존경받는 이유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인품또한 뛰어나기 때문이다.
어느 게임에서 지더라도, 환하게 웃으며 상대방선수를 축하해주는 그에게선
약간의 시기심이나 불만이나 오만함을 찾아볼 수가 없다.

 

 

 

 

7.이상천 (1954 ~ 2004)

경기고 - 서울대를 거쳐온 엘리트인 동시에, 천재적인 당구선수였던 이상천.

서울대 재학시절부터 당구에 빠져, 국내대회를 10연속 재패하고,

87년 미국으로 건너가서 12연속 재패를 이뤄낸 전설이다.
미국으로 건너감과 동시에 세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무명에 가깝던 89년. 벨기에에서 벌어진 대회에서 15점을 한큐에 끝내버리면서

당시 세계적인 선수였던 스텔라를 침묵시켰던 것도 유명한 일화이다.)

특히 1990년부터 94년까지 41게임 연속승리라는 기록을 수립했고,

93년도에는 브롬달을 제치고 세계챔피언 자리에도 오르게 된다.

'뉴욕타임스'에서 [3쿠션계의 마이클조던]이라는 찬사를 들었던 선수.

 허리를 구부리고 몸을 낮춰 공을 바라보는 여느 선수와 달리,

상체를 세워 당구대 전체를 내려다보는 듯한 자세를 가졌으며

멈출 듯 멈출듯 끝까지 미끄러지며 득점이 되는 그의 공은

다른선수에게선 볼 수 없는 그런 느낌이었다.

앞으로도 이런 공을 구사하는 선수를 또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천재적인 당구선수였던 동시에, 성공한 사업가인 그는

미국내에 초대형 캐롬카페를 3곳을 열었으며, 하루 수입도 어마어마 하다고 한다.

하지만 귀족적이고 신사적 스포츠로 당구가 대접받는 외국과 달리

[당구는 도박이자 불량배들의 놀이이며,당구장은 깡패들의 아지트]

라는것이 국내에서 당구에 대한 인식이었으니.....

[당구를 확실한 스포츠로 인식시키겠다.]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는 후배선수들이, 스포츠선수 대접을 제대로 받도록 해주겠다]

라는 큰 뜻을 품고, 2004년 6월 대한당구협회 회장으로 취임하였으나,

취임 후 불과  4개월만에, 지병이던 위암으로 50세란 나이에 운명을 달리하였다.

미국에선 그를 추모하는 대회인 [상리인터네셔널 오픈]을 2005년부터 주최하고 있다.


 




 

 

8.황득희 (1968년생, 경기당구연맹)

3쿠션의 황태자, 영원한 금메달리스트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그는 역경을 딛고 일어난 선수이다.

공인4단의 태권도선수였다가 대학진학에 실패하고 재수기간에 당구를 접한 그는

무서운 집중력과 능력으로 실력이 급상승하여

아예 직접 당구장을 차려서 연습에 매진한결과 93년에 정식 당구선수가 된다.

이후 96년~98시즌 절정의 기량으로 과시하며 각종 대회를 휩쓸었던 그에게

98년 IMF사태와 함께 운영하던 당구장도 망하고 최악의 슬럼프까지 겹쳐

힘겨운 나날을 보내게 된다.

이때 2년동안 당구계를 잠시 떠나기도 했으나,

마침내 2000년도에 다시 재기하며,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게 된다.

한번 터졌다하면 멈출줄 모르는 몰아치기도 일품이지만

역경을 딛고 일어나서 그런지 아무리 크게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잘 흔들리지 않는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이상천선수를 결승에서 이기고

금메달을 차지한 것은 그의 이름을 대중에 더욱 널리 알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9.김경률 (1980년생, 서울당구연맹)

다른  선수들에 비해, 비교적 선수데뷔는 늦게 한 편이지만

뛰어난 실력을 바탕으로 일찍이 '괴물신인'이라는 호칭을 달고 살았던 선수.

여러 대회를 휩쓸며 급기야, 한국랭킹1위 자리에 오르고 오랫동안 머무르게 된다.

2006상리인터내셔널오픈에서 세계1위 브롬달을 꺾는 파란을 일으켰으며,

세계랭킹 6위까지 진입한 적이 있는 탑랭커.

자신의 주특기를 '뒤로 돌려치기(=우라)'라고 말하는 그의 별명은 [개구리]

이상천 선수 이후의 한국인 세계챔피언에 가장 근접해 있는 선수이다.

 

 

10.최성원 (1980년생, 부산당구연맹)

김경률선수와 동갑내기이자, 국내랭킹1,2위를 다투는 라이벌.

정교한 스트록과, 난구풀이에 있어서 국내최고수준이라 평가받는다.

2007상리인터네셔널오픈에서 브롬달을 역전승으로 꺾어서

 B파이널로 내려보냄으로써 화제를 일으켰다.

최근들어 세계대회에 참가를 많이 하면서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세계적으로도 유명해지고 있는 선수.

하지만 이 선수 유난히 황득희 선수에게 약한지..

정상의 문턱에서 번번히 황득희 선수에게 덜미를 잡히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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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이상천 선수는 원래 왼손잡이었는데, 제 실수로 그만 오른손잡이로 그려버렸네요.

이 외에도 마르코자네띠 , 강동궁 선수등도 물망에 올랐었습니다.

하지만 창작의 고통의 한계랄까....

(그림 하나 그리는것도 상당한 노가다입니다.)

네임밸류에 따라서 이정도로만 하게 되었네요.

그린 시기가 각각 다 다르므로, 그림의 퀄리티도 역시 다 제각각이네요.

선수들에 대한 글은 전문적 지식이나, 객관적인 자료참조도 많이 했지만
글쓴이 본인의 개인적인 생각도 많이 포함되 있으므로, 이에 대한 논란은 없었으면 합니다.
내용중에 확실히 틀린내용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정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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