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두에서 초록으로 건너가는 숲의 변화가 꽃만큼이나 눈부신 요즘이다. 비 한 번 내릴 때마다 허룩해지던 벚나무를 지켜보던 안타까움도 잠시, 숲은 꽃 진 자리를 밀도 있게 초록으로 물들이며 의연하게 다음 계절을 향해 나아간다. 시시각각 다른 모습을 펼쳐 보이며 생기 넘치는 숲을 지켜보는 것도 이 계절에만 누릴 수 있는 각별한 즐거움이다. 멀리서 바라보면 그저 초록 일색인 듯해도 가까이 다가가면 숲은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내가 좋아하는 말 중에 '임의(林衣)'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숲의 옷'이란 뜻인데, 숲의 초입에 자라는 싸리나무나 칡넝쿨 같은, 나무라고 칭하기엔 변변치 않은 잡목들을 이르는 말이다. 그 잡목들이 숲으로 불어오는 비바람 눈보라를 막아주는 덕분에 숲속의 키 큰 나무들이 제대로 자랄 수 있다고 한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것처럼 이 나무 같지 않은 나무들이 있어 '숲의 옷'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는 덕분에 우리는 자연의 파노라마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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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에서 초록으로 건너가는 봄 숲에서 만날 수 있는 으름덩굴도 대표적인 임의(林衣) 중 하나다. 으름덩굴은 으름덩굴과에 속하는 낙엽성 활엽수로 다른 물체를 감고 올라가는 덩굴식물이다. 산과 들, 계곡을 가리지 않고 어디에서나 잘 자라기 때문에 산길로 접어들면 나무들을 휘감고 올라가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어느 시인은 봄의 끝자락을 일러 춘미(春尾)라고 했다. 한낮의 햇살이 따가운 봄의 끝자락, 햇살을 피해 숲 그늘을 찾았다면 부디 주변을 찬찬히 살펴 으름덩굴을 찾아보시기 바란다. 으름덩굴 어딘가에 올망졸망 피어 있는 어여쁜 보랏빛 꽃송이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으름덩굴 꽃은 한 덩굴에 암꽃과 수꽃이 따로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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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월에 자줏빛을 띤 연한 갈색으로 피는데 잎겨드랑이에서 총상꽃차례로 달린다. 꽃잎은 없고 3개의 꽃받침조각이 꽃잎처럼 보인다. 수꽃은 암꽃보다 작고 6개의 수술과 암꽃의 흔적이 있으며, 암꽃은 크고 3∼6개의 심피가 있다.
으름은 이 덩굴의 열매를 가리키는데 그 생김새가 바나나와 흡사하여 한국산 바나나로 불리기도 한다. 으름열매는 여름엔 녹색을 띠다가 가을이 되어 익으면서 점차 갈색으로 변하며 겉껍질이 벌어지며 흰 과육이 드러난다. 달고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다. 흠이라면 과육 속에 박힌 씨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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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름덩굴은 으름 열매가 아니라도 가지에 매달려 초록 그늘을 드리우는 잎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잎은 묵은 가지에서는 무리지어 나고 새 가지에서는 어긋나는데 타원형의 작고 매끈한 다섯 장의 잎이 또 하나의 커다란 원을 그리며 펼쳐져 한결 운치가 있다. 정원에 관상용으로 심으면 꽃과 잎, 열매를 모두 즐길 수 있는 훌륭한 정원수가 으름덩굴이다.
뿐만 아니라 한방에서는 뿌리와 줄기를 소염·이뇨·진통제로 이용했으며 민간에서는 봄에 어린잎을 삶아 나물로 무쳐먹거나 잎을 쪄 말려 덖어서 차로 달여 마시기도 했을 만큼 어느 하나 버릴 것 없는 게 으름덩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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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나무 하면 우리는 으레 소나무나 전나무 같은 키 큰 나무들을 먼저 떠올리지만 숲속엔 다양한 나무들이 어울려 산다. 사람 사는 세상도 숲속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 역사 속 많은 위인과 영웅들의 이름이 빛날 수 있는 것은 '숲의 옷'이 되어주는 으름덩굴이나 싸리나무처럼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살아가는 수많은 민초들이 세상을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
출처:http://www.g-enews.com/view.php?ud=201904290908284820e8b8a793f7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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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익어가는 시기, 열매가 맛있는 으름덩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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