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詩한

시들, 시들한 시들 - 김승하

푸른하늘sky 2019. 3. 5. 08:32


시들, 시들한 시들 - 김승하


실직하고 마누라 눈치 보며 쓰는 시

끊었다 피었다 하는 담배 같은 시

시들시들한 시를 쓰는 일은

시멘트 바닥처럼 딱딱한 동토에

깨알 같은 무씨를 심는 것

그러나 언젠가 다시 푸릇푸릇 돋는 무순처럼

따뜻한 봄날을 기다리며 쓰는 시

시가 밥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던 일

텃밭에 심어 놓은 푸성귀같이 시들시들한 시들,

나이 쉰도 안 되어 문지기나 되어 쓰는 시

나이 쉰이 다 되도록 시집 한 권 출간 못 한 시인의

주머니 속 휴지에 쓴 구겨진 시들

밥이 되지 못하는 시들


          - 저문 바다에 길을 물어, 달아실, 2018














 

Michael Hoppe - The Po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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