香遠益淸

<매화서옥도>

푸른하늘sky 2019. 2. 13. 21:37

조희룡(趙熙龍), 1797~1859

 

본관은 평양(平壤). 자는 치운(致雲), 호는 우봉(又峰)·석감(石)·철적(鐵笛)·호산(壺山)·단로(丹老)·매수(梅).중인출신으로 오위장(五衛將)을 지냈다.

1846년(헌종 12) 헌종의 명으로 금강산을 탐승하고 시를 지어 바쳤으며, 1848년에는 궁궐편액의 글씨를 쓰라는 명을 받았다. 1851년(철종 2) 김정희(金正喜) 일당으로 지목되어 추자도로 유배되었다. 20대에는 이학전(李鶴田)·이재관(李在寬) 등과 교유했으며, 1847년에는 유최진(柳最鎭)·전기(田琦) 등과 벽오사(碧梧社)를 결성하고 김정희파의 여항문인 서화가들과 시·서·화를 통해 교유했다. 김정희의 문하에서 학문과 서화를 배우고 19세기 중엽 화단에서 중추적 구실을 했다. 고서화와 함께 골동품을 좋아했고 중국과 우리나라 회화사에 관심이 많았으며, 청나라 화적을 직접 소장하고 비평을 하는 등 그림에 대한 인식의 폭이 넓었다. 화론에서는 수예(手藝)를 강조하고 재능을 중시하여 서화가에게는 학식뿐만 아니라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손의 재주, 즉 기량이 있어야 된다고 주장했다. 산수와 함께 사군자를 특히 잘 그렸으며, 김정희가 강조했던 간일한 남종문인화풍에 토대를 두되 다양한 구도와 담채의 대범한 구사, 필치의 자유로운 운영, 새로운 기법을 시도하는 실험의식, 거리낌없는 표현력을 통해 자신의 독자적인 화풍을 이룩했다. 글씨는 추사체를 따랐다.

 

 

 

<매화서옥도>

종이에 담채 106.1cm x 45.1cm
간송미술관

 

조희룡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그 독특한 화풍이 주목된다. 눈이 내리듯 매화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깊은 산골에 둥근 창문의 작은 집이 한 채 있고, 그 안에는 책이

쌓인 책상을 마주한 선비가 앉아 있다. 조희룡은 김정희의 제자로 글씨도 추사체와

비슷하게 썼는데, 이 그림에서도 마치 추사체의 글씨를 부스러뜨려 놓은 것 같은
서예적인 필치를 읽을 수 있고, 거칠고 분방하게 찍어 놓은 점들이 매우 특이하다.
창이 둥근 집의 모습은 《개자원화전》 등 화보에 나오는 집의 모습과 흡사하다.
이러한 화풍은 그의 제자라 할 수 있는 전기(田琦)에게도 영향을 미쳤으며,
이같은 특이한 구성이나 필치는 후에 전개되는 이색화풍과도 연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