畵龍點睛

도상봉

푸른하늘sky 2019. 2. 13. 20:55


 

자화상 1927, 60.5 x 45cm 일본 동경예술대학 자료관

 

누드 1927, 72.5 x 53cm  용인 호암미술관

 


파와 정물 1930 23.3 x 33cm 용인 호암미술관

 


명륜당 1933, 49.5 x 60cm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도자기와 여인 1933, 117 x 91cm 용인 호암미술관

 


한정(閑靜) 1949, 117 x 90cm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폐허 1953, 73 x 90cm 개인소장

 

성균관 풍경 1953, 72 x 91cm 용인 호암미술관

 


항아리 1953, 45.5 x 53cm 유족소장

 

출가전 1953, 130 x 97cm 유족소장

 


코스모스 1954, 53 x 45.5cm 개인소장

 


정물 1954, 72 x 90cm 개인소장

 


성균관 풍경 1954, 53 x 72.5cm 개인소장

 


우산과 여인좌상 1955, 117 x 90cm 용인 호암미술관

 


백합 1957, 53 x 73cm 개인소장

 

정물 1954, 32 x 41cm 유족소장

 


라일락 1958, 50.5 x 60.5cm 개인소장

 

성균관 1959, 72.5 x 91cm 용인 호암미술관

 

비원 1960, 65 x 80cm 개인소장

 


송도 풍경 1965, 73 x 116cm 개인소장

 


해운대 풍경 1966, 72 x 117cm 개인소장

 


정물 1966, 개인소장

 


개나리 1968, 53 x 45.5cm 개인소장

 

향원정 1969, 53 x 72cm 개인소장

 

정물 1971, 53 x 45.5cm 개인소장

 


동해안 풍경 1971, 53 x 45.5cm 개인소장

 

비원풍경 1973, 45.5 x 53cm 개인소장

 


광릉 풍경 1973, 73 x 91cm 개인소장


김인승(金仁承)

 1910. 1. 19 경기 개성~2001. 6. 22 서울.

조선미술전람회(약칭 선전)와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국전)를 통해 아카데미즘적 화풍을 정착시킨 대표적 서양화가. 1932년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했고, 재학중 1936년 일본 문부성 전람회와 광풍회 전람회에 출품·입선했다. 1937년 졸업했고 그해 선전에 〈나부 裸婦〉를 출품하여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받았다. 1940년 선전 추천작가가 되었다. 전시체제(戰時體制)가 강화되는 과정에서 심형구 등과 함께 적극적인 부일(附日)활동을 전개하여 여러 전람회에 참여했다. 해방 후 1947년 이화여자대학교에 미술과가 생기자 1972년까지 교수로 재직했다. 1949년 국전이 개설된 이후 추천작가 겸 심사위원을 지냈고 1958년 목우회를 창립했으며, 한국미협 이사장과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학장을 거쳐 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1974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작품세계는 충실한 데생에 중후한 색조, 정적인 분위기 등이 특징이다. 초기작품에서는 서양여인을 모델로 한 작품이 많았다. 내용과 양식면으로 볼 때 선전의 아카데미즘에 걸맞는 인물좌상, 나부 등이 주류를 이루었다. 국전 서양화부 운영위원, 추천작가로 활동하면서 아카데미즘 화풍의 정착에 큰 역할을 했으며 상류층 부인, 저명인사들의 초상화도 많이 그렸다.

 

자화상 1937, 60 x 45cm 작가소장

 


나부 1936, 162 x 130cm 용인 호암미술관

 

화실 1937, 122 x 156cm 국회의사당

 


인천항 1938, 33 x 45cm 개인소장

 


나부 1938, 37.5 x 45.5cm 개인소장

 

문학소녀 1938, 116.5 x 91cm 개인소장

 


덕수궁에서 1939, 개인소장

 

촉석루 1940, 38 x 45cm 개인소장

 


여인좌강 1941 60 x 50cm

 


독서하는 여인 1942, 53 x 45.5cm 개인소장

 


독서하는 여인 1942, 45.5 x 33cm 작가소장

 

춘조(春調) 1942, 147 x 207cm 한국은행

 

여인상 1942, 27.5 x 21cm 개인소장

 

무희 1946, 73 x 61cm 개인소장

 

조모상 1947, 117 x 91cm 개인소장

 


독서하는 여인 1953, 116 x 90cm 한국은행

 

홍선(紅扇) 1954, 116 x 90cm 한국은행

 

도기를 다루는 소녀 1955, 143 x 95cm 개인소장

 


무대 뒤 1955, 111 x 144cm 개인소장

 

 

소녀 1957, 72 x 53cm 작가소장


청(聽) 1966, 163 x 111cm 개인소장

 


향원정 1964, 95 x 128cm 한국산업은행


도상봉(都相鳳)

 

 1902. 1. 6 함남 홍원~1977. 10. 19.

호는 도천(陶泉). 1928년 도쿄[東京] 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3·1운동에 참가하여 옥고를 치렀으며, 일제가 식민지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마련한 조선미술전람회 출품을 외면하고, 민족미술가들의 모임이었던 서화협회전에 몇 번 참가했다. 대한민국미술전람회(약칭 국전) 심사운영위원, 한국미술가협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대한민국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1930년 서울중학교에서 미술교사로 재직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큰 기복없이 자연미 재현에 충실한 꽃·정물 등을 주로 그렸다. 〈명륜당〉으로 대표되는 초기작품은 1930년대 화단의 아카데미즘을 반영하여 대체로 고전적 엄격성을 보였다. 1950년대부터는 엄격한 구조와 장식적인 색채, 사실적 자연주의를 결합하고 있다. 이는 〈항아리와 국화〉(1954)에서 잘 나타난다. 말년에는 주로 정물화와 풍경화를 그렸다. 정물화에는 그의 애장품인 이조백자가 몇몇 등장하고 풍경화에는 가까운 산책길이나 고궁 등 작가가 좋아하는 주변의 자연풍경을 주로 담았으며, 정적감을 주는 특유의 부드러운 색채로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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