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후’의 세상을 상상하다
‘세습자본주의병’ 치료할 긴급처방전
21세기 자본
토마 피케티 지음
장경덕 외 옮김
글항아리·3만3000원
2014년 국내에서 나온 책 가운데 가장 뜨거운 책이었다. 영어판이 나왔을 때부터 관심이 집중됐으며, 번역과 출간 소식이 실시간으로 중계됐다. 책이 나오자 논쟁이 이어졌다.
이 책에 쏠린 유례없는 시선 집중의 이유는 뭘까. 그건 아마도 세계적 차원의 자본세(특히 상속세) 도입이라는 나름 급진적인 아이디어가 범우파 진영에서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피케티는 자본주의 전 역사를 관통하는 통계를 수집해 ‘불평등’의 역사와 구조, 미래를 분석했다. 연구 결과를 토대로 피케티는 현재의 자본주의를 ‘21세기 세습자본주의’라고 명명하며, ‘자본세’ 카드를 꺼내든다. 일부 우파 학자들의 피를 토하는 비판과 달리, 피케티는 혁명을 하자는 게 아니다. 멸망해가는 자본주의를 구하기 위해 긴급처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빵집에서 펼치는 반자본주의 실험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와타나베 이타루 지음
정문주 옮김
더숲·1만4000원
마르크스를 읽으면서 이윤의 원천이 초과노동시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빵집 주인 와타나베 이타루는 “이윤을 내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대신 자본주의가 좋아하는 방향의 정반대로 행동하기로 한다. “상품과 노동력의 교환가치를 높게 유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제대로 된 빵을 만들어 제값 받고 판다. 인근 농가에서 자연재배 방식으로 기른 통밀을 직접 제분해 인공 이스트가 아닌 천연효모와 천연누룩균으로 빵을 만든다. 시중에서 파는 보통 빵보다 조금 비싸지만 멀리서 발품을 팔아 찾아오는 고객들 덕에 판로 걱정은 하지 않는다.
지은이가 제빵 기술을 배우려 취업한 한 빵집의 노동 착취 현실을 고발하는 대목에서 시작되는 ‘시골 빵집의 마르크스 강의’가 인상적이다.
이재성 기자
기지와 통찰 번뜩이는 대중 경제학 개론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장하준 지음, 김희정 옮김
부키·1만6800원
“경제는 너무 중요해서 경제학자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는 게 이 책의 핵심 문장이다. 귀찮더라도 경제를 알아야 한다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책을 소화하면 ‘경제학자에게 사용당하지 않는 법’을 터득할 수 있다.
이 책의 백미는 경제학파 분류법이다. 고전주의부터 신고전주의, 마르크스학파, 개발주의, 오스트리아학파, 슘페터학파, 케인스학파, 제도학파, 행동주의 등 9개 학파를 해체하고 조립한다. 표까지 곁들여 각 학파의 장점과 단점을 명료하게 정리했다.
장 교수 본인은 ‘계급’과 ‘생산’ ‘혁신’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고전주의와 마르크스주의, 케인스주의, 슘페터학파와 교집합을 갖는다. 정부의 보호정책과 개입이 필요하다고 본다는 점에서 개발주의와도 겹친다. ‘하이브리드’ 학파인 셈이다.
이재성 기자
인공지능은 아무리 진화해도 의식없는 기계
마음의 그림자
로저 펜로즈 지음
노태복 옮김
승산·2만8000원
얼마 전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인공지능이 진화 속도에서 인간을 능가할 것이라며, “완전한 ‘인공지능’의 개발이 인류의 멸망을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컴퓨터가 인간의 두뇌 능력을 추월하지 않을까라는 걱정이다. 이제 이런 우려는, 인간이 인공지능(AI)에 정신능력, 곧 의식까지 갖게 된 기계들의 지배를 받는 애완동물 신세로 전락하는 게 아니냐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옥스퍼드대의 이론물리학자이자 수학자 로저 펜로즈는 아니라고 얘기한다. 컴퓨터는 처리 속도와 용량이 인간의 수천수만배를 넘을 수 있지만 아무리 발달해도 기계일 뿐 결코 인간과 같은 의식, 마음을 지닌 존재가 될 순 없다는 것이다. ‘괴델의 정리’와 양자역학을 동원하는 펜로즈의 20년 전 생각은 지금도 ‘참’일까?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진짜 헤겔’ 찾아낸 정치철학자의 개가
헤겔
찰스 테일러 지음
정대성 옮김
그린비·5만원
캐나다 출신의 저명한 정치철학자이자 공동체주의 이론가 찰스 테일러가 1975년 출간한 <헤겔>의 국내 첫 번역서. 10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 어렵기로 악명 높은 헤겔 철학을 속속들이 파헤친 대작으로 우리말 번역의 공로도 인정받았다. 지은이는 17~18세기 ‘헤겔 세대’가 도구적 이성을 강조하는 계몽주의와 비합리적 낭만주의 사이의 딜레마를 해결하려 노력했고, 헤겔 또한 이 둘을 넘어서려 했다고 말한다. ‘진짜 헤겔’은 개인적 주체와 공동체적 주체 모두를 포기하지 않았다. “궁극적 종합은 통일뿐 아니라 분리를 포함”하고 “자유는 개인의 독립성과 보다 큰 삶에의 통합이라는 두 요소를 모두 요구하는 것 같다”는 헤겔의 원칙을 테일러는 강조한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한·미·일 삼각동맹의 식민주의 구조 폭로
가지무라 히데키의
내재적 발전론을
다시 읽는다
강원봉·도베 히데아키·
미쓰이 다카시·조관자·
차승기·홍종욱 지음
아연출판부·1만2000원
재일동포 연구자들은 1989년 53살의 그가 세상을 떠나자 “우리들은 가지무라씨 덕에 일본인을 믿을 수 있었다”며 애통해했다. 아베 신조로 상징되는 반동복고 시절에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가 식민사관을 실증적으로 논파한 조선사 연구자 가지무라 히데키를 다시 불러냈다.
가지무라 문제의식의 핵심은 식민주의와 ‘일한(日韓)체제’ 극복이었다. “한국 경제는 36년간의 일본 식민지배와 해방 뒤 20년간의 미국 지배정책의 역사적 소산인 식민지적 경제였다.” 일본 자본주의에 한국은 반공의 최전선이요, 값싼 노동력 공급처로서 경제·군사 양면의 요구를 모두 충족시킨 하위 파트너였다. 그 뒤엔 미국이 있었다. 이젠 과거지사일까?
한승동 기자
슈퍼맘의 유령이 배회하는 사회
빨래하는 페미니즘
스테퍼니 스탈 지음
고빛샘 옮김
민음사·1만9500원
왜 다시 페미니즘인가. 지은이는 1960~70년대 미국 반전·평화 물결 속에서 남녀 평등을 익힌 세대의 딸이자, 평등은 당연한 거라 여기며 성장한 90년대 ‘엑스 세대’의 일원이다. 그런 그가 왜 페미니즘 읽기에 나섰나. 1963년 베티 프리단은 <여성의 신비>에서 여성이 직업을 가지면 남녀 평등은 성취될 것이라 했다. 그로부터 어언 반세기. 여성들은 일과 육아 사이에서 결국 하나를 포기하고 있다. “(일과 가정을 완벽히 병행하는) ‘슈퍼맘’의 유령은 힘을 다하여 구겨진 채 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책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부터 에리카 종까지 18~21세기 페미니즘 저작 26권의 문제의식을 톺으면서 오늘 여성의 현실을 풀었다. 지은이는 말한다. ‘일과 가정’ 병행이 여자에게만 요구되는 한, 평등은 요원하다고.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초강대국이 된 중국, 농민의 삶은 나아졌을까
중국 농민 르포
천구이디·우춘타오 지음
박영철 옮김
길·2만8000원
고속 성장 속에 초강대국이 된 중국의 화려한 겉모습에 가려진 이면의 실상과 모순, 그 아픈 속살을 9억 중국 농민들의 비참한 현실 고발을 통해 충격적으로 증언한 보고서. 2004년 출간되자마자 판금당하고 언론보도도 불허됐으나 중국에서만 1천만권 이상이 팔리고 해외 반응도 뜨거웠던 책이다. 중국 국가지정 1급작가가 쓴 이 책(원제 <중국 농민 조사>)의 문제의식과 문제제기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할까.
중국은 그동안 책이 고발한 농업세비 문제와 양곡수매정책 등을 개선했지만 지은이들은 한국어판 서문에서 “농민의 부담은 결코 경감되지 않았고 농민의 토지는 각지의 당과 정부관리의 ‘맛난 고기’가 되어 마구 약탈당해 백성이 안심하고 살 수가 없는 상황”은 별로 바뀐 게 없다고 말한다.
한승동 기자
우리 삶을 힘겹게 하는 것, 자본
자본의
17가지 모순
데이비드 하비 지음
황성원 옮김
동녘·1만9800원
기술이 발전하는데도 삶은 팍팍해지고, 늘 시간 부족에 시달리는 이유는 다름 아닌 자본 때문이라고, 79살의 마르크스주의자 데이비드 하비는 주장한다. 그는 조증에 걸린 듯 들뜬 소비주의 대신, 필요한 사용가치를 제공하는 쪽으로 생산을 합리적으로 조직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또한 “비현실적이고 유토피아적인 것 같지만 (…) 대안정치는 장기적 야심과 비전을 품어야 한다”며 그람시의 혁명적 휴머니즘을 불러낸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자유분방하고 독창적인 사유. 대공장 위주 투쟁으로 주택이나 공공요금 등 더 중요한 착취 요소를 놓치고 있는 기존 좌파, 자본주의 생명력 연장에 기여하는 협동조합을 비롯한 대안경제, 지적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한 포스트 구조주의 담론도 비판 대상이다.
이재성 기자
고전은 고리타분하지 않고 늘 새롭다오
돈키호테 1, 2
미겔 데 세르반테스 지음
안영옥 옮김
열린책들·각 권 1만5800원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 고전’이라는 통설은 씁쓸하다. 고리타분하다는 선입견 탓일 텐데, 실제로 읽어 보면 예상과는 달리 새롭고 놀라운 세계가 열리는 느낌을 받는 책이 또한 고전이다. <돈키호테>가 대표적. 기사도 책을 너무 많이 읽은 나머지 머리가 살짝 돈 주인공이 좌충우돌 세상과 부딪치면서 빚어내는 희비극적 풍경들, 광기와 어리석음이라는 가면 밑에서 뿜어내는 신랄한 문제의식 그리고 문학과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 현대성이 <돈키호테>의 세계다. 세르반테스의 고향과 스페인 현지 취재, 정확하면서도 세련된 문장에 꼼꼼한 주석을 곁들여 번듯한 한국어판을 내놓은 역자의 5년여에 걸친 노고가 돋보인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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