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는 사고가 아닌 사건이다!
눈먼 자들의 국가
김애란 박민규 외 지음
문학동네·5500원
‘4·16 세월호 참사’ 앞에 사람들은 말을 잊었다. 생때같은 어린 목숨들이 시시각각 수장돼 가는 모습을 눈 번히 뜨고 지켜보아야만 하는 무력감과 분노는 참담했다. <눈먼 자들의 국가>는 작가와 연구자 열두 사람이 세월호와 관련해 <문학동네> 여름호와 가을호에 쓴 글들을 묶은 책이다. 책의 제목이 되기도 한 글에서 소설가 박민규는 ‘세월호’를 사고가 아닌 사건으로 보아야 하는 까닭을 조목조목 짚어 가면서 진상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할 것을 요구했다. 김연수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을 읽으며 진보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에 대해 고민했고, 김애란은 이해와 경청과 공감의 필요성을 힘주어 말했다. 이 책의 판매수익금은 세월호 관련 단체와 사업에 전액 기부하기로 해 10월 말쯤 1차분 1억원을 전달했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유신 잔당’의 뿌리요 모델인 ‘유신 본당’
유신
한홍구 지음
한겨레출판·2만원
지금 벌어지고 있는 한국 민주주의 퇴락의 구조와 그 뿌리가 무엇인지, 그 불길한 전락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면 40여년 전 유신체제 등장과 몰락기의 구체적인 사건들을 떠올려 보는 게 좋다. 한홍구 교수는 이 책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 박정희를 자신의 모델로 삼고 있다”며, 그중에서도 “집권 말기의 가장 나쁜 모습의 박정희”를 보고 배웠다고 했다. 박 대통령 집권 1년 뒤, “우려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악화”했다며 “유신이 (바로) 오늘”이라 했던 그의 경고적 예언은 이미 실현됐다.
첫 번째는 비극으로, 두 번째는 소극으로 끝난다는 말대로 역사가 반복될지는 두고봐야겠지만, ‘유신 잔당’의 본질을 알려면 그것이 모델로 삼고 있는 ‘유신 본당’의 정체를 알아야 한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비로소 드러난 건국건군 세력의 실체
간도 특설대
김효순 지음
서해문집·1만5000원
일제의 만주 항일독립운동 세력 ‘토벌’ 전문 군사조직 ‘간도 특설대’와 만주국 군관학교 출신 조선인들의 실체를 처음으로 밝혀냈다. 그들이 토벌했다는 ‘공비’니 ‘비적’이 바로 독립운동가들이었으며, 광복 뒤 대한민국을 장악한 건 독립운동가들이 아니라 그 토벌세력임을 이토록 명백하고도 구체적으로 까발린 저작물은 달리 없다.
간도 특설대 정보반 책임자였고 제2대 해병대사령관과 재향군인회 부회장을 지낸 김석범은 <만주국군지> 서문에서 자화자찬했다. “건국건군 40여 년이 된 오늘날 50여 명의 장성급과 다수의 영관급 고급장교가 배출되어 (…) 대통령, 국회의장, 국무총리, 국방장관, 군참모총장, 해병대사령관, 군사령관, 군단장, 사단장, 연대장, 고급참모 등 정부와 군의 요직을 역임했고….” 박정희, 백선엽 등이 바로 그들이다.
한승동 기자
“책임질 수 없는 말은 넣지 말게”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 지음
메디치미디어·1만6000원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곁에서 8년 동안 말과 글을 다듬었던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이 쓴 ‘글쓰기 책’. 공무원부터 회사원까지, 글쓰기가 고민인 이들의 필독서로 떠오르며 한 해 동안 7만부가 넘게 팔렸다. 글쓰기 요령부터 글 욕심 많던 두 대통령과의 일화까지 풍부한 내용이 장점이다.
“자신없고 힘 빠지는 말투는 싫네. ‘부족한 제가’와 같이 과도한 겸양도 예의가 아니네. 쉽고 친근하게 쓰게. 누구나 하는 얘기 말고 내 얘기를 하고 싶네. 중언부언하는 것은 용납 못하네. 책임질 수 없는 말은 넣지 말게.” 노 대통령이 남긴 ‘글쓰기 지침’을 보며 그를 그리워했던 이들도 많았다. 좋은 글의 기본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양심과 소신을 지키며 말할 수 있는 용기’라니, 그런 상식 또한 그리운 시대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20년 걸려 완성한 르네상스 미술 3부작
신준형의 르네상스
미술사 1~3권
신준형 지음
사회평론·5만원
짜깁기나 작품 순례기 일색인 서양미술사 동네에 나타난 별종. 탄탄한 연구를 바탕으로 뚜렷한 논리와 논거를 갖췄다. 르네상스 미술사가 종교와 뒤엉킨 터라, 외국어 13개쯤을 공부하고, 7개쯤은 읽고 쓰는 지은이한테 제격이다.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박사논문을 준비하던 1998년에 시작해 2013년 봄에 완결했다.
지은이는 르네상스 시대가 절대미를 추구한 이상적인 시대가 아니라 교황의 가톨릭 세계와 종교개혁 운동의 줄다리기 가운데 피어난 예술시대라고 본다. 주변부인 북유럽 화가 겸 미술이론가 뒤러(1471~1528)와 이탈리아 중심부에 속한 미켈란젤로를 비교하며 당대 미술동네를 역동적으로 재구성했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소년의 죽음으로 5월 광주를 되살리다
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창비·1만2000원
‘80년 5월 광주’의 실상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있는 셈이다. 소설만 해도 임철우의 다섯권짜리 장편 <봄날>과 같은 선행 작업이 적잖이 쌓여 있다. 그렇다면 5월 광주에 관한 소설은 더는 필요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한강 소설 <소년이 온다>는 새삼 확인시켰다. 소설은 구체성의 예술이고 감성에 관여하는 작업이다. 마지막까지 도청을 지키다 스러진 열여섯살 소년 동호의 죽음은 희미한 역사적 사건으로 멀어져 가던 5월 광주를 다시 생생한 목숨의 일로 되살려 놓았다.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존재와 삶에 관한 근원적 질문이, 그 구체성을 바탕으로 비로소 가능해진다. 80년 5월 광주와 용산 참사, 쌍용차 사태와 세월호가 본질적으로 동궤에 놓이는 사건들이라는 사실을 이 소설은 알게 한다.
최재봉 기자
공장 굴뚝에 올라간 슬픔에 대한 기록
그의 슬픔과 기쁨
정혜윤 지음
후마니타스·1만5000원
지난 4월 이 책이 출간된 이후에도 ‘쌍용차 사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난달 13일 대법원은 “정리해고는 유효하다”고 판결했다. 지난 13일부터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김정욱 사무국장과 이창근 정책기획실장은 고공농성중이다. 같은날 쌍용차 해고노동자 한 명이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 책은 5년째 우리 사회의 묵직한 과제인 이 사태의 선두에 서온 쌍용차 노동자 26명의 생생한 육성을 르포 에세이라는 형식으로 담았다. 한 개인으로서 감당할 수 없는 버거운 사건 앞에 놓인 평범한 개개인의 경험과 감정에 집중했다. 기독교방송 피디인 지은이는 말한다. “이들이 웃을 때 눈길이 갔다. 내가 잘 모르는 사람인데 왜 저 사람이 웃고 있다는 게 이렇게 기쁠까? 근데 기쁜 동시에 슬프더라.”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경제성장’에 모든 것 양보한 기형적 근대
환원근대
김덕영 지음
길·2만8000원
우리 사회의 근대화가 경제성장에 모든 것을 내주는 과정이었음을 밝힌 책이다. ‘국가-재벌 동맹 자본주의’ 탓에 정치·법·과학·예술은 철저히 외면당했다. 각 분야가 합리성을 획득하는 각 기능의 ‘분화’와 ‘개인화’가 저지됐다는 뜻이다. 돈과 권력을 숭앙하는 대형교회, 인간을 도구적으로 양성하는 교육 또한 환원근대의 산물이었다. 근대화의 모든 요소를 경제로 환원하는 것, 그것이 ‘환원근대’다.
지은이는 특히 박정희 체제 18년 동안 한국 사회가 근대의 토대를 ‘전통’에서 찾고 유순하고 복종적인 신민을 만들었다고 본다. 박정희 정권은 권력의 권위와 정당성을 기본으로 개인 존엄을 지키는 ‘강력한 국가’가 아니라 ‘허약한 국가’라는 것이다. 이 책이 박정희 정권에 대한 혹독한 비판서일 수 있는 이유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선의로 악의를 물리친 우리 시대의 영웅
투명인간
성석제 지음
창비·1만2000원
성석제 소설 <투명인간>은 1960년을 앞뒤로 태어나 지금 50대 중반에 이른 인간 김만수의 일대기라 할 수 있다. 머리도 나쁘고 외모도 보잘것없지만 삿된 마음을 먹지 않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 된 도리를 다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그는 그야말로 진국이라 이를 법한 인물이다. 그렇지만 삭막하고 각박한 현실은 그런 이들에게 좌절을 안기고 경계 밖으로 내치기 일쑤다. 김만수는 자신의 선의로 만든 꽃다발이 악의의 화살로 바뀌어 되돌아오는 삶을 살았다. 그럼에도 끝끝내 악이 아닌 선의 편에 서고자 하는 그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라 불려 손색이 없다. 주변 사람들의 관찰과 증언을 쌓아 올려 주인공의 입체적 형상을 빚어내는 작가의 필치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지난 시절 우리 사회의 풍속화를 만나는 재미도 쑬쑬하다.
최재봉 기자
거리에서 변혁을 읽는 철학의 시간
“살아가겠다”
고병권 지음
삶창·1만4000원
<“살아가겠다”>는 2009~2013년 서울 대한문 농성촌에서부터 밀양과 쌍용차, 장애인, 미국의 점령하라 운동까지, 철학자 고병권이 만난 사람들이 들려준 말의 기록이다.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밀양, 장애인들의 투쟁은 제 터전에서 쫓겨난 자들의 “살아가겠다”는 맞섬이다. 이들의 육성을 전하면서 그는 용기를 얘기한다. “철학은 본래 용기”라 말한다. 그것은 “탐욕에 대한 정찰병”이 되어 권력자들을 고발했던 거리의 철학자 디오게네스의 용기다. 문제를 드러내 공적으로 제기하는 용기다. 디오게네스에게 대중은 양떼가 아니라 사자였다. “목자가 양을 키우는 건 양을 먹기 위해서지만, 사자에게 먹이를 갖다주는 건 사자가 무섭기 때문이다.”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상식이 무너진 지는 오래되었고, 이제 이성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고등학생의 백색테러, 단식하는 세월호 유족 앞에서의 ‘폭식’, 사법부가 유권자보다 위에 있는 줄 아는 오만함은 상식과 이성이 무너진 사회의 단면이다. 이럴 때 우리 사회 지성의 정수리를 담당하는 출판계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지난 한 해 동안 <한겨레>가 주목한 책들에서 그 편린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겨레> 문화부 책지성팀 기자들이 정혜윤 기독교방송(CBS) 피디, 박현주 에세이스트 겸 번역가, 정여울 문학평론가, 김명남 번역가와 함께 국내서와 번역서 10권씩을 추렸다.
국내서들은 역시 우리 사회 미해결 과제를 파고든 책이 많았다. 일제와 유신을 거쳐, 광주민주화운동과 쌍용차, 세월호에 이르기까지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역사적 아픔을 마주하는 문인과 학자, 언론인들의 시선은 예리하다. 번역서 중에는 ‘새 술을 담을 새 부대’를 탐색하는 책이 주를 이뤘다. 자본주의 체제 또한 인간이 만들어내고 합의했던 여러 제도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은 의미심장하다. ‘이후’에 대한 상상력의 도약 지점이 바로 그곳이기 때문이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신화 속 건국이념은 언제나 미래완료형이다.
이재성 책지성팀장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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