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詩한

생의 절반 / 이병률

푸른하늘sky 2017. 12. 29. 02:14




생의 절반 / 이병률


한 사람을 잊는데 삼십 년이 걸린다 치면
한 사람이 사는데 육십년이 걸린다 치면
이 생에선 해야 할 일이 별로 없음을 알게 되나니

당신이 살다 간 옷들과 신발들과
이불 따위를 다 태웠건만
당신의 머리칼이 싹을 틔우더니
한 며칠 꽃망울을 맺다가 죽은 걸 보면
앞으로 한 삼십년 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아는데
꼬박 삼십년이 걸린 셈

이러저러 한 생의 절반은 홍수이거나 쑥대밭일진대
남은 삼십년 그 세월 동안
넋 놓고 앉아만 있을 몸뚱어리는
싹 틔우지도 꽃망울을 맺지도 못하고
마디 곱은 손발이나 주무를 터

한 사람을 만나는데 삼십년이 걸린다 치면
한 사람을 잊는데 삼십년이 걸린다 치면
컴컴한 얼룩 하나 만들고 지우는 일이 한 생의 일일 터

나머지 절반에 죽을 것처럼 도착하더라도
있는 힘을 다해 지지는 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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