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詩한

그리움을 훔쳤다 / 공광규

푸른하늘sky 2017. 12. 25. 01:32

**[행복한 시]>367<공광규-시래기 한 움큼**


그리움을 훔쳤다 / 공광규

빌딩 숲에서 일하는 한 회사원이
경찰서까지 끌려갔다.
점심 먹고 식당 골목을 빠져 나올 때
시멘트 담벼락에 매달린 시래기를 한 움큼 빼어
냄새를 맡다가 식당 주인에게 들킨 것이다.
“이봐, 왜 남의 재산에 손을 대!”
반말로 호통치는 주인에게 회사원은
미안하다며 사과했지만 막무가내인 주인과
시비를 벌이고 언성을 높이고
기어코는 멱살 잡이를 하다가 파출소까지 갔다.
사건을 화해시켜 돌려보내려는 경찰의 노력도
그를 신임하는 직장 동료들이 찾아가 빌어도
식당 주인은 한사코 절도죄를 주장했다.
한 몫 보려는 주인은 그 동안 시래기를
엄청 도둑 맞았다며 한 달치 월급만큼이나 되는
합의금을 요구했다.
시래기 한 줌 합의금이 한 달치 월급이라니!
그는 야박하고 썩어빠진 도심의 인심이 미웠다.
더러운 도심의 한가운데서 밥을 구하는
자신에게 화가 났다.
“그래, 그리움을 훔쳤다, 개새끼야.”
평생 누구와 주먹다짐 한 번 안 해본
산골 출신인 그는 경찰이 보는 앞에서
도시의 인심에게 주먹을 날렸다.
경찰서에 넘겨져 조서를 받던 그는
추운 유치장 바닥에서 도심의 피곤을 쉬다가
선잠에 들어 흙벽에 매달린 시래기를 보았다.
늙은 어머니 손처럼 오그라들어 부시럭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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