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이 된 눈동자 - 나희덕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자
일제히 횡단보도를 건너가기 시작하는 사람들,
꽁치떼 속에 끼여든 한 마리 멸치처럼
무언가 다른 전파를 보내는 존재가 있다
유난히 키가 작은 한 사람,
얼굴은 붉게 일그러지고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팔 대신 눈동자를 위아래로 흔드는 사람,
흙투성이가 된 눈동자로
열심히 허공을 닦으며 걸어가는 사람,
그의 움직이지 않는 소매 속은 텅 비어 있을 것이다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고
횡단보도를 반밖에 건너지 못한 사내는
필사적으로 눈동자를 흔들어댔다
-나희덕 시집 『 야생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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