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詩한

안개/기형도

푸른하늘sky 2017. 12. 17. 14:09

 

흑백 풍경



안개/기형도
 
1
아침 저녁으로 샛江에 자욱히 안개가 낀다.
 
2
이 邑에 처음 와 본 사람은 누구나
거대한 안개의 江을 건너야 한다.
앞서간 一行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
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어떤 날은 두꺼운 空中의 종잇장 위에
노랗고 딱딱한 태양이 걸릴 때까지
안개의 軍團은 샛江에서 한 발자국도 移動하지 않는다.
出勤길에 늦은 女工들은 깔깔거리며 지나가고
긴 어둠에서 풀려나는 검고 무뚝뚝한 나무들 사이로
아이들은 느릿느릿 새어 나오는 것이다.
 
안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 얼마동안
步行의 경계심을 늦추는 법이 없지만, 곧 남들처럼
안개 속을 이리저리 뚫고 다닌다.
습관이란 참으로 편리한 것이다.
쉽게 안개와 食口가 되고
멀리 送電塔이 히미한 胴體를 드럴낼 때까지
그들은 미친듯이 흘러다닌다. 가
 
끔씩 안개가 끼지 않는 날이면
방죽 위로 걸어가는 얼굴들은 모두 낯설다.
서로를 경계하며 바쁘게 지나가는, 맑고
쓸쓸한 아침들은 그러나 아주 드물다.
이곳은 안개의 聖域이기 때문이다.
 
날이 어두워지면 안개는 샛江 위에
한 겹씩 그의 빠른 옷을 벗어놓는다.
순식간에 空氣는 희고 딱딱한 액체로 가득찬다.
그 속으로 植物들, 工場들이 빨려 들어가고
서너걸음 앞선 한 사내의 반쪽이 안개에 잘린다.
 
몇 가지 사소한 사건도 있었다.
한밤중에 여직공 하나가 겁탈당했다.
寄宿舍와 가까운 곳이었으나
그녀의 입이 막히자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난 겨울엔 방죽 위에서 醉客 하나가 얼어죽었다.
 
바로 곁을 지난 三輪車는 그것이
쓸레기더미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不幸일 뿐,
안개의 탓은 아니다.
 
안개가 걷히고 正午 가까이
工場의 검은 굴뚝들은 일제히 하늘을 향해
젖은 銃身을 겨눈다. 상처입은 몇몇 사내들은
험악한 辱說을 해대며 이 發水의 고장을 떠나갔지만
재빨리 사람들의 기억에서 밀려났다. 그 누구도
다시 邑으로 돌아온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3
아침 저녁으로 샛江에 자욱히 안개가 낀다.
안개는 그 邑의 名物이다.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株式을 가지고 있다.
女工들의 얼굴은 희고 아름다우며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工場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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