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표(年表) / 김경미
그가 내 가슴에 복숭아를 던지던 구석기시대가 있었고
내가 그의 가슴을 찌르던 철의 시대도 있었다
연잎처럼 큰 편지가 소리 없이 타버리던
종이와 성냥의 시대가 있었고
어금니가 아픈 탈락과 취소의 시대도 있었다
긴 복도에는 늘
목례와 악수와 끄트머리 어둠과 귀신이 서 있었다
빙하기가 두 번인가 세 번인가 왔다 가는 사이에
나무들은 톱밥이 되거나 새가 되고
나는 추위를 잘 타는 체질이 되었지만
그래서 추위를 더 잘 피했다
매일 뭐든 옮겨놔야 살 것 같던
변덕의 시대도 가고 나면
꼼짝도 않는 추억들을 다 무슨 수로 막겠는가
잡을 수 있었던 것들도 미끄러져 나가는 시간의 시대는
언제까지나 되풀이되겠지만
지금은 혹은 검정 비닐의 시대
안에 든 것들을 다 허름하게 만드는
—《문예중앙》2015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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