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香萬里

다선삼매(茶禪三昧)

푸른하늘sky 2017. 12. 13. 22:35

다선삼매(茶禪三昧)


다선삼매(茶禪三昧)



불법(佛法)이 다도 가운데 있다.

송나라 때 고위관료인 연빈(延彬)이 초경원(招慶院)이란 절을 방문했다.
낭(朗) 상좌가 찻물을 끓이다 말고 차솥[茶碩]을 엎으니 의아해 하며 물었다.

“차 화로 밑에 무엇이 있습니까?”

“화로를 받드는 신이 있습니다.”

“화로를 받드는 신이 있는데 어찌하여 차솥을 뒤엎는 거요?”

“천일(千日)의 벼슬살이를 하루아침에 잃었습니다.”

그 말에 연빈은 다짜고짜 매우 불쾌해하며 나가버렸다. 하긴 차맛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와 함께 마시는가에 따라 그 맛이 결정된다.



일본 속담에 ‘고차무차(苦茶無茶)’라고 했다.

쓴 차를 대접받았거나 차 한 잔 얻어먹지 못한 푸대접을 이르는 말이다.
주인장으로서는 차상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거나
마지못해 대접했다면 ‘고차무차’가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같은 ‘무차’라고 할지라도 ‘백차(白茶)’가 된다면 이건 한 경지 더 올라간 것이다.
묵은 빈 다관에 차잎를 넣지 않고 그냥 끓는 물을 넣어 우려내는 것이다.
묵은 차향이 배어져나와 나름대로 독특한 맛의 경지를 보여준다.
이를 즐길 수 있다면 설사 무차라고 할지라도 제대로 대접받은 것이 된다.
‘벼슬은 하루 아침에 잃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도 개의치 않고
차를 즐길 수 있는 무덤덤함이 아쉽기만 하다.


차(茶)는 주로 ‘차’라고 읽지만 ‘다’로도 발음한다.

그 음은 당나라 때까지는 중고음이 ‘다’였다가 송대에 이르러 ‘차’로 변하였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차’라는 말이 구어로 먼저 들어오고 ‘
다’라는 음은 후에 들어와 자전(字典)의 음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뒤죽박죽 사용된다. 하지만 관습도 무시할 수 없다.
 ‘다선삼매’를 ‘차선삼매’로 바꾸어 읽으면 어색해진다.
 ‘다방’을 ‘차방’으로 발음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마을의 ‘주전자’는 절집에 오면 ‘차관’이 된다.
막걸리를 담는 게 아니라 백차인 청정수를 올리는 데 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다관’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어쨌거나 같은 그릇이지만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주전자가 되기도 하고 차관이 되기도 한다.
주전자가 차관이 되는 것처럼 번뇌가 바로 깨달음으로 바뀌는 것이니,
범부의 모습으로 성인(聖人)이 되는 것 역시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닌 것이다.


주광(珠光) 선사가 평소 애용하던 찻잔으로 막 차를 마시려고 하는 참이었다.
일휴(一休) 선사가 큰소리를 지르면서 쇠로 만든 구슬을 집어던져 그 찻잔을 깨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광은 조금도 동요하는 기색없이 이렇게 말했다.


“버들은 푸르고 꽃은 붉다.”

이에 일휴는 그 흔들리지 않는 차 마시는 경지를 크게 칭찬하면서,
원오극근 선사의 묵적(墨跡)을 선물로 주었다.
주광은 이를 표구하여 자기가 기거하던 암자에 걸어놓고 일념으로 차를 즐겼다.
그리하여 마침내 불법이 다도 가운데 있음을 깨달았다.
이름하여 다선삼매(茶禪三昧)였다.

다선삼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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