閑雲野鶴

상록수 - 김민기

푸른하늘sky 2020. 6. 10. 18:19

김민기 - 상록수 (김민기 노래)






상록수는 1977년 김민기와 같이 생활한 노동자들의 합동 결혼식을 기념하여 축가로 만든 노래로 바로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입니다. 1978년 양희은이 발표한 음반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에 실렸습니다.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바람 쳐도
온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서럽고 쓰리던 지난 날들도
다시는, 다시는 오지 말라고
땀 흘리리라 깨우치리라
거치른 들판에 솔잎 되리라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암울한 세상을 향한 음악적 고백


김민기의 유일한 정규앨범인 이 LP가 한국 사회에 끼친 영향은 '한국 대중음악사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 음반'이라는 찬사조차 공허할 정도로 막강했다. 수록된 노래가 대체 뭐길래 그림물감 값이 없어 노래를 시작한 미술학도의 인생을 반체제 혁명가 못지않은 혹독한 탄압과 감시의 고통이라는 가시밭길로 몰아붙였을까? 그리고 온국민은 그의 노래에서 숨막힌 억압의 현실로부터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을까? 동시대의 젊은이는 자신의 세대를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로, 1980년대의 민주화 격량을 지낸 후배에게는 얼굴없이 베일에 가려 차라리 전설과 신화가 되어버린 김민기.

음반 발매 1년후 서울문리대 신입생 환영회에 초청되어 부른 '꽃피우는 아이' 등 3곡의 반정부곡(?) 때문에 동대문 경찰서로 연행됨과 동시에 그의 모든 음반은 압수폐기되어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 당시 상업성이 없어 베스트 셀러 근처에도 못갔던 그의 음반은 판매금지 처분이 내려지자 오히려 찾는 이가 급증하였다. 김민기의 LP음반을 실제로 보거나 들어본 사람은 흔치 않았건만 구전으로 노래가락과 노랫말이 전해졌다. 그리고 그의 노래에 대한 호기심으로 지하에서 불법 카피한 카세트테이프를 고가로라도 어렵사리 구해 돌려들을 정도로 그의 LP는 '보이지 않는 국민애창음반'이 되어버렸다. 도대체 무슨 노래가 수록되어 있기에 그토록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김민기의 노래모음' 초판 1면에는 '친구', '아하, 누가 그렇게.', '바람과 나', '저 부는 바람', '꽃피우는 아이' 등이, 2면에는 '길', '아침이슬', '그날', '종이연', '눈길(경음반)' 등 이렇게 모두 10곡이 수록되어 있다. 이중 '아침이슬'과 '친구'는 누구나 아는 1970년대의 대표적 금지곡이자 국민가요다. 김민기의 음악은 주로 선동적 운동권 노래로만 인식되어 있다. 사랑타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대중가요의 표현한계를 한소절 한소절 은유적인 아름다운 노랫말로 넘어섰다. 바로 그렇게 표현영역을 타파했다는 점만으로도 이제 그의 음악은 재평가되어야 한다.

1980년대 중반 '김민기 노래노음' LP는 마니아 사이에 한달 봉급액수인 30만원대의 고가로 거래되었을 정도로 희귀판이 되어버렸다. 다행(?)인지 모르지만 그의 LP는 두번에 걸쳐 무허가로 재출시가 되었다. 1987년 9월5일 현대음반에서 보랏빛의 변형된 자켓으로 먼저 출시되고 3년뒤인 1990년 1월5일에 1971년의 초판과 똑같은 포맷(자켓과 수록곡)으로 또다시 출시되었다. 오리지널 초판은 거의 전량이 훼손되어 고가희귀판이고 재출시된 판은 시중에서 구하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다. 다만 1987년 출시 재판에는 1면의 '꽃피우는 아이'와 2면의 연주곡 '눈길'이 삭제되어 있기에 1990년의 재판을 구해듣는 것이 현명하다. 다만 재판들은 1971년의 초판에 비해 음의 질감이나 해상력에서 원가피 수준에 머무는 아쉬움이 있는데 오리지널 마스터가 남아있지 않기 때문으로 생각한다.

데뷰음반 수록곡 중 1면의 '친구', '저 부는 바람', '꽃피우는 아이', 2면의 '그날' 등은 김민기의 기타연주고, 나머지 곡은 정성조 쿼텟과 김광희의 연주가 퓨전되어 있다. 이제까지 신경쓰지 않았던 현란한 플룻 연주를 찬찬히 들어보노라면 30년전의 대중가요가 대단한 수준이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이 음반의 최고 화두는 역시 '꽃피우는 아이'다. 수줍은 듯이 억제한 여타 곡의 기타연주와는 달리 연속적으로 퉁겨대는 힘찬 기타 파열음 사이로 애잔하게 파고드는 나즈막하고 읖조리는 듯한 목소리. 화려한 가창력과 백촌도 넘는, 어쩌면 어눌한 그 노래가락의 매력은 들으면 들을 수록 우러나오는 설렁탕의 진국과 다름없다. 30년이란 세월은 야속하지만 LP 음반에서 들려나오는 김민기의 노래는 바로 그때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던 그 목소리 그대로다.

최근 김민기는 가수로서 자신의 음악보다 연극과 뮤지컬에 관심을 가지고 대학로에서 학전소극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제 김민기는 전설이길 거부하고 우리 곁에서 열심히 함께 숨쉬며 살아가고 있다. 더이상 베일에 가린 신비스런 아티스트로 그를 박제화하기보다는 1971년에 그렇게 했듯 이 시대를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새로운 양식의 또다른 김민기 노래를 기대하기엔 그가 너무 늙어버렸을까?


 


김민기의 노래가 정치적 족쇄를 풀기에는 15년이란 세월이 필요했다. 1972년에서 1987년까지 그의 이름으로는 어떠한 곡도 발표되지 못했다. 군복무 시절 '늙은 군인의 노래' 등 많은 곡이 '김아영'이란 가명으로 발표되었지만 언제나 그의 가슴에는 '금지'라는 명찰이 떡 하니 붙여졌다. 1972년 양희은의 2집 '서울로 가는 길'이후 시작된 악몽은 1987년 6월26일 겨우 기지개를 켜게 된다.

해금이후 김민기는 순수창작곡으로 공륜을 통과해 1987년 7월과 12월에 두 장의 LP음반을 발매하게 된다. 88 서울올림픽. 메달을 획득못한 선수을 위한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후에 '모래시계'로 유명해진 작가 송지나가 이 프로그램의 주제음악을 김민기에게 의뢰하여 '봉우리'라는 곡이 만들어진다. TV상영시 주제곡으로 쓰여졌던 이 곡은 여전히 얼굴없는 노래로 공중파를 타고 허공에 메아리쳤다. 해금이 되었다지만 여전히 '김민기'란 이름 석자는 국가적 행사의 주제곡을 만들었다고 발표하기엔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1993년 2월15일 김민기는 '작은 연못'(연주곡)을 포함, 40곡이 수록된 '김민기1-4. 서울음반. 음반번호SPDR331-4' LP들을 2년간의 기획준비기간을 거쳐 발표한다. 2년뒤인 1995년6월 같은 내용의 CD도 발매한다. 이 음반 발매시 각 매스컴은 "김민기 노래의 제 모습을 찾았다"(동아일보 1995년 6월29일자), "시대변화 절감, 김민기 음악 결산전집 나온다"(중앙일보1993년 3월4일자)는 등 호들갑을 떨었다.

"70, 80년대 내내 정치적 억압과 자본주의의 퇴폐성에 눌려있다가 뒤늦게 빛을 보게 된 작품이 이 시대의 변화를 느끼게 한다"는 김민기의 감회어린 소감 뒤엔 경제논리가 분명 복병처럼 도사리고 있었다.

모든 곡을 정규녹음실에서 할 수 없어 "음악친구들의 작업실을 전전하며 때론 24트랙은 고사하고 아나로그 4트랙으로 겨우 녹음을 했다"고 김민기는 고백했다. 세션맨으로 참여했던 김광민의 피아노 튜닝이 잘못되어 고쳐가면서 녹음을 했다하니 그야말로 난산 끝에 출산한 음반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인가 자세히 음악을 듣다보면 차 지나가는 소리, 심지어 개짖는 소리까지 희미하게 들릴 지경이다.

2년여동안의 고초 끝에 빛을 본 김민기의 이 전집음반은 구전으로만 알려지거나 공륜의 심의거부로 음반에 수록하지 못한 것, 작사ㆍ작곡자가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발표되거나 다른 가수의 목소리로 알려졌던 노래 등 40곡을 총망라한 소중한 음반이다. 1971년의 초판에 비해 그의 목소리는 이제 중년의 지독한 저음이 되었다. 녹음작업에는 고인이 된 김광석 외에 조동익 김광민 안치환 한영애 이병우 노영심 등 많은 가수와 세션맨 그리고 어린이들이 기꺼히 참여했다. 그들이 있었기에 음악적으로 다양하고 실험적 음반이 탄생할 수 있었다.

1집은 거의 김민기 본인의 연주노래로 구성되어 있다. 다만 '가을편지'(작사 고은)에선 요즘 최고의 기타 뮤지션으로 명성을 날리는 이병우의 차분하면서도 화려한 선율의 연주를 들을 수 있다. 문제가 되었던 '꽃 피우는 아이'와 송창식 작곡의 '내나라 내겨례', 그리고 '아침이슬', '친구', '그날'도 1집의 레퍼토리다.

2집은 경쾌한 휘파람 속에 여행스케치 등 10여명의 후배들과 합창한 '그 사이', 안치환과 함께한 '아무도 아무데도', '눈산', 김광석의 하모니카가 빛나는 '길', 조동진의 동생이자 어떤 날의 리더였던 조동익과 어우러진 '혼혈아', 장필순 한동준 손진태 등과 최신감각으로 노래한 '철망 앞에서' 등. 2집은 음악후배들과 한마음으로 작업한 앨범이다.

3집도 후배들과 함께 한 앨범으로 1980년대 운동권에서 가장 애창되었던 타령조의 '가뭄', 합창곡으로 꾸며진 '늙은 군인의 노래'가 눈길을 끈다. 김지하가 작사한 '주여 이제는 여기에'는 순수한 어린아이 목소리와 중저음의 김민기 낭송이 소름끼치는 불협(?)의 감동을 준다. 한영애의 절규와 읊조리는 김민기의 하모니가 압권인 '기지촌' 또한 추천하고 싶은 노래다.

4집는 기타, 신디사이저 연주와 편곡까지 도맡아 한 김광민의 재능이 돋보이는 '봉우리'는 명곡이 아닐 수 없다. 늘 김민기가 그리고 이미지화했던 동심의 마음. 이지윤 어린이의 목소리로 자신의 영혼을 대신한 채 그저 허밍만을 하는 '백구'. 그리고 '인형'. 콧등이 시큰해오는 감동을 줄 수 있는 몇 안되는 음반이 아닐까!

"제 노래를 아는 사람에게는 좋은 추억이 되고 제 노래를 경험하지 못하고 자란 신세대에겐 지금의 기성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란다"는 김민기의 바램.

이제 대중문화의 시장 한가운데 선 김민기는 10대, 20대에게는 잊혀져가고 있지만 앞으로도 "상업적이고 말초신경이나 자극하는 작금의 대중문화에 하나의 대안의 문화활동을 펼쳐나가고 싶다"고 수줍게 이야기한다.

김민기는 '지하철 1호선', '모스키토'로 이어지는 일관된 뮤지컬 작업으로 1970년대와는 다르게 이 시대를 치열하게 대응하고 있다. 최근 성사된 록뮤지컬 '지하철1호선'의 성공적인 독일공연과 영원히 '꽃 피우는 아이'로 상록수처럼 변하지않는 그의 모습을 꿈꿔본다.

- 최규성 가요음반컬럼리스트 -



노무현 & 노래를 찾는 사람들 & 장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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