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詩한

건망증1 / 정양

푸른하늘sky 2019. 3. 11. 12:16
20대 조기치매? 아니면 건망증?

 건망증1 / 정양

창문을 닫았던가
출입문을 잠그고 나왔던가
계단을 내려오면서 자꾸만 미심쩍다
다시 올라가 보면 번번이
잘 닫고 잠가놓은 것을
퇴근 길 괜한 헛걸음 벌써
한두 번이 아니다

오늘도 미심쩍은 계단을 그냥 내려왔다
누구는 마스크를 쓴 채로 깜빡 잊고
가래침도 뱉는다지만 나는
그런 축에 낄 위인도 못된다
아마 잘 닫고 잘 잠갔을 것이다

혼자 남은 주막에서
술값을 치르다가 다시 미심쩍다
창문을 닫은 기억이 없다
출입문 잠근 기억이 전혀 없다
전기코드를 꽂아둔 채로 그냥 나온 것만 같다
다들 가고 없지만 누구와도
헤어진 기억이 없다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보통 일이냐
매일같이 닫고 잠그고 뽑는것이
보통일이냐, 그래 보통 일이다
헤어진 기억도 없이 보고 싶은 사람 오래오래
못 만나는 것도 보통일이다
망할 것들이 여간해서 안 망하는 것쯤은
못된 짓 못된 짓 끝도 없는 것쯤은
얼마든지 보통일이다

닫고 잠그고 가고 보고싶고
다 보통 일이다 술기운만 믿고
그냥 집으로 간다 집에서도 다시
닫고 잠그고 뽑고 열고 마시고 끄고 그리고
깜빡깜빡 그대 보고 싶다.












I'm A Fool To Want You - Eddie Higgins Quart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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