香遠益淸

정민, 김홍도의 축원/ 심사정 `백로와 연밥`/ 김홍도 `게와 갈대`

푸른하늘sky 2019. 2. 11. 22:40

          70, 80살까지 오래오래… 김홍도의 축원

[정민 교수의 '그림 읽기 문화 읽기']'고양이와 나비'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
 
살금살금 기어가던 고양이 위로 긴꼬리 제비나비 한 마리가 훨훨 날아든다. 서로 어우러져 호응하는 형세다. 앞쪽에는 듬성듬성 놓인 바위 사이에 빛깔이 다른 패랭이꽃이 한 무더기 피었다. 고양이 바로 앞쪽에는 제비꽃 한 포기가 고개를 동그랗게 숙였다. 고양이와 나비, 패랭이꽃과 제비꽃, 그리고 바위의 조합을 읽어야겠다.

먼저 고양이와 나비. 고양이와 나비가 어우러진 그림은 흔히 모질도(��圖)라 한다. 모(�)는 70 늙은이, 질(�)은 80 늙은이를 뜻한다. 고양이 묘(猫)와 나비 접(蝶)의 묘접(猫蝶)의 중국음 '마오[mao]디에[die]'가 모질(��)과 같아, 이런 의미 부여가 이루어졌다.

▲ 김홍도의 고양이와 나비. 종이에 채색. 가로 46.1×세로 30.1cm, 간송미술관 소장
다음은 패랭이꽃과 바위다. 패랭이꽃은 한자로는 석죽화(石竹花)라 한다. 줄기에 마디가 져서 마디마다 댓잎 같은 걀쭉한 잎이 나므로 이런 이름을 얻었다. 담박하고 청초한 들꽃이어서 뜻 높은 군자의 기풍을 나타낸다. 또 석(石)은 바위로 늘 장수의 상징이고, 죽(竹)은 중국음이 축(祝)과 같은 '쥬[zhu]'여서 이 둘이 만나면 축수(祝壽)의 의미를 띤다. 그 옆에 바위까지 한데 그렸으니, 석죽화와 바위가 만나 '오래 살기를 축원한다'는 문장을 만들어냈다.

나머지 하나 남은 것은 화면 아래쪽의 제비꽃이다. 제비꽃은 꽃대가 갈고리를 건 것처럼 안으로 굽었다. 한자로는 여의초(如意草)라 한다. 여의(如意)는 중국 사람들이 지금도 탁자 위에 장식용으로 얹어두곤 하는 물건이다. 보통은 나무를 깎아 만들고 금속 소재로 만들기도 한다. 이 여의의 모양이 꼭 제비꽃의 꽃대와 같은 생김새다. 원래의 용도는 효자손처럼 등의 가려운 곳을 마음먹은 대로(如意) 긁기 위한 것인데 나중에는 장식용 물건이 되었다. 그러니까 화면 아래쪽에 그린 제비꽃은 '뜻하신 대로 이루시라'는 의미가 된다. 바닥에 무성하게 깔린 잡초도 언뜻 보아 두어 종류가 있다. 그림 속의 잡초들은 덩굴로 뻗어 자라는 왕성한 번식력을 자랑한다.

합쳐 읽는다. "뜻 두신 일 뜻대로(제비꽃) 모두 이루시고, 나이 70(고양이) 80(나비)살까지 건강하게 오래오래(바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석죽화)." 틀림없이 생일 선물이나 회갑 기념 선물로 그려준 것이다. 화제에는 "벼슬은 현감, 자호는 단원, 또는 취화사(醉畵士)"라고 써서, 스스로에 대한 자부를 드러냈다.

추사가 그린 그림 중에도 모질도가 있다. 워낙 묘사력이 형편없었던 추사는 갈필로 겨우 쥐인지 고양이인지조차 분간 안 되는 고양이 한 마리를 그리다 말고, 화제에 모질도(��圖)라고 썼다. 권돈인의 생일 선물로 준 것인데, 나비는 없지만 화제를 보고 알아서 생각하시라는 재치가 담겨있다.

입력 : 2008.07.11 16:03

 

 

一鷺蓮果(일로연과)→一路連科(일로연과), 小科·大科를 '한방'에…

[정민 교수의 '그림 읽기 문화 읽기'] 심사정 '백로와 연밥'

 
백로 한 마리가 못가를 걸어간다. 시선을 앞으로 집중하고 있는 걸 보니, 시든 연잎 아래 노니는 물고기를 노리는 눈치다. 백로의 머리 위로 고깔처럼 연밥이 드리웠다. 백로는 여름 철새다. 연꽃이 진 자리에 연밥이 매달리는 것은 잎이 시든 가을철의 일이다. 백로와 연밥은 실제로는 함께 놓일 수 없는 조합이다. 그런데도 화가들이 즐겨 그렸다. 역시 의미로 읽어야 한다.

백로는 우리말로 해오라기다. 하야로비, 해오라비라고도 부른다. 한자로는 백로(白鷺), 설로(雪鷺), 설객(雪客), 설의아(雪衣兒) 등 눈처럼 흰 깃에 눈길을 준 이름들이 있다. 풍채가 빼어나다 해서 풍표공자(風標公子)로 부르기도 하고, 머리 뒤로 실처럼 흩날리는 멋진 깃을 두고 사금(絲禽), 로사, 백령사 등의 이칭도 있다.
▲ 종이에 담채. 세로 16.2×가로 12.4cm, 서울대박물관 소장.
一鷺蓮果(일로연과)→一路連科(일로연과), 小科·大科를 '한방'에…
[정민 교수의 '그림 읽기 문화 읽기'] 심사정 '백로와 연밥'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


연밥은 연꽃이 진 자리에 벌통처럼 생긴 원추형의 자루가 생겨나, 구멍마다 연실(蓮實)이 송송 박힌 것이다. 이 열매는 약재로 쓰고, 요리의 재료로도 애용된다.

백로와 연밥을 함께 그릴 때는 한 마리만 그려야 한다. 이 둘을 합치면 일로연과(一鷺蓮果)다. 일로(一鷺), 즉 한 마리 백로는 '일로(一路)'와 음이 같다. 연과(蓮果), 곧 연밥은 '연과(連科)'와 통한다. 그래서 그림의 의미는 '일로연과(一路連科)'가 된다. 단번에 소과와 대과에 연달아 급제하라는 뜻이다. 오늘날로 치면 사법고시 1차 2차 시험을 한꺼번에 붙는 것을 말한다.

썩썩 몇 차례 거친 붓질로 연잎을 그리고, 그 빈 여백에 덤불 사이로 보일 듯 말 듯 백로 한 마리를 그려 넣었다. 백로도 분방한 선 몇 개로 그렸지만 새의 특징은 놓치지 않았다. 그러고는 진한 먹을 붓끝에 살짝 묻혀 줄기와 점을 찍어 순식간에 그림을 마쳤다. 체세(體勢)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이징의 '연지백로(蓮池白鷺)'와 서울대박물관에 소장된 신사임당의 그림으로 전해지는 '노련도(鷺蓮圖)'에는 연밥 아래 백로 두 마리가 그려져 있다. 두 그림 모두 개구리밥이 떠다니고, 백로 한 마리가 물고기를 잡아먹고 있거나 노리고 있다. 두 마리 백로 때문에 '일로연과'의 의미가 사라지고, 부부가 백두해로(白頭偕老) 하라는 의미로 바뀌었다. 사실은 일로연과의 뜻이 흐려지면서 생긴 변형이다.

 

같은 백로 한 마리도 연밥 아닌 부용화(芙蓉花) 아래 서 있으면, 일로영화(一路榮華)의 뜻이 된다. 용화(蓉花)와 영화(榮華)의 중국음이 같기 때문이다. 계속해 부귀영화를 누리시라는 것이니, 벼슬길의 승승장구를 축복하는 의미로 바뀐다. 같은 소재도 한 마리냐 두 마리냐에 따라 의미가 바뀐다. 연밥이냐 부용화냐에 따라서도 그림의 주제가 달라진다. 한양대 국문과 교수
입력 : 2008.06.20 16:10

 

 

임금에게 직언하는 올곧은 선비가 되어라

[정민 교수의 '그림 읽기 문화 읽기] 김홍도 '게와 갈대'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
 
게 두 마리가 갈대 이삭 하나를 놓고 각축을 벌인다. 게와 갈대는 흔히 함께 그려지는 짝이다. 비교적 단순한 조합이다. 무슨 뜻일까?
▲ 비단에 담채. 23.1×27.5㎝, 간송미술관 소장

 먼저 갈대의 의미를 읽어보자. 갈대는 한자로 로(蘆)다. 게가 갈대를 물어 전하면 '전로(傳蘆)'인데, '전려(傳�)'란 말에서 나왔다. 로(蘆)와 려(�)는 우리말 음으로는 달라도 중국음은 모두 '루'다. 전려는 예전 과거시험을 볼 때 합격자를 발표하던 의식이다. '려'는 전고(傳告), 즉 전하여 알린다는 뜻. 궁궐의 전시(殿試)에서 황제께서 납시어 합격자를 발표한다. 황제가 이름을 부를 때마다 각문(閣門)에서 이를 이어받아 외쳐, 섬돌 아래까지 전한다.


그러면 호위 군사가 일제히 큰 소리로 그 이름을 외친다. 한 사람씩 호명될 때마다 각문 밖에선 탄식과 환호가 엇갈렸다. 생각만 해도 근사한 장면이 아닌가. 이후로 전려는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한 사람을 부르는 호칭이 되었다. 갈대의 의미는 그렇다 치고 왜 하필 갈대를 무는 것이 게였을까? 게는 한자로 해(蟹)다.


예전 과거 시험은 각 지역의 향시(鄕試)에서 합격한 사람만 중앙으로 올라가 전시(殿試)에 응시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발해(發解)다. 해(解)와 해(蟹)의 음이 같다. 발해에 뽑힌 사람[게]이 다시 전시에서 전려(갈대), 즉 급제하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게다가 게는 등딱지가 갑옷처럼 되어있어 그 자체로 갑제(甲第)의 뜻도 있다.

이제 화제를 풀 차례다. 여백에 경쾌한 필치로 "바다 용왕 앞에서도 옆으로 걷는다(海龍王處也橫行)"는 글귀를 썼다. 횡행개사(橫行介士)는 게의 별명이다. 게는 옆으로 걷는다. 말 그대로 횡행(橫行)한다. 개사(介士)는 강개한 선비란 뜻이지만 집게까지 든 갑옷 입은 무사이기도 하다. 횡행한다는 것은 제멋대로 거리낌 없다는 말이다. 게 그림의 화제에 횡행사해(橫行四海)라 쓴 것도 많은데 천하를 마음껏 주름잡으란 뜻이다.

그러니까 화제의 의미는 임금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당당히 바른 말을 한다는 뜻이 된다. 당나라 때 시인 두목(杜牧)의 '영해(�蟹)' 시의 한 구절이다. 원시는 이렇다. "푸른 바다 못 봤어도 진작 이름 알았나니, 뼈 있으되 도리어 살 위로 생겨났네. 생각 없이 번개 우레 겁먹는다 하지 마소. 바다 용왕 앞에서도 옆으로 걷는다오(未遊滄海早知名, 有骨還從肉上生. 莫道無心畏雷電, 海龍王處也橫行)." 모든 동물은 살 속에 뼈가 있다. 게는 뼈 속에 살이 있다. 걸핏하면 구멍 속으로 쏙쏙 숨는다고 겁쟁이라 얕보지 마라. 바다 용왕 앞에서도 삐딱하게 옆으로 걷는 강골이라는 말씀이다.

 

갈대 이삭을 문 게로 과거 급제를 축원했다. 두 마리를 굳이 그린 것은 소과 대과에 연달아 합격하란 속뜻이 있다. 합격에서 그치지 않고 화제로 급제한 후에 천하를 주름잡는 큰 인물이 되어 임금 앞에서도 직언하는 올곧은 선비가 되라는 주문까지 담았다. 게의 두 가지 상징을 절묘하게 겹쳐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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