淸言情談

도문대작屠門大嚼

푸른하늘sky 2018. 1. 23. 14:53

출전

「사람들은 장안의 음악을 들으면 문밖을 나서 서쪽을 보며 웃고, 고기의 맛이 좋다는 말을 듣고 나면 고깃집 문을 바라보며 씹는 흉내를 낸다.(人聞長安樂, 則出門西向而笑. 肉味美, 對屠門而嚼.)」(환담(桓譚) 《신론(新論)》)

「식(植)이 아룁니다. 계중(季重) 족하는 전날 관리로 등용되어 나와 가깝게 자리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여러 날 잔치 자리에서 술을 마시기는 했지만 서로 멀리 떨어져 만나는 일이 드물어져 오히려 쌓인 노고를 다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술잔을 올리면 앞에서 물결이 넘실거리는 것 같고, 퉁소와 피리가 뒤에서 흥겹게 연주되면 족하는 그 풍채를 독수리처럼 드날려서 봉황이 탄복하고 호랑이가 응시하는 것과 같으니, 소하(蕭何)나 조참(曹參)도 그대의 짝이 될 수 없고, 위청(衛靑)과 곽거병(霍去病)도 그대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왼쪽을 돌아보고 오른쪽을 살펴보아도 사람다운 사람이 없다고 하실 것이니, 어찌 당신의 장한 뜻이 아니겠습니까. 고깃집 문 앞을 지나가면서 크게 씹는 흉내를 내면 비록 고기를 못 먹었지만 귀하고 통쾌한 뜻일 것입니다.(植白, 季重足下, 前日雖因常調, 得爲密坐. 雖燕飮彌日, 其於別遠會稀, 猶不盡其勞積也. 若夫觴酌凌波於前, 簫笳發音於後, 足下鷹揚其體, 鳳歎虎視, 謂蕭曹不足儔, 衛霍不足侔也. 左顧右眄, 謂若無人, 豈非吾子壯志哉. 過屠門而大嚼, 雖不得肉, 貴且快意.)」(조식(曹植) 〈여오계중서(與吳季重書)〉)

이상의 전적에서 말한 고깃집 앞에서 (고기) 씹는 흉내를 낸다는 말에서 ‘도문대작’이 유래하여, 상상만으로도 마치 얻은 것처럼 만족하는 것이나 허장성세를 비유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조선 시대의 허균(許筠)은 이 성어를 이용하여 책의 제목으로 삼기도 했다. 그가 1611년(광해군 3년)에 지은 《도문대작(屠門大嚼)》은 전국 8도의 식품과 그 산지에 관해 기록한 책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내가 죄를 짓고 귀양살이를 하게 되니 지난날에 먹었던 음식 생각이 나서 견딜 수 없다. 이에 유(類)를 나누어 기록해 놓고 때때로 보아 가며 한번 맛보는 것이나 못지않게 한다.”고 밝히고, 당시의 식품을 유형별로 나누고 이들 식품의 특징과 명산지를 설명했다.

방풍죽(防風粥, 강릉), 석이병(石耳餠, 개성), 엿 · 대만두(大饅頭) · 두부 · 다식(茶食) · 웅지정과(熊脂正果) 등 병이류(餠餌類) 11종, 강릉의 천사배(天賜梨), 전주의 승도(僧桃) 등 과실류 28종, 곰발바닥(熊掌), 표범의 태(豹胎), 사슴의 혀와 꼬리 등 비주류(飛走類) 6종, 붕어 · 청어 · 복어 · 송어 · 광어 · 방어 · 도루묵 · 홍합 · 대하 등 해수족(海水族) 46종, 무 · 배추 등 채소류 33종, 기타 5종을 나열하고, 이들 식품의 특징과 명산지를 밝혔으며, 끝으로 서울 음식 28종을 계절과 재료에 따라 분류하였다.

이 책에서 특히 흥미를 끄는 것은 실국수(絲麪)에 대해 설명하면서 중국의 오동(吳同)이라는 사람이 이를 잘 만들었기 때문에 그 이름이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의 ‘우동’이라는 음식명이 원래 중국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추측하게 하는 대목이다. 책 끝에는 1611년 4월에 쓴 저자의 제사(題辭)가 있는데, 《도문대작》이라는 제목은 고기를 먹고 싶으나 먹을 수가 없으므로 도문(고깃집)이나 바라보고 씹는 흉내를 내며 자위한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출처:고사성어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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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문대작(屠門大嚼)


허균(許筠, 1569-1618)은 미식가였다. 어려서부터 사방의 별미를 많이 먹었고 커서도 갖가지 산해진미를 찾아다니며 맛 봤다. 그는 1610년 과거 시험 채점 부정에 연루되어 전라도 함열 땅에 유배 갔다. 유배지의 밥상에는 상한 생선 아니면 감자나 들미나리가 올라왔다. 그마저도 귀해 주린 배로 밤을 지새기 일쑤였다. 그런 밤이면 그는 책상에 오도카니 앉아서 지난날 물리도록 먹었던 귀한 음식에 관한 기억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떡과 과실, 육고기와 수산물, 그리고 채소에 이르기까지 종류별로 적어 나갔다.

그것이 맛있었지. 이건 더 기가 막혔어. 이렇게 하나하나 적어가는 동안 무려 125개의 항목이 채워졌다. 입맛에 대한 기억을 호명하는 사이에 그는 시장기를 잊었고 책이 완성되자 유배에서 풀려났다. 이 책의 제목이 『도문대작(屠門大嚼)』이다. 위나라 조식(曹植)이 「여오계중서(與吳季重書)」에서 “푸줏간 앞을 지나며 크게 씹는 시늉을 함은 고기를 비록 못 얻어도 귀하고 또 마음에 통쾌해서다.”(過屠門而大嚼, 雖不得肉, 貴且快意.)라고 한데서 따왔다. 흉내만으로 자족하는 것을 비유할 때 많이 쓰는 표현이다.

책속의 항목들은 각 지방의 특산물로 가득해서 해당 지역에서 들으면 반색할 내용이 많다. 강릉의 방풍죽(防風粥)은 한번 먹으면 사흘 동안 향기가 가시지 않는다. 전주에서만 만드는 백산자(白散子), 안동의 다식과 밀양과 상주의 밤다식, 여주 사람이 잘 만든다는 차수(叉手) 떡 같은 목록이 눈길을 끈다. 과일로는 정선군의 금색배와 곡산과 이천 특산의 대숙배[大熟梨], 온양의 조홍시(早紅柹)와 남양의 각시(角柹), 지리산의 먹감을 특기했다. 수박은 동과처럼 길쭉한 충주 것을 상품으로 쳤고 모과는 예천 산을 꼽았다. 대추하면 보은 대추요 자두는 삼척과 울진 것을 높였다. 호남의 죽순 절임과 나주 무, 제주 표고와 삼척 올미역, 순천 작설차와 경주 약밥도 허균의 입맛을 다시게 했다.

입맛의 기억은 강렬하다. 특정 장소의 추억을 동반한다. 배고픈 유배지의 거처에서 하나하나 호명해 복원한 별미 목록을 보며 역경 앞에서 지녀야 할 삶의 어떤 태도를 떠올려 본다.

 
-정민교수 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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