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詩한

눈 많이 온 날 / 안도현

푸른하늘sky 2017. 12. 25. 23:59

눈 많이 온 날 / 안도현

눈 많이 온 날 장수에서 비행기재 겨우 넘어온 김선생이 말했다
안선생, 내 갤로퍼가 눈길에 토끼를 치었어요
귀가 갑자기 토끼처럼 길쭉해진 안선생이 김선생을 따라나섰다
비탈진 고갯길 눈 뒤집어쓴 마른 억새 밑둥치에 토끼가 납작 엎드려 있었다
옆구리에 얼룩진 핏자국을 눈발이 슬슬 가려주고 있었다,
왼쪽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브레이크를 잡을 수가 있어야지,하고
김선생이 말하자 안선생이 고래를 흔들며,
자동차에게는 측면이었지만 토끼한테는 정면이었겠지요, 하고 말했다
김선생이 머리를 긁적였고,
그러자 하늘이 토끼털처럼 어두워졌다
두 사람은 괜히 짠해졌고,
토끼를 풀숲에 다시 던지고는 허청허청 고개를 내려왔다

 

퇴근 무렵 서무실에서 토끼탕을 끓였으니 오라는 연락이 왔다

그날은 정말 눈이 많이 와서 안선생도 소주가 싸하게 생각나던 참이었다 

  




시인은 전교조 해직교사였다.

복직해 장수에서 가르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