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詩한

저녁 먹고 동네 한 바퀴 / 복효근

푸른하늘sky 2017. 12. 17. 14:23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저녁 먹고 동네 한 바퀴 / 복효근

6월 저녁 해어스름
어둠이 사물의 경계를 지워나갈 때
저녁 먹고 동네 한 바퀴
어두워지는 일이 이리 좋은 것인 줄 이제 알게 되네
흐릿해져서
흐릿해져서 산도 나무도
무엇보다 죽도록 사랑하고 죽도록 싸웠던 일들도 흐릿
흐릿해져서
개망초 떼로 피어선 저것들이 안개꽃이다 찔레꽃이다
안개꽃이면 어떻고 찔레꽃이면 어뗘
개망초면 어떻고 또 아니면 어뗘
꽃다워서 좋더니만
이제 꽃답지 않아서 좋네 이녁
화장을 해서 좋더니
화장하지 않아서 좋을 때가 이렇게 왔네
저녁 이맘때의 공기 속엔 누가 진정제라도 뿌려놓은 듯
내 안에 날뛰던 짐승도 순하게 엎드리네
이녁이라고 어디 다를라고
뭐 죽도록 억울하지는 않아서 세상 다 용납하고 받아들이겠다는 듯
어둠 속에 둥굴어진 어깨를 보네
이대로 한 이십년 한꺼번에 더 늙어지면
더 어둡고 더 흐릿해져서
죽음까지도 이웃집 가듯 아무렇지 않을 깜냥이 될까
모든 일이 꼭 이승에서만이란 법이 어디 있간디
개망초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뗘
꽃이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뗘
그 때 기억할까 못하면 또 어뗘
저녁 먹고 동네 한 바퀴

지는 꽃 쪽으로도 마음 수굿이 기울여지던


 
 
 

About You / Yoshimata Ryo 냉정과 열정의 사이


'詩--詩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블랙 워터 숲에서 / 메리 올리버   (0) 2017.12.17
부탁 / 나태주   (0) 2017.12.17
검색 / 오성일   (0) 2017.12.17
한 수 위 / 복효근   (0) 2017.12.17
소설 / 이정록   (0) 2017.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