習靜偸閑

[신간] ‘1세대 인권변호사’ 한승헌이 만난 사람들 ‘그분을 생각한다’

푸른하늘sky 2019. 6. 27. 13:40

1960년대 후반, 이십대 청년 한승헌은 잡지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내가 만난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났다. 고뇌의 석양 노을 속에서 ‘인생론’을 즐겨 읽던 그 때, ‘나도 언젠가는 그런 제목에 어울리는 인물·이야기를 써야지’ 생각했다. 수많은 사람들과 이런저런 접점과 사연을 쌓아가며 어느덧 팔십대 중반의 인생을 쌓아올린 2019년 봄, <그분을 생각한다>(문학동네)가 세상에 나왔다.

“세상을 바로 잡겠다며 헌신한 인물들, 어려운 삶 속에서도 바른길을 지키며 살아간 분들, 그들이 보여준 삶의 실체와 교훈을 널리 알리는 데 이 책이 기억과 깨달음의 각성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머리말 중)

이 책은 ‘1세대 인권 변호사’ 한승헌이 만난, 격동의 세월 속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유명인사들의 평전이나 일대기가 아니라 한승헌 변호사가 직간접으로 교감한 “메마르고 야속한 이 세상과 이웃을 위해 ‘사서 고생하는’” 사람들의 삶을 소개한다.

남정현의 ‘분지’ 사건을 비롯해 동백림 간첩단 사건 등 한국현대사 속 굵직한 사건들의 변론을 도맡았던 그가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스물일곱 명의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 중에는 겨레의 스승 함석헌 선생, 한국 앰네스티 초대 이사장 김재준 목사, 동백림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이응노 화백과 천상병 시인, ‘광주의 어머니’ 시민운동가 조아라 선생, 북한에서 만난 고교 선배 인민예술가 정창모 화백, 김대중·문재인 대통령 등 한국현대사의 한 획을 그은 거목들이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권리를 얻기 위해 어둠 속에서도 별처럼 빛난 그들의 희생을 되짚어보게 한다.

불평등한 제도에 신음하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최초의 여성 변호사 이태영, 법이 국민을 탄압하는 집권자의 도구로 이용될 때 국민의 편에서 고난을 견딘 ‘1세대 인권 변호사’ 이돈명·이병린, 필화 사건에 휘말린 예술가들을 위해 법정에서 당당히 신념을 밝혔던 안수길·이어령과의 일화를 통해 이 땅에서 민주주의·인권·정의·평화가 발아한 값진 순간들을 포착하고 그들의 신념과 용기를 되새긴다.

전현직 대통령들과의 일화도 담았다. 김대중 정권 시절에는 감사원장으로, 노무현 정권 시절에는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했던 한승헌 변호사는 역사의 폭풍을 함께 해쳐온 ‘그분’들과의 추억을 회상한다. 박정희 정권의 10월 유신 선포 후 선거법 위반 사건으로 기소된 김대중 대통령을 대변했던 일, 탄핵소추된 노무현 대통령의 변호인단으로 활약했던 일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1975년 봄 서울구치소 옆방 동문으로 시작한 문재인 대통령과의 인연도 눈길을 끈다. 두 사람은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와 6월 민주항쟁, 노무현 변호사 구속 사건 변호인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 대리인단,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등 여러 곳에서 같은 길을 걸었다.

한승헌 변호사는 1934년 전북 진안에서 태어나 전주고와 전북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한 뒤 검사생활(법무부, 서울지검 등)을 시작했다. 변호사로 전신한 이후엔 독재정권 아래에서 탄압받는 양심수·시국사범의 변호와 민주화·인권운동을 위해 힘썼다.

‘어떤 조사’ 필화 사건과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두 차례 옥고를 치렀다. 변호사 자격 박탈 8년 만에 복권, 변호사 활동을 재개했고, 필화 사건을 포함한 시국 사건의 변호를 계속해왔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전무이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이사장, 방송위원회·언론중재위원회·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 위원, 헌법재판소 자문위원, 감사원장, 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 대통령 통일고문,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위원장 등으로도 활동했다.

출처 : 전북일보(http://www.jja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