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狂不及

Gustav Klimt

푸른하늘sky 2019. 6. 11. 18:05

 

 가르데호수 주변의말세진느(Malcesine on Lake Garda)  1913

1945년 화재로 소실

 

 

         개양귀비 들판 (Poppy Field) 1907
오스트리아미술관

 

 

 

검은 깃털 모자를 쓴 여인(1909~10)

 

비스듬히 몸을 기울인 채 담배를 꼬나문 여인은 분명 '팜므 파탈'적 캐랙터의 전형이다.

특히 모자가 지나치게 과장되어 그림의 주인공이 여인인지 모자인지를  묻게 할 정도이다.

 

 

 

 고요한 호수

 

단지 빛의 확산과 관조적인 울림만이 있는 독특한 분위기이다.

그림 전체를 지배하는 고요함은 인간의 행위나 동적인 에너지가 끼어들 여지를 아예 없앤다.

 

 

 

<기다림 1904>...벽화


벨기에 사람 스토클레가 자신의 저택 식당을 꾸며 달라고 부탁했어요.

클림트는 대리석에 금,에나멜,색깔 있는 돌등을 박아 넣어 모자이크 벽화를 꾸몄지요.

 

이 벽화는 클림트의 독특한 무의와 인디언 미술, 불교 미술이 어우러진 작품이에요.

이 벽화의 일부분인 <기다림>을 잘 살펴보세요.

머리와 손이 장식무늬에서 튀어나오는 것 같지요?

곳곳에 숨어 있는 눈들이 우리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 같아요.

 

 

 

 나무 아래 핀 장미꽃 (Roses Under the Trees) 1905 

파리,오르새미술관

 

 

 

 너도밤나무 숲 Ⅰ
 (Beech Forest I)


1902
노이에 마이스터
주립미술관

 

 

 

 

 다나에
(Danae)


1907-8
유채, 83 x 77 cm
그라츠, 개인소장
 
<다나에>는 주피터를 상징하는 쏟아지는 황금 빗줄기를 받아들이려고 몸을 도사리고 있다.
한마디로 에로스가 주제다,라고 ...

 

 

 

 메다 프리바세시의 초상

 

'메다 프리바세시의 초상' 소녀다운 느낌이 물씬.

배경의 분홍색과 흰색,

그리고 바닥의 아기자기한 색채들의 어우러짐이 ...

 

 

 

 

 모자를 쓴 여인(1909~10)

 

이 그림을 보면 왜 클림트를 미인의 숭배자라 하는지를 짐작케 한다.

왼쪽을 향? 시선, 내려 뜬 눈, 차가운 표정.. 그녀의 얼굴은 모자와 머리,

목도리에 의해 가려졌지만 도발적인 죄악의 냄새를 감출 수는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잠시도 시선을 뗄 수 없는 육감적인 생기가 끊임없이 뿜어지고 있다.

 

 

 

 물뱀Ⅰ
(Water Serpents I)


1904-7
유채  20 x 50cm
오스트리아 미술관

 

 

 

 물뱀Ⅱ
(Water Serpents Ⅱ)


1904-7
유채  145 x 80cm
개인 소장

 

 

 

 배나무
 (Pear Tree)
 
 1903
하바드대학미술관

 

 

 

 북부오스트리아주 농가
 (Farmhouse in Upper Austria)


1911-12
오스트리아미술관

 

 

 

 사과나무1

 

 

 

 

 사과나무2

 

 

 

 

 석양

 

사람의 자취는 없이 자연 정경만이 펼쳐지는 풍경화들은

보는 이의 시선을 확 잡아끄는 힘이 부족하다.

 

풍경화에서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사람의 자취를, 

적어도 '나' 라는 일인칭 자아에 의해 굴절된 풍경을 바란다면.

그래서 내면의 갈망과 외침이 뚝뚝 묻어나기를 바란다면 클림트의 풍경화는 분명 재미가 없다.

 

그렇지만 클림트의 풍경화를 그저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것으로만 받아들이는 것도

이 그림이 보여주는 풍부한 감수성의 세계로 들어서는 문을 미리 닫아버리게 한다.

왜냐하면 여기에 배여있는 클림트 특유의 감성을 놓치기 때문이다.

 

 

 

 

세레나 레데레의 초상 1899

 

 클림트는 전통에서 벗어나 마음껏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어요.

그래서 유명한 화가들이 모여 있는 예술가 협회를 떠나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지 예술가들을 모아'분리파'라는 단체를 만들었어요.

 

분리파 예술가들의 등장은 미술계를 뒤흔들어 놓았지요.

클림트는 빈 분리파의 첫번째 회장이 되었답니다.


분리파를 후원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고

그들의 부인이나 딸들의 초상화를 그려 주기도 했어요.

후원자들은 클림트가 인상주의 기법으로

우아하게 그려준 초상화를 보며 매우 기뻐했답니다. 

 

 

 

 십자가
 (Farm Garden with Crucifix)


1911-12
1945년 화재로 소실

 

나무들과 관목 덤불, 집은 형체가 불분명하여 신비한 느낌까지 준다.

그래서일까. 전혀 사실적이지 않고 풍경이 모호하게 뒤섞인 듯한 이 그림에서

오히려 사실적인 그림이 줄 수 없는 어떤 것. 현상 배후에 있는 실제 혹은 진실이 어렴풋이 드러나 있다.

 

이처럼 실재와 진실이 환기되는 느낌을 받는 것은 이 그림이 가진 완벽한 조화 때문이다.

그리고 이 실제와 진실은 결코 들추어서는 안 된다는 베일 뒤에 숨어 있는 이시스 여신상이 가진 의미와 통한다.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1

 

배경과 옷이 온통 황금색으로 칠해져 있고,

정사각형,직사각형,원,소용돌이무늬,이집트 그림 속에 나오는 눈 모양드이 온통 뒤섞여서

마치 모자이크처럼 느껴...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 (1907년)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은 클림트의 모델이자 후원자였던

블로흐바우어를 유화물감으로 그리고 금으로 덧칠한 작품이다.

 

 

 

 아터 운트라흐의 집들(1908)

 

클림트 풍경화들에서는 원근법이 교묘하게 비틀려 있으며 빛의 방향조차 일정하지 않다.

단지 빛의 확산과 관조적인 정적만이 흐르는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아터호의 시골집

 

나무들과 관목 덤풀, 집은 형체가 불분명하여 신비한 느낌까지 준다.

전혀 사실적이지 않아 보이는 이 그림에서 오히려 현상 배후에 있는

'알 수 없는 그 어떤' 진실이 어렴풋이 드러나는 듯 ...

 

 

 

 

 에밀리 폴뢰게의 초상

Portrait of Emilie Floge


1902
Oil on canvas
71 1/4 x 26 1/8 in. (181 x 66.5 cm)
Historisches Museum der Stadt Wien, Vienna


그러나 클림트의 여인 중 가장 그와 가까웠던 여인은 에밀리 플뢰게였다.

12세 연하의 에밀리는 17세에 클림트를 만났는데,

그 언니가 클림트의 동생 에른스트와 결혼하던 해이다.

 

패션에 재능을 발휘해서 한때 빈 패션계를 주름잡는 부티크와

대현 바느질 공장을 성공적으로 운영해나간 사업가이기도 했다.

클림트는 그녀의 부티크 숍 실내는

물론 당시 대유행했던 주름이 많고 헐거운 일자형의

새로운 스타일 옷과 액세서리를 디자인해 주기도 했으며,

부유한 귀부인들을 모두 그 숍으로 안내해주었다.

 

에밀리 역시 끝내 독신으로 살았고, 클림트가 임종 시 부른 단 하나의 여자였다.

그러나 클림트가 에밀리에게 보낸 4백 여 장의 서신 내용으로 미루어볼 때

그들은 끝까지 플라토닉한 관계를 유지했다.

전화가 보급되기 이전의 시대이기도 했지만

클림트가 에밀리에게 보낸 엽서는 너무나 간결하고 사소한 내용이었다.


연극 표가 두장 있는데 함께 가지 않겠소?
저녁 9시쯤 술 한잔하러 들르겠소.

또는 여행할 때면 행선지, 떠날 때는 도착시간, 날씨, 간단한 기분 상태 등을 적었다.

 

에밀리가 사업 관계로 여행을 떠날때면 언제 돌아오느냐고,

돌아오는 날까지 같은 내용을 반복해 보내기도 했다.

또는 여행지 바르셀로나의 아름다운 여자들을 보고 난 탓인지,

어제는 당신 꿈을 꾸었소란 정도로 간단한 사연을 나겼을 뿐이다.

 

그들 둘은 서로의 사생활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고 많은 모임에 함께 초대되었다.

에밀리는 클림트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여 그의 문란한 여자 관계는 물론 그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과,
그 어머니와 누이들과의 각별한 가족애도 너그럽게 포용했다.

 

또한 결혼의 테두리 안에서 자유로운 창작 활동이 어렵다거나

그의 작업실이 빈의 할렘으로 불릴 만큼 늘 아름다운 누드 모델들로 붐빈다는 사실도 알고 있지만,

그와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독립생활을 하며

그와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판단한 사려 깊은 연인이었다.

 

그녀의 그러한 헌신적 사랑과 깊은 이해심과 배려는,

클림트가 마지막 순간까지 가장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는 여인으로 남게 하였다.

 

 

 

 여름 풍경

 

클림트의 '모자이크 양식' 풍경화 중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다.

모자이크처럼 작은 붓질이 모여 하나의 그림을 구성하고 있으면서도

하나하나의 붓질이 전체 구성에 거슬리기는 커녕 잘 융화되어 절로 감탄사를 연발케 한다.

 

그림의 형식과 기법이 하나로 녹아 있는 이 아름다운 그림 앞쪽에 펼쳐진 초원은

세심하게 장식된 융단처럼 부드럽다...

 

 

 

 여자의 세시기
(The Three Ages of Woman), 1905 


유채, 180 x 180 cm
로마 국립갤러리

 

무엇보다도, 아이와 가운데 있는 여인의 표정이 너무나 편안해 보여서 ...

 

 

 

 의학
(Hygieia)


1900-07
유채, 300 x 430 cm
1945년 화재로 소실
 
얼마나 안타까운가! 이 그림이 화재로 소실되었다니...
제일 원통한것중 하나는 이런 그림을 전체적인 구도로
올리지 못하고 부분적으로 올릴수 있다는거다

 

<히게이아 1907>...대학강당의 천장화

 

빈 대학 강당의 천장에 그림을 그려달라는 부탁을 받고 그린 그림...
클림트는 철학,의학,법학의 세가지 학문을 나타내는 그림을 그렸지요.

 

그는 의사나 교수처럼 고상한 사람들의 그려서 학문의 세계를 표현하지 않고

 탄생에서 죽음까지 인생의 부끄럽고 추한 모습을 숨김없이 그렸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이 작품을 수준 낮은 작품이라며 비난했어요.
클림트는 자신의 그림을 이해해 주지 않자 답답함을 느겼어요.

그는 받은 돈을 모두 돌려주고 그림을 도로 가져왔답니다.

 

 

 

 정원에 만발한 꽃
 (Farm Garden)
 
 1905-06
오스트리아미술관

 

 

 

 

 주디트와 홀로페른

 

1901년 작
  남자를 파멸시키는 요부라는 주제입니다. 주디트의 모습이 굉장히 관능적입니다.

주디트는 마을을 구하기 위해 적장 홀로페른을 유혹한 후 그의 머리를 잘라 버린 성서의 여주인공입니다.

 

두 그림 모두 주디트의 손에 남자 머리가 들려 있는 것이 보이시죠?

첫 번째 주디트는 금빛액자 속에 들어있는데,

이 바탕의 장식을 비롯하여 주디트의 목의 장식, 의복 장식은 금빛 시대를 예고 합니다.
 
다른 작가들도 주디트의 모습을 많이 그렸다.

번쩍이는 칼을 들고 목을 베는 모습, 청순한 주디트, 근육질의 주디트...

 

 

 

 

 

 

 처녀
(The Maiden)


1912-13 
유채, 190x 200cm
프라하, 나로드니 미술관
 
<처녀>는 잠재적 성욕을 내포하는 여인들을 포착하고 있습니다.

라고 평론에 되어 있더군요.

 

 

 충만

 

 여인의 모습이 보다 편안해 보이기 때문인지도...

이 그림에서는 배경과 인물이 평평한 느낌이다.

원근도 깊이도 없는 이 그림에서 그림을 보는 우리들은 찬란한 황금빛 속에서 헤매이게 된다.

 

두 사람의 충만한 느낌을 방해받지 않기위해서인지...

이 그림은 브르쉘에 있는 벨기에 실업가 스토클레의 식당 벽화의 한 부분이다.

총체예술의 이념을 적용한 이 건물에 클림트는 모자이크 벽화를 저택 식당에 디자인 했다.

 

 

 

 컴머성 정원의 산책로
 (Avenue in Schloß Kammer Park)


1912
오스트리아미술관

 

클림트의 풍경화는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 특성을 지닌 채

그윽한 품격과 내밀한 쾌락적 분위기가 묘하게 어울러지는 매력을 발산한다.

 

그의 빼어난 자연주의 묘사 기술과 섬세한 색상,

그리고 장식적 요소에는 눈에 즐거운 게 마음도 즐겁게 해준다는 쾌락주의가 강렬하게 배어있다.

이 그림에서도 자연에서 장식적 요소를 뽑아내어 자신만의 쾌락적 운치로  전환시키는데 상당한 성과를 거둔다.

 

 

 

 해바라기
 (The Sunflower)
 
1906-07
개인소장

 

 

 

 해바라기가 있는정원
 (Farm Garden with Sunflowers)


1905-06
오스트리아미술관


클림트의 해바라기는 고호의 그것과 다르다.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이글거림은 없다.

태양의 신 아폴론을 연모했던 처녀보다는 아폴론의 구혼을 피해다니다 월계수로 변한 다프네에 가깝다..

 

 

 

 희망 Ⅰ
(Hope I)


1903
유채, 67 x181 cm
오타와 국립 갤러리, 캐나다


클림트의 그림에 나타난 모델들은 주로 그의 이웃에서 찾아내 그렸습니다.

임신한 여자를 모델로 썼다는 것에 대해,

당시에 음란하고 관음적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희망>은 가까스로 미술전시회에 전시되었습니다.

그의 작품의 외설성에 대한 시비는 이보다 앞서 <의학>,<철학>,<법학>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희망 Ⅱ
(Hope Ⅱ)


1907-8
유채, 110x110 cm
현대미술관, 뉴욕

 

 

 

 Beethoven Frieze

 

 

 

 

 Dancer

 

 

 

 

 Girl-friends

 

 

 

 

The Kiss
(입맞춤)


1907 -1909
  유채
108×180㎝
빈, 오스트리아 미술관

 

더 말할 것도 없는 대작 '키스'.

그렇지만 그들이 서있는 곳이나, 여인의 얼굴 각도나 모습이 앞에 드러나 있다는 것이 약간 부자연스럽다. 

 

클림트의 가장 잘 알려진 그림 <키스> 의 모델이 에밀리일 것이란 추측이 가장 강하다.

꽃이 만발한 들판 위에 하늘의 별같이 금빛으로 뿌려진 신비로운 공간을 배경으로

부둥켜안고 있는 한 쌍의 연인이다.

 

압도적으로 넓은 어깨의 남자가 금색의 도포를 걸치고 윗몸을 숙여

여자의 얼굴을 으스러질 듯 껴안고 키스를 하려는 참이다.

꽃밭 위에 무릎을 꿇은 여자는

남자의 목 뒤로 매달리듯 팔을 돌리고 눈을 감은 채 힘껏 고개를 뒤로 젖혀

그의 뜨거운 입맞춤을 기다리고 있다.

 

남자의 망토와 비슷한 금색의 꼭 끼는 옷을 입어 거의 구분이 힘든

여자의 작은 몸이 남자의 넓은 망토 안으로 빨려들 듯하다.

그녀의 두 맨발은 절벽처럼 갑자기 떨어지는 들판 끝에 아슬아슬하게 닿아 있다.

놓치면 깊이를 알 수 없는 그 무한의 공간으로 사라져버릴 것같이.


클림트의 장식적이고 화려한 초상화 스타일은

빈 상류 사회 귀부인들의 열광적 사랑을 받았고 그들은 다투어 자신들의 초상을 의뢰해왔다.


클림트 화면에 비친 여인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지성이 결여되고 하나같이 남자의 욕망의 대상으로 표현되어 있다는 점이다.

 

빈 현대미술전의 창시자로 클림트는 아르 누보의 국제적 비약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생기에찬 색깔, 화려하고 장식적인 요소, 도발적 주제 등의 묘한 결합으로

그는 당시 빈의 풍요롭고열정적인 삶을 생생하게 그 화폭에 잡아내었다.

 

특히 그의 여인 초상화들은 종래의 아카데믹한 스타일을 벗어나는 전환점이 되었다.

그의 상징적, 관능적 접근은 다음 세대 표현주의의 전형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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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La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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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am and e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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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alie Zuckerkand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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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cient Greece (Girl from Tanag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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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by(Crad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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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ech Forest 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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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dnis der Margaret Stonborough - wittgen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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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ind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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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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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egory of sculp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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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df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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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rden Path with Chick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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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lfil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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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garden with sunfl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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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ederike Maria Be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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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m garden with crucifix





구스타프 클림트 Gustav Klimt 1862~1918

 클림트의 일생
 
신예술파(Art Nouveau) 혹은 분리파(Secessionist)화가로 불리 우는 구스타프 클림트는 1862년 7월 14일,

오스트리아 빈 근교 바움가르텐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에른스트 클림트는 귀금속세공사였으며 나중에 클림트가 공예학교에 들어갈 최초의 기반을 닦은 것은

그의 아버지를 통해서 였습니다.

구스타프 는 7명 중 둘째입니다.

 

동생 에른스트는 죽기 전까지 구스타프와 함께 같은 화실에서 작업을 했습니다.

클림트 일가는 당시 빈에 몰아 닥친 경제 공황으로 상당한 재정적 어려움을 감내해야만 했습니다.
 
*초창기

 

1876년 클림트는 열네 살이 되던 해에 장학금을 받고

오스트리아 미술관 부설 공예학교(현재의 오스트리아 응용미술관)에 들어갔습니다.

 

초창기에는 클림트는 그의 동생 에른스트 그리고 공예학교의 친구인 마츠와 함께 작업한 극장과

박물관의 장식벽화들로 처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비엔나 Kunsthistorisches 박물관이 있습니다.
 
*분리파의 창시

 

1897년 30의 나이에 그 자신만의 작업실로 이사했고 이젤 화가로 전향했습니다.

35세가 되던 해엔 젊은 예술가들과 함께 비엔나의 보수파에 항거하는 분리파의 공동창설자가 되었습니다.

 

신예술운동에 영향을 받은 분리파 그림의 특징은 장식적이고 이국적이며 관능적이었습니다.

특히 그의 그림은 그 시대의 대표적인 화가임에도 불구하고

클림트는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고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문화부는 1894년 클림트와 마츠에게 빈 대학교의 강당의 천장을 장식할 우의화 제작을 의뢰했습니다.

그러나 대학 강당 장식화가 사람들로부터 비난받고 이해받지 못하였습니다.

 

1900년 발표한 것이 「철학」, 「의학」, 「법학」의 그림들입니다.

이 그림들에서의 나체는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고 클림트는 제도권의 복고주의에 부딪치게 됩니다.

 
*사망

 

국내에서 대중의 많은 비판을 받았던 그는 국외에서 더 많은 전시회를 갖고 유명해졌습니다.

그의 생애는 온통 비밀 투성이었고 늘 사생활을 감추었다고 합니다.

 

대중에게 모습을 들어내는 것을 싫어했던 그는 인터뷰만큼은 거절했다고 합니다.

1918년 클림트는 뇌일혈로 쓰려진뒤 반신불수가 되었습니다.

유행성 폐렴으로 인하여 병세는 더욱 악화되어 2월 6일 쉰 여섯의 나이로 사망하였습니다.




 

  

Warsaw Concerto / Richard Clayderman, Pi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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