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塘秋曉

溪山苞茂圖

푸른하늘sky 2019. 2. 28. 17:49

 

전기(田琦), 계산포무도(溪山苞茂圖), 지본 수묵, 24.5×41.5 cm,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종이바탕에 수묵. 세로 24. 5㎝, 가로 41.5㎝.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그림의 오른쪽 하단부에 ‘전기사인(田琦私印)’이라는 백문(白文)과 주문(朱文)을 혼용한 도인(圖印)이 찍혀 있고, 왼쪽에는 “외로운 마음으로 계산에 대한 생각이 마구 떠올라 기유년 7월 2일 이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는 내용의 관지(款識)가 추사체로 적혀 있다.

전기가 24세 때인 1849년 여름에 그린 것으로서, 화면을 이등분하여 서 있는 두그루의 나무를 중심으로 왼쪽에 초정(草亭)과 대나무숲이 포치되어 있고, 그 너머의 중경과 원경은 물과 산으로 채워져 있다. 이러한 구도는 원말사대가(元末四大家)의 한 사람인 예찬(倪瓚)의 구도법과 상통하는 바 크다.

경물들은 모두 대담하게 요약된 형태로 묘사되어 있어 화면에 지극히 간일한 분위기를 감돌게 한다. 특히, 거칠며 활달하게 구사된 독필(禿筆 : 끝이 거의 다 닿은 붓)의 운필법(運筆法)은 이 그림을 격이 높은 문인화의 경지로 이끌고 있다.

이러한 화풍은 사의(寫意)와 문기(文氣)를 매우 중요시하였고, 김정희(金正喜)의 영향과 더불어 시·서·화에 뛰어났던 그의 농축된 문기가 한데 어우러진 것으로, 조선 말기 화단의 경향을 잘 대변하고 있다.

 

 

계산포무도(溪山苞茂圖)/전기(田琦)

 

<계산포무도>의 작가 전기는 1825년(순조 25)에 나서 1854년(철종 5)에 생을 마친 조선 후기의 문인화가이다. 본관은 개성이며, 자는 이견(而見) 또는 기옥(奇玉), 호는 고람(古藍) 또는 두당(杜堂)이라 했다. 그는 당시 유학자요 금석학자이면서 사의화(思意畵)의 독자적인 경지를 구축했던 추사 김정희의 문하에서 그림을 배웠다. 그의 시화는 당세에 짝이 없을 뿐만 아니라 상하 100년을 두고 논할 만하다고 했을 정도로 그는 당시 화단에서 촉망을 받았던 화가이다. 그가 남긴 몇 안되는 그림 중에서 <계산포무도>는 한국회화의 표현 특질을 확연히 드러내 보여 주는 작품이다.

<계산포무도>는 세로 24.5cm, 가로 41.5cm의 크기로 종이에 그린 수묵화이다. 화면 가운데 나무 두 그루가 속도감 있게 그려져 있고, 그 뒤로는 옅은 묵색의 몇 개 안되는 선으로 된 산이 원경으로 묘사되어 있다. 화면 좌측의 화제(畵題) 아래 포(苞,사초과에 속하는 다년초. 신이나 자리를 만드는 원료로 쓰인다)가 성글게 그려져 있고, 그 옆으로 반정도 땅에 묻힌 듯한 모옥(茅屋) 두 채가 보인다. 오른쪽 아래에 붉은 글씨의 네모난 도장이 찍혀 있다.

<계산포무도>는 묘사의 잔꾀를 그렸거나 교묘한 묘법을 구사하지 않았다. 그저 붓으로 스쳐간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각 경물들이 개념적으로만 묘사되어 있을 따름이다. 상하로 줄을 급하게 긋고, 거기에다 다수의 묵점을 가하여 나무라 했고, 짧게 삐친 점들이 사이사이로 가는 선 몇 개를 내리그어 포무(苞茂)를 상징했다. 먼 산은 옆으로 달리는 몇 획의 굴곡 있는 선을 그어 산이라 했고, 전면의 모옥도 소략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완벽한 결론을 제시하지 않고 감상자의 유연한 상상력을 요구하고 있다.

그림 1 계산포무도 전기

 

<계산포무도>는 서양화의 화면에서는 우선 그려야 하는 하늘과 물이 그려져 있지 않다. 붓이 지나가 산이 그려지면 그 위쪽은 하늘이 되고, 앞쪽에 언덕과 풀을 그리면 산과 그 사이의 여백이 저절로 물이 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서툴다거나 잘못되었다거나 하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삽상한 건강미를 느낀다.

<계산포무도>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스산하고도 산뜻한 공간은 조형원리에 따라 이지적으로 배려한 공간이 아니라 원초적인 공간 바로 그것이다. 이 공간의 세계는 결코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초월적인 세계가 아니라, 한국인의 마음속에 본래부터 존재하고 있는 관조의 세계가 투영된 공간이다. 그림에 보이는 여백과 선이 연출하는 소산지기(蕭散之氣)는 복잡한 곳보다는 단순한 것, 시끄러운 것보다는 고요한 것, 과장보다는 생략과 함축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음악에서의 휴지(休止), 무용에서의 정중동(靜中動)과 같은 멋을 드러내고 있다.

동양의 회화에 있어서 공간, 즉 여백은 비단 한국뿐만 아니고 소위 동양삼국의 회화에서 공히 중요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여백이 어떤 조형원리에 입각하여 의도적으로 베풀어진 것이냐, 아니면 미의식의 자연스러운 발로냐에 따라 그 여백의 성격과 맛이 달라진다. <계산포무도>에 보이는 여백은 의도적이고 계산된 공간이 아니라 마음의 세계가 거리낌없이 투영된 공간이라는 점에서 장식적으로 발달한 일본의 그림, 형식을 중요시하는 중국의 그림과 분명하게 구별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인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것을 체질적으로 터득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름다움은 자연스러움으로부터 나온다고 믿었다. 한국의 산수화는 중국처럼 위압적이지도 않고 이지적이지도 않으며, 일본처럼 기교를 부리거나 결벽성을 강조하지도 않는다. 오직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가식없이 붓을 놀려 자연스럽게 감정을 표현하였다. <계산포무도>야말로 그런 한국인의 심성과 미의식이 송두리째 드러나 있는 그림이라 할 것이다.

일찍이 노자(老子)는, “교묘의 극치는 가장 졸렬한 것처럼 보인다(大巧若拙)(老子 45章).”라고 했다. 실로 눈에 아름답게 띄거나 교묘한 그림은 아직도 미숙한 것이다. 고졸(古拙), 즉 일견 졸필처럼 보여도 실은 자연스러움과 소박하고 청아한 맛이 풍기는 데에 지극한 아름다움이 있는 것이다. 유안(劉安)도, “교는 졸만 못하다(巧不若拙),”(淮南子 人間訓)라고 했다. 실로 기교는 서투른 것만 못한 것이다. 이 말이 <계산포무도>를 두고 한 말인 것처럼 생각되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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