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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관(落款) -낙성관지(落成款識)에 관한 상식

푸른하늘sky 2018. 1. 22. 02:56

낙관(落款) -낙성관지(落成款識)에 관한 상식


흔히 말하는 “낙관을 찍는다”란 말은 서화(書畵) 작품을 완성하고 나서

그 작품에 작품을 쓰거나 그린 연도, 또는 장소와 날짜 등을 적고

자신의 아호인(雅號印)이나 성명인(姓名印) 등을 찍는 행위 모두를 뜻한다.

‘낙관(落款’ '낙성관지'(落成款識)의 준말로 중국 옛 청동기의 각명(刻銘)에서

음각자(陰刻字)를 '관'(款), 양각자(陽刻字)를 '지'(識)라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

관(款)은 관기(款記) 또는 관서(款書)라고도 하며 서명과 제작일시만 적는 경우는

단관(單款), 누구를 위해서 그렸다는 등의 언급을 하는 경우는 쌍관(雙款),

필자가 아닌 사람이 나중에 기입한 낙관은 후낙관(後落款)이라고 한다.

서화(書畵)가 아닌 기물(器物)에 있는 서명도 낙관이라 할 수 있지만

이는 보통 명(銘)이라고 한다.

‘낙성(落成)’이란 말은 어떤 공사나 작품 하는 일이 다 이루어졌다란 뜻이고,

‘관지(款識)’란 말은 자필(自筆)이란 뜻과 자신이 만들어 이루었다,

즉 자신이 완성(完成)해 증거로 남긴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관지(款識)의 위치와 서체는 서화의 일부분으로 중요한 구실을 하기 때문에

작품의 전체 분위기와 조화를 이루도록 세심한 배려를 해야 한다.

제관론(題款論)에 의하면 서예는 글씨가 끝난 곳에,

그림은 화면의 상단부 여백에 쓰는 것이 좋다고 했다.

서화에서 관지의 등장은 중국 송대(宋代)부터이나 나무뿌리나 바위틈같이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적었다. 원대(元代)에 문인화의 성행으로

시서화일치(詩書畵一致) 풍조가 팽배하면서 제시(題詩) 등과 함께

화면 위에 본격적으로 대두하기 시작했으며 명대(明代)부터는 일반화되었다.

그러나 궁정용(宮廷用)의 원화(院畵-院體畵)를 비롯한 실용화, 장식화,

기록화 등에는 낙관을 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후기까지 관지의 사용이 그다지 활발하지 못했는데,

이러한 관지 성행의 풍조에 대해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덕무(李德懋)는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를 통해 비판한 바 있다.


낙관용 아호인(雅號印-아호를 판 도장)과 성명인(姓名印-이름자를 판 도장)은

보통 전서체(篆書體)로 만드는데, 아호는 양각陽刻-朱文)이 되게 파고

성명은 음각(陰刻-白文)이 되게 판다. 사방 한 치 내외의 작은 공간에

조형을 맞추어 가장 멋있고 예술적으로 보이도록 만들기 위함이다.

낙관인은 붉은 인주(印朱)를 사용함이 관례이고 이들 도장을 찍는 순서는

성명인(음각-백문)을 먼저 찍고 그 다음에 아호인(양각-주문)을 찍는다.

(반대로 낙관을 쓸 때는 아호를 먼저 쓰고 그 다음에 성명을 쓴다)

이들 외에 작품의 우측 상단 여백에 작품에 관련해 좋은 명언가구(名言佳句)

넣어 만든 수인(首印-引首印)이나 유인(遊印)이 있고, 문양이나 모양을 넣어 만든

압각인(押脚印)과 작품에 대한 감상과 소장을 표시한 감상인(鑑賞印)과

소장인(所藏印)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인수인, 압각인은 장식성이 강하고,

감상인, 소장인 등은 타인의 인장이 찍힌다.

성명인, 아호인과는 그 용도가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작자가 누구인가를 확인하는데 필요한 인영(印影)까지만

낙관에 포함시키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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