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詩한

은방울꽃 / 이정록

푸른하늘sky 2019. 5. 12. 16:16


은방울꽃 / 이정록

아버지는 안마당 한가운데 우뚝 서서
식구들을 하나하나 불렀다.
노모에게 미안하단 말 올리고선
빗줄기 속에 서계셨다.
우리는 마루 끝에 나란히 서서
차렷경례를 올렸다.
아버지 이제 오세요?
어머니가 나오시지 않으면 나오실 때까지,
어머니가 서열을 잘못 찾으면 막내 옆
끝자리에 설 때까지
야간 점호는 계속 되었다.
왜 내가 끝자리래요?
어머니께서 댓 발 입술을 내밀면
빗물에 젖은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당신이 막내보다 귀엽잖아.
찡긋 눈짓을 날렸다.
우리는 그제야 골방으로 기어들었고
어머니의 입술은 은방울꽃 가장 작은
봉오리가 되어 취한 아버지를
마른 수건으로 닦아드리는 거였다.
그런 날 꿈결엔 막내를 임신한 늙은 어미가
하얀 이를 내보이며 웃는 것이었다.










 

One Day In Spring - Band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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