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狂不及

Edvard Munch

푸른하늘sky 2017. 12. 20. 15:09

畵家 뭉크(Edvard Munch)<1863~1944>


 Girl Kindling a Stove.1883   

< 난로에 불을 지피는 소녀>그림과 같이 뭉크의 초기그림도
피카소나 샤갈이 그랬던 것처럼 보통 우리가 보는
회화의 전형적인 틀에서 출발하였다. 


 


Aunt Karen in the Rocking Chair.1883 

뭉크의 유년 시절은 불행한 듯 하다.
의사였던 아버지는 지성적인 가문 출신이지만
우울 병적이었고, 어린시절 어머니와 누이의 죽음을 경험한다.
그러한 일들은 그의 심리적인 경험에도 큰 그림자를 남겼을 것이다. 


 

 

Sister Inger, 1884 

뭉크 남매는 이모 카렌의 보살핌을 받고 자랐으며
카렌은 풍경화 같은 것을 그리기를 좋아하여서
언제나 조카 몫도 함께 넣어 사들고 왔다. 부친의 권유로
그는 공대에 들어갔으나 재학 1년후엔 미술공부를 하기 시작하였고
도시 근처의 풍경화와 자화상, 실내화, 정물화로 표현 범위를 넓혀 갔다. 


 


 The Sick Child, 1885-1886

 <질병, 발광, 그리고 죽음은 나의 요람을 지키는 천사들었다.
그들은 내 일생 동안 줄곧 따라 다녔다.
나는 일찍부터 삶이 가지는 비참하고 위험스러운
점을 알게 되었으며, 또 지옥에서 죄의 자식들을
기다리고 있는 영원한 벌에 대해서도 배웠던 것이다.>

- 뭉크의 일기 

 


Summer Night (Inger on the Shore) 1889 

자연주의 기법으로 그리고 있는 이 초기 작품들에서
이미 마음의 상태나 감정적인 느낌, 즉 인간 내부의 경험을
표면으로 까지 드러내려는 성향이 뚜렷이 두드러지고 있다.


 


  The Voice  1893

 <책 읽는 사람이나, 뜨게질하는 여인을 그리는데
더 이상 흥미는 없다. 진정 숨쉬고, 느끼고, 고뇌하고,
사랑하고, 살고있는 인간을 그렸어야 할 것이다.> 

 


  Ashes1894 

그의 범상치 않은 재능은 유명작가의 주목을 받게되나
그 당시 오슬로는 그를 명쾌하게 평가하기에는 아직 미흡했다.
그런 이유들은 예술가들의 활동무대를 밖으로 넓혀준다.  


 


 The Day After 1894-1895 

뭉크는 프랑스에서 피사로와 모네,로트렉의 화풍,
색면으로 상징된 고갱의 회화를 경험하게 된다.
또 판화에도 전념하여 많은 유화 작품과 동일한 판화들을
몇 가지의 기법으로 제작하기도 하였다. 


 


 The Dead Mother 1899-1900 

 

뭉크의 그림에는 소리가 있다.
아니, 그 소리를 거부하거나 그 소리에 면밀하게
동화된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어린아이의 천진함이나 여인의 아름다움보다는
괴이한 표정들로 인간의 심적이거나 영혼의 상태를
극명하게 표현하여서 그 강력한 호소력을 과시한다.


 


 The Scream, 1893, oil, tempera and pastel on cardboard 

 

<절규>는 뭉크의 대표작이랄 만큼 널리 알려진 그림이고
표현주의와 가장 깊은 관계를 가진 그림이다. 특히 풍경 속에
인간 극한의 심적 상태를 반영하고 있다.

<어느 날 좁은 길을 따라 걸어 갔다. 한쪽 면은 도시가 있고
표르드는  다른 쪽 아래 있었다. 나는 피곤하고 아픈 것 같이 느껴졌다.
나는 멈추고 표르드 위를 내려다 보았다.

해는 넘어 갔고, 구름은 피 빛 같이 붉은데 어디선가
한 외침 소리가 온통 자연을 휩쓸고 지나가는 듯이 느껴쪘다.
나는 절규를 들은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구름들을 피같이 그리며
색깔이 비명을 올리는 것 같이 하여 이 그림을 그린 것이다.>

일찌기 이처럼 인간의 패닉한 감정을 그림으로
나타낸 화가는 없었을 것이다. 정말 이 그림을 처음 보는 순간,
문외한이라도 다른 그림에서 보지 못한 뭉크만의 독특한 그 느낌이
자신의 오감을 통해 조금이라도 들어 왔으리라..


 


 Girl Washing 

 

어두움을 나타내는 흑색은 그의 그림에서 자주 볼 수 있다.
그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인간 내면의 다른  한쪽..
상체를 벗은 듯한 한 소녀가 싱크대 앞에서 무언가를 씻고 있고
왼쪽 창문에 레이스 커튼은 샛 바람에 약간 부풀려 있다.
이 글만을 읽을 때.. 우리의 보편적인 생각은
지극히 평온한 광경을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전 화면을 채우듯이 검은 칠을 한 뭉크는
상당히 안정적인 구도와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그 소녀의 상황과 불안감, 두려움,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불길한 예감까지 들어 있는 그림으로 만들어버렸다.

 


 Melancholy, Laura 

 

바다가 보이는 창가 테이블에 튜립 화분이 있고
그 옆에 앉은 여인은 정말 제목처럼 멜랑코리하게 보이며
둥글고 시커멓게 그려진 두 눈은 퀭하니 암울하기까지 하다.
또한 주먹져서 올려진 손과 그녀의 옷 차림은 답답함을 더해 준다.

테이블 보의 무늬들은 마치 붉게 끓어 오르는 내면을 덮은 듯이..
예까지 그림을 읽고 난 나는 이 여인에게 말을 건네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창문이라도 활짝 열고 바다를 향해 냅다 소리라도 질러버리라고..

대개 사람들은 밝은 면만을 좋아하고.. 추구하기도 하며..
또 애써 어두운 부분을 외면하고 무언가로 덮어버린다.
그리고 때로는 무감각하게 살아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의식하던지 안 하던지
언제나 두 세계는 이러하게 공존한다. 

 


 Sister Inger, 1892  


  누이 동생 Inger는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며

그 한 주제는 뭉크의 작풍이 변화되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Melancholy 1891  


 Melancholy 

 

뭉크는 일평생 가정을 가져보지 못하였다.
여인들과 사귀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한 여인과 사는 남자는
무엇인가 자신 속에 죽어가고 있다는 위협적인 생각 때문이었다고..
니체, 스트린느 베르히, 보들레르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여인에 대한 증오, 여인이란 성의 파괴적인 힘에 대한 내면이
이렇게 표현되었으며 그는 80 평생을 결국 외롭게 살았다.


 


  Vampir 1893 

 

<뭉크는 오랫동안 여러 여자들과 사귀었으나
누구와도 오랜 관계를 갖지 못하였다. 어느 여인에게서도
그는 감사한 생각이나 즐거운 회상의 대상을 발견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여자들이 부드럽게 대할수록 공포감을 안겨다 주었을 것이다.
그는 여인들을 영원히 남자를 잡아먹는 것으로 인해 살고 있는
흡혈귀로 생각하고 있는것이다..>

그의 내면은 한없이 불행해 보인다.
그의 그러한 욕구는 그의 삶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신경병적이고 내향적인 한 예술가의 전반적인 삶속에.. 




The Kiss, 1897  

 

두 남녀가 꼭 부등켜 안고 입을 맞추는 장면도 전혀 로맨틱하지 않다.
그들은 불안과 공포와 고뇌를 끌어안고 있는 군상의 일부처럼 보여진다.
그래서 화합이 아닌 파괴를 위한 공모자처럼 서로 얼켜져 있는 듯 하다.

그래서 <에로스의 가장 깊숙하고 가증스러운 어두운 면을
여지없이 폭로하고 있다>는 혹자의 표현은 참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Woman in Blue (Frau Barth), 1921

 

푸른 옷의 여인은 두 손을 맞잡고 꿋꿋히 서 있지만,
여인 주변에 묽어진 푸른 톤은 그녀를  흔들리게 한다.
두 눈동자가 그려졌음에도 시선의 방향은 예측하기 어렵다.
마치 바라보는 것이 현상이 아닌 듯이..
그 아래 붉은 터치도 그렇게..
미숙한 붓질처럼 지나가다 멈추어 서 있다.



 Girl on the Beach.1896.Aquatint with scraper and drypoint

 

뭉크는 1894년 베르린 체재 시에 엣칭을 처음으로 시도한 후
계속 판화에 매료된다. 당시의 프랑스의 예술가들의
판화들을 망라하여 양식이나 기술적으로 영향을 받았으며
동일 화제를 되풀이하여 많은 작품을 제작하였다.  

후기엔 보다 새로운 경지에서 다소 밝아지기도 하여서
일하고, 목욕하고, 건강하게 사는 사람들과
<삶의 연작>은 좀더 평화를 희구하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작품 수는 거의 1000점, 판화 15400 점, 수채와 소묘 450점과
6개의 조각을 남긴 그는 진정 왕성한 제작 혼을 가진 예술가였으며,
그 연륜이 말년엔 자신의 내면과 사물의 진실을 응시하고
관조하는 여유까지 누리게 하였으리라..


 


 


 Self-Portrait with a Burning Cigarette, 1895

뭉크의 생애와 작품 세계    

노르웨이 뢰텐 출생. 아버지는 의사였으나 이상성격자였으며,
어린시절 어머니와 누이를 결핵으로 여의고, 그 자신도 병약하였다.
그와 같은 환경과 육체가 그의 정신과 작풍에 영향을 끼쳤다.

오슬로의 미술학교에서 수학하고(1881∼1884),
급진적인 그룹의 영향을 받았는데,
초기작품 《병든 아이》에서 볼 수 있는 삶과 죽음의 응시는
그 후의 작품에서 일관하고 있다.

1889년 한여름을 바닷가의 마을에서 보내고,
밤의 불안을 잡아 《별이 있는 밤》《백야(白夜)》 등을 그렸다.

1890년 파리로 가서 레옹 보나의 아틀리에에 들어갔고
파리에서 그는 일본의 목판화(木版畵)와 여러 화가들의
작풍에 심취하기도 한다. 

1892년 가을, 베를린미술협회전에 출품하였는데,
그것들은 초기의 애수 어린 서정적 성격을 더욱 내면화하고,
생(生)과 사(死), 사랑과 관능, 공포와 우수를 강렬한 색채로
표현하고 있어 많은 물의를 일으켰다.

그러나 여기서 뭉크의 독자적인 세계가 확립된 것이다.
특히 베를린에서의 스트린드베리와의 만남은 그 깊이를 더하였다.

그 후 파리에서는 말라르메 등과 사귀고 입센을 알게 되었으며,
명작 《생명의 프리즈》 연작(聯作)을 완성하고,
1894년부터 판화를 시작하였다.

1908∼1909년에는 신경병으로 코펜하겐에서 요양하였으며,
그 후부터 색채가 밝아지고, 문학적 ·심리적인 정감이 두드러졌다.
1937년 나치스는 독일에 있는 그의 모든 작품을 퇴폐예술이라 하여 몰수한다. 

만년에는 은둔생활을 하였다.
한편 판화가로서도 근대의 대작가이며 표현파의 선구자이자,
노르웨이 근대회화의 이재(異才)로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그 밖의 《봄》 《질투》 《절규》 《다리 위》《저녁시간》
《죽음의 방 The Death Cha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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